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외계+인>을 보며 가장 놀랐던 대사는 1부에서 나온다. 하바를 터트리려는 외계인과의 대결에서 점점 불리한 상황에 몰리지만 마지막까지 싸우자는 어린 이안의 독려를 듣자 썬더(김대명)는 ‘이길 확률 2%...3%’라며 ‘인간의 감정은 놀랍구나’라고 말한다. <범죄의 재구성> 김 선생의 명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청진기 대면 진단 나온다’던 감독이 20년이 지나 쓴 대사에 ‘뇌수술 당한’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최동훈 감독은 성실하기로 유명하다.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에 나온 내용에 따르면 사기꾼, 도박꾼 취재는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괜찮다 싶은 대사가 나오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메모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타짜>를 만들 땐 친구들과 밤새워 도박하며 나온 대사를 꼼꼼히 기록했고, 다음날 알아볼 수는 없지만 만취한 상태에서도 메모를 남길 정도라고 한다. 이런 성실함으로 쌓아온 리얼리티가 최동훈 감독의 강점이지만 반대로 상상의 영역으로 나아갈수록 그의 장점은 희석된다.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조선시대를 다룬 <전우치>, 일제강점기로 넘어간 <암살>이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가 낮은 까닭도 관객들이 기대하는 현실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탓이다. 그나마 <암살>은 독립군, 친일파, 변절자 등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았던 인물에 대한 사료들이 남아있고 <전우치>는 영화 촬영을 현대의 배경으로 삼았기에 현실감이 완전 증발된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와 도사가 결합한 <전우치>도 혼란스러웠는데 <외계+인>에는 조선보다 더 과거인 고려시대가 나오고 도술을 쓰는 도사, 시간여행을 하는 외계인과 프로그램, 치명적인 무기가 실린 우주선까지 등장하다 보니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느낌이다. 감독의 장점을 살릴 수 없는 불리한 전장에서 시작한 흐름을 바꾸기 위해 다양하고 절박한 시도들도 눈에 띈다. (*이하 영화 <외계+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외계+인〉2부 스틸 이미지
영화 〈외계+인〉2부 스틸 이미지

영화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선 보이는 건 레퍼런스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영화마니아가 아니라도 모티브를 따왔을 영화들이 머릿속에서 휙휙 지나간다. <아이언맨>, <에일리언>, <서유기>, <백 투 더 퓨처>처럼 문화적 DNA로 각인된 수준의 작품들이다.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것처럼 보이는 레퍼런스들을 통해 부족한 현실감 대신 친밀감을 관객들에게 불어넣으려고 하지만, 긴밀한 화학적 결합이 아니라 시각적 유사함을 따온 상황에선 과도한 기시감만 충전되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문제는 이렇게 현실감이 사라진 환경이 캐릭터들의 감정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외계+인>의 주인공은 이안(김태리), 무륵(류준열), 가드(김우빈)이다. 현대 시점에서 외계의 죄수들이 풀려나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을 본 이안과 가드가 그들을 막기 위해 과거라는 시간 안에 죄수들을 가둔 것은 그렇다 치자. 정의로운 캐릭터가 정의를 위해 희생하는 건 뻔하지만 숭고한, 감동적인 테마이다. 그러나 극 중에서 이들의 정의감이 제대로 설계되어 발현됐는지는 의문이다.

가드는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안을 키우며 가드에게 부성애가 생겼을 수 있지만 그건 인류를 구하겠다는 정의감보다 자녀를 지키겠다는 개인적 바람이 우선이다. 이안은 고려에서 넘어와 가드와 썬더의 손에 자랐고 큰 문제 없이 학교 다니며 친구들과 노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초등학생이다. 가드의 생체실험(?)으로 또래보다는 뛰어난 지능과 신체 능력을 지녔지만 고려시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무시무시한 외계인의 손에서 지구를 지킬 막대한 책임감을 지닌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이안과 무륵은 어린 시절에 목숨을 구해준 인연으로 얽혀있으며 서로의 물음에 해답이 되어주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외계 죄수가 몸 안에 가둬져 있다고 생각하는 무륵에게 이안은 ‘네 안에 뭐가 있든 너는 너야’라고 말한다. 영화의 최종전투가 시작되면 무륵은 이안에게 이 말을 그대로 전해준다. 외계인의 힘으로 얼치기 도사가 됐다고 생각하는 무륵의 무력감, 고려에서 태어나 현대에서 또 다른 외계인의 손에 큰 이안의 외로움은 주고받는 한마디 말로 조금이나마 치유가 된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을 문장으로 읽는 것과 영상을 보는 건 다르다. <외계+인>에서 이안은 무륵이 생명의 은인임을 알고 반가워하지만 극의 전개를 위해 5분 만에 헤어진다. 러닝타임 내내 흘러가야 하는 영상은 문장과 달리 감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암살>에서 안옥윤(전지현)은 쌍둥이 언니 마츠코가 친일파 아버지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다. 마찬가지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인물이지만 극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며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감정을 이입할 시간을 준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화 〈외계+인〉2부 스틸 이미지
영화 〈외계+인〉2부 스틸 이미지

성장과 악당의 부재

수많은 명대사를 낳은 <타짜>는 도박영화였지만 한 편의 지독한 로드무비였다. 고니가 인생의 단맛, 쓴맛, 똥맛까지 다 먹어가며 스승인 평 경장의 복수를 하고 지긋지긋한 도박판에서도 벗어나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무륵은 스스로 얼치기 도사라며 자책한다. 재능은 있지만 우왕좌왕이란 고양이들을 부채에서 불러내 싸우는 정도의 도술을 지녔다. 진짜 도사가 되면 뽑아낼 수 있다는 천하보검은 부채 속의 그림이다. 이후 여러 사건을 겪고 1부 마지막에 무륵은 마침내 부채에서 뽑아내 요괴들과 싸운다.

하지만 각성한 도사의 무쌍이 2부에서 펼쳐질 거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새로 등장한 맹인 검객 능파(진선규)의 날아다니는 비검, 1부부터 활약한 삼각산의 신선 청운(조우진), 흑설(염정아)은 도술과 신선들의 무기로 외계인과의 싸움을 주도한다. 무륵은 현대에 와서도 도술이 아니라 가드가 남긴 수트의 힘을 빌려 외계인과 맞선다. <전우치>에서 깨달음을 얻고 부적 대신 삼신기를 휘두르며 화담과 격돌하는 전우치(강동원)가 주던 성장의 카타르시스를 무륵에게는 뽑아내기 어렵다.

지금도 회자되는 악당인 <타짜>의 곽철용과 아귀, <암살>의 염석진의 욕망은 뚜렷했다. 도박판에서 흘러넘치는 돈을 쓸어 담거나, 욕망에 휩쓸린 상대가 자멸하는 꼴을 보거나. 과장된 몸짓과 행동으로 총알구멍을 두 개나 갖고 있다며 좌중을 휘어잡고 변절자임을 부인하거나. 변호할 필요도 없는 악인이지만 최동훈이 만든 악당들은 돈과 자존심, 부귀영화라는 뚜렷한 욕망으로 움직이며 생명력을 얻었다.

하지만 <외계+인>의 빌런들은 어떤가. 하바를 터트려 지구를 테라포밍하려는 외계인들의 난동은 어떻게 보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들이 무슨 죄로 지구에 유배되었는지, 지구의 환경을 바꾼 뒤 무엇을 할지 제시되지 않은 탓이다. 심지어 대사도 없이 싸우기만 하는 최후의 전투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목적마저 희미해질 지경이다.

영화 〈외계+인〉2부 스틸 이미지
영화 〈외계+인〉2부 스틸 이미지

증발해버린 감정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보러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으로 시작해 <타짜>, <도둑들>까지 무언가를 훔치거나 강탈하는 일명 케이퍼 무비라고 말하는 범죄영화를 한국에서 제일 잘 만드는 감독임을 생각하면 일상에서 만나기 어렵고, 만나면 인생 고달파지는 전문가들의 생생함을 대리 체험하기 위해서가 클 것 같다. 말하자면 <생활의 달인 - 범죄자 편>을 찾아보는 느낌이라 할까.

고정관념과 달리 최동훈 감독의 케이퍼 무비에서 범죄 장면은 그렇게 세세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타짜>는 아귀와 치른 최후의 결전을 비롯해 타짜의 속임수가 제대로 묘사된 장면이 드물고 <범죄의 재구성>, <도둑들>에서는 아예 계획이 실패한다. 계획의 주도자 혹은 상대방이 성공으로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득이 아닌 다른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복수나 자존심, 상대의 파멸 같은 감정적 요소가 그의 영화에서는 돈보다 더 중요하다.

<외계+인>의 문제는 SF와 무협의 결합,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이 아니라 증발해 버린 감정일 가능성이 크다. 승부와 상관없이 딴 돈의 반만 가져가는 이상한 도박꾼과 승패와 관계없이 손모가지를 날리겠다는 사악한 집념. 왜 이렇게까지 싸우냐고 물을 때 싸우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걸 알려주겠다는 사람의 우직함과, 해방이 될 줄 몰랐다고 알면 그랬겠냐고 외치는 뻔뻔함. 계산할 수 없는 들끓는 욕망들이 끝없이 맞부딪히던 생생함이 다시 최동훈표 필름에 녹아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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