[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을 보며 가장 놀랐던 대사는 1부에서 나온다. 하바를 터트리려는 외계인과의 대결에서 점점 불리한 상황에 몰리지만 마지막까지 싸우자는 어린 이안의 독려를 듣자 썬더(김대명)는 ‘이길 확률 2%...3%’라며 ‘인간의 감정은 놀랍구나’라고 말한다. 김 선생의 명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청진기 대면 진단 나온다’던 감독이 20년이 지나 쓴 대사에 ‘뇌수술 당한’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최동훈 감독은 성실하기로 유명하다.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에 나온 내용에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박진영은 지난 연말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유행을 좇아 슬릭백 챌린지를 감행했지만 전혀 미끄러지지 않는 몸동작은 도열한 직원들의 영혼 없는 환호성과 부조화를 이루며 놀림거리가 됐다. 청룡 영화상 축하 공연에선 시종일관 무참하게 음정을 이탈하는 목소리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배우들과 어우러져 폭발적 반응을 불렀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많은 이에게 웃음을 줬지만 박진영에겐 뼈아픈 경험이었을 것 같다. 그가 평소 음악에 관해 완벽주의를 지향해 왔고, ‘딴따라’를 자임하며 무대에 큰 애착을 피력해 왔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한국 남성들의 세계관은 이상하다. '어떤' 한국 남성들이 자신을 둘러싼 권력관계를 규정하는 모습을 보자. 한국에 사는 남성들은 한국에 사는 여성들보다 약자다. 이들의 믿음이 이렇다는 걸 더 설명할 필요는 없다. 기성세대 남성은 과거 호황의 기득권을 독점한 채 자기 세대가 저지른 성차별 업보를 ‘이대남’에게 전가하는 위선자다. 동성애자 남성은 서울 시가지를 행진하며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PC주의 점령군이다. 장애인들은 법을 농단하는 ‘기습 시위’로 출근길 지하철을 점거하는 테러범이다.아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영화 의 핵심은 1958년이라는 순간이다.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과 함께 임진왜란이 7년으로 마무리되는 걸 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 특히 전쟁을 치르고 있는 장수들마저도 전쟁의 종료 시점을 바라보는 의견이 분분했다. 혹은 의도적으로 달리 보려 했다. 에서 중심이 되는 세 명. 조선의 이순신(김윤식), 명의 진린(정재영), 왜의 시마즈(백윤식)의 종전에 대한 시각 차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관통한다.경상도에 3개 성에서 농성 중이던 왜군은 히데요시의 철군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배우 이선균이 사망했다. 이선균은 마약 투약 혐의와 룸살롱 실장과의 추문으로 비난받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총구를 맞은편으로 돌려 성토의 말을 난사한다. 마약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왔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경찰의 집요한 수사와 피의사실 흘리기, 실장과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언론 보도, 그리고 이 모든 가십을 맛보고 즐긴 군중이 손가락질당한다. 다 맞는 말이다. 틀릴 리는 없다. 수사 내용과 혐의점은 어디서 새 나오는 건지 궁금할 만큼 넘쳐흘렀고, 사안과 본질적 연관이 없는 실장과의 관계는 솔깃한 대목이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은 왜 제목이 서울의 봄일까 궁금증이 드는 영화다. 서울의 봄은 박정희 사후 한국에서 민주화를 위한 희망이 열린 독재 권력의 공백기를 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런 희망을 인지할 수 있는 민주화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서사 무대는 군 내부로 철저히 제한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학생들의 모습 혹은 민주주의를 향한 그들의 기대감은 재현되지 않는다. 대신, 서울의 봄을 무산시킨 존재, 전두광의 반란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민주화 항쟁 대 신군부가 아닌, 반란군과 진압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영화의 80%는 각본으로 완성된다. , , 등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받고 미국 영화연구소(AFI)에서 평생공로상까지 수상한 명감독 빌리 와일더의 말이다. 이 말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은 각본만으로 평범한 작품을 넘어 명작의 기준을 80% 넘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제76회 칸 영화제(2023)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빛나는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일본을 대표하는 각본가 사카모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올해는 힙합 탄생 50주년이다. 연말이니까 50주년을 기념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힙합의 태동은 1973년 여름이라고 합의 돼 있다. 힙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DJ 쿨 허크가 어느 파티에서 턴테이블 두 개로 노래의 브레이크 구간을 반복해서 트는 기술 ‘메리 고 라운드(Merry-Go-Round)’를 선보인 날이다. 이것이 샘플링과 룹을 기반으로 하는 클래식한 힙합 작법의 견본이 되었다. 이렇듯 힙합이 첫울음을 우는 분만실이 된 것은 흥겨운 파티장이었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이 탄생의 순간을 힙합의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영화배우 정우성이 화제다. 정우성은 흥행 가도를 달리는 영화 에 출연했다. 개봉을 맞아 홍보 차 출연한 유튜브 채널에서의 발언이 반향을 불렀다. ‘한국 영화가 어려우니 극장에 와달라는 영화인들의 당부는 염치가 없다’면서 배우들부터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현실과 대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영화계에 경종을 울리는 직언처럼 여론의 호평을 샀다. 티켓은 비싸고 영화의 질은 저하되는데 관객의 책임감에 호소하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다. 나아가서 사람들의 소비자 심리가 발현된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영화 은 폭력적이다. 10.26 박정희 시해 사건을 지나 12.12 군사쿠데타까지 47일 동안 긴박했던 결단들을 탱크처럼 밀어붙인다. 하나회를 통해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하나회 일당을 막으려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의 대립은 무한궤도처럼 이어진다.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릴 수 없듯 관객들 또한 그들 중 한 사람의 입장을 선택해야 한다.전두광은 전두환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외모와 말투, 절친 노태우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심지어 잠깐 등장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서 여성 캐릭터 엔젤릭 버스터가 ‘집게손가락’ 포즈를 취했다고 논란이 된 사건의 전모는 잘 알려진 상태다. 넥슨은 ‘남성 혐오’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그래픽을 제작한 하청업체는 사과문을 냈다.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진 여성 애니메이터가 개인 SNS에서 했던 발언이 유포되면서 사안은 ‘페미’ 애니메이터의 ‘남혐’ 행각이라 규정되었지만,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저 집게손 그림을 그린 건 해당 애니메이터가 아니라 40대 남성이었다고 한다.이 논란에 관해선 많은 비판과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국가대표 축구 선수 황의조는 성관계 영상 불법촬영 혐의로 피의자가 됐다. 하지만 21일 월드컵 지역예선 중국전에서 교체선수로 출장했다. 대표팀 클린스만 감독은 "황의조는 우리 팀의 일원"라고 말했다. “사생활 논란”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 사실이 확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열심히 뛸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축구협회 역시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언론에 전했다. 영상 유출 피해자가 선임한 이은의 변호사는 축구협회와 클린스만 감독을 비판하며 국가 대표팀 선수의 자격과 지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우리가 사랑한 MCU의 슈퍼히어로들에게는 떠오르는 키워드가 하나씩 있다. 대표적으로 캡틴아메리카는 자신의 힘으로 쉴드를 해제시키면서도 자유를 지켰고, 군수산업체를 운영했던 아이언맨은 모든 과거를 책임지고 우주를 구했다. 철없던 왕자 토르는 결국 숭고한 희생을 거치며 진정한 번개의 신으로 각성했다. 기존의 영웅들이 퇴장하고 새로운 페이즈의 중심인물로 활약할 캡틴 마블의 키워드는 ‘정체성’이 아닐까.의 전작인 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는 이에 대해 ‘허락된 힘이 아니라 자각된 힘’이라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엠넷 시즌2에 참가했던 일본 댄스크루 츠바킬이 메가크루 퍼포먼스 비디오를 공개했다. 츠바킬은 멤버 개개인의 뛰어난 댄스 실력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인기를 얻었지만 지난 9월 방송 4회 차에서 처음으로 탈락하는 팀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아쉬워했고, 츠바킬 역시 각자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미진한 기분을 피력했었다. 메가크루 퍼포먼스는 츠바킬이 데스매치 미션에서 생존했다면 다음 미션으로 수행했을 과제다. 해당 비디오는 츠바킬 멤버들의 아쉬움을 달래고 팬들의 애정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얼마 전 보이그룹에 관한 흥미로운 대화가 있었다. 보이그룹 ‘갓세븐’ 출신 뱀뱀의 유튜브 채널에 보이그룹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의 연준이 출연했다. 연준은 보이그룹은 걸그룹에 비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고, 뱀뱀은 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 비슷한 생각을 했다며 동의했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얘기이고, 보이그룹에 관한 일반적 인식이다. 보이그룹은 대중성이 약하고 걸그룹은 대중성이 강하다, 다르게는 보이그룹은 대중성이 약한 대신 팬덤이 강하고 걸그룹은 대중성이 강한 대신 팬덤이 약하다.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영화의 배경은 20세기 초 미국. 오세이지 부족 원주민들의 땅에서 석유가 발굴된다. 미국 정부의 이주 정책으로 본인이 살던 땅을 빼앗기고 오클라호마로 쫓겨왔던 오세이지 부족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GDP를 기록할 정도도 막대한 부를 거머쥔다. 오세이지 부족의 석유를 시추하기 위해 여러 기업이 달려들고, 일자리를 찾으려는 백인들도 전국에서 기차를 타고 모여든다.은 위화감으로 시작된다. 엄청난 부를 가진 오세이지 부족은 멋진 옷을 빼입고 골프를 치고 자가용 비행기로 경주를 하고 백화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엠넷 시즌2가 지난달 31일 막을 내렸다. 이번 시즌 를 정리해 본다면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시청률은 방송 중반 이후 하락했지만 마지막 방송에선 반등해서 2.4%를 기록했다.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역대 시즌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해외 팀이 참가한 글로벌 시즌의 개가다. 방송과 미션 영상을 보는 시청자층의 외연이라는 측면에선 결실을 거두었지만, 시청률 자체가 시즌1에 비해 높지가 않고 코어 시청자층 확보는 부족했던 것 같다. 파이널 방송 총 문자 투표수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한국에서 올해 초 발간된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에서 이야기에 관한 시급한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다. 조너선 갓셜은 이야기가 사람을 구슬리는 힘이 얼마나 센지, 그것이 인류사를 관통해 얼마나 뿌리 깊게 작동해 왔는지 고한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설파되는 관념과 주장들, 이를테면 사회적 서사 혹은 현실의 서사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타인을 설득하고 공론에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성을 획득했고, 문화산업과 사회상에 기념비를 세웠다. 게다가 과 달리 은 이름을 아는 사람 대부분이 직접 읽어봤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금껏 출판된 코믹스의 판매 부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발행된 도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이제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인류가 들이키는 공기이자 문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가 됐다. 소위 하위문화의 입지를 이토록 도약시킨 장본
[미디어스=고브릭 실눈뜨기] 한 인터뷰에서 배우 송중기는 의 시나리오를 읽고 생긴 선입견을 고백했다. 감독이 정말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낸 거 같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감독을 만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닌 것을 알고 안심했다고 한다. 2015년 , 이후 8년 만에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된 김창훈 감독의 은 시나리오만으로도 동정심을 끌어낼 만큼 어둡고 답답한 세계를 그렸다.(*이하 영화 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18세의 고등학생 연규(홍사빈)는 새아버지의 딸인 여동생 하얀이 동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