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배우 이선균이 사망했다. 이선균은 마약 투약 혐의와 룸살롱 실장과의 추문으로 비난받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총구를 맞은편으로 돌려 성토의 말을 난사한다. 마약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왔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경찰의 집요한 수사와 피의사실 흘리기, 실장과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언론 보도, 그리고 이 모든 가십을 맛보고 즐긴 군중이 손가락질당한다. 다 맞는 말이다. 틀릴 리는 없다. 수사 내용과 혐의점은 어디서 새 나오는 건지 궁금할 만큼 넘쳐흘렀고, 사안과 본질적 연관이 없는 실장과의 관계는 솔깃한 대목이 살코기처럼 발라져서 공중파 뉴스에 올랐다. 유튜브에서 녹취록이 공개된 다음 날 사망 소식이 뜬 것을 보면 저 모든 관음증과 파산 난 도덕적 이미지가 이선균을 삶의 마지막 구석으로 토끼몰이한 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견찰’과 ‘기레기’를 한바탕 욕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냄비 같은 ‘군중 심리’를 꾸짖으면 될까? 그렇게 한다고 문제의 '원인'에 타격음을 낼 수는 없다. 이선균을 추모하는 건 각자의 자유겠지만, 이런 부류의 사건은 이선균 혼자만 겪은 것이 아니다. 사생활 추문을 겪은 연예인도 마약 투약 혐의로 포토라인에 서는 연예인도 흔하다. 지드래곤 역시 이선균과 같은 시기에 수사를 받았다. 피의사실이 함부로 흘러나오는 건 경계돼야 하지만, 수사 진행 상황이나 새로운 혐의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는 많고 공익에 부합하기에 묵인될 때도 많다. 묻고 싶은 건 이선균의 범죄 혐의, 마약 투약이 수사 내용 공유가 시급히 요청될 만큼 무거운 죄목이냐는 거다. 사회 정서를 보면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이선균을 추모하는 사람들조차 말이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48)씨가 23일 오전 3번째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출석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48)씨가 23일 오전 3번째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출석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마약 사범이 왜 처벌받는지 생각해 보자. 마약은 사람의 심신을 황폐화하고 사회 기반을 부식시킨다. 사회 구성원들을 마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이 요구된다. 마약 투약자 역시 국가가 보호하고 재활로 이끌어야 하는 대상이다. 마약 투약은 피해자 없는 범죄다.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거지 타인의 목숨이나 재화를 뺏는 게 아니다. 연성 마약을 비범죄화하는 국가들이 있고, 도박 같은 여타 피해자 없는 범죄와 마찬가지로 형법 처벌의 타당성에 관해 논쟁이 이어지는 이유다. 물론 마약을 남에게 권하거나 퍼트리는 건 자신을 떠나 남을 해치는 행위고 사회 기반을 적극적으로 축내는 짓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약 판매자와 마약 소비자를 구분해서 봐야 하고, 전자는 관용 없이 처벌하더라도 후자는 다른 잣대로 판단할 수 있다. 범죄를 넘어 보건의 관점에서 마약에 접근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 이유다.

한국 사회는 무언가 뒤집혀 있다. 관련 법익을 훨씬 크게 해치는 건 마약 판매와 유통인데도 투약한 사람들이 훨씬 크게 주목받고 ‘마약 사범’이란 낙인이 찍혀 악마화된다. 이런 편향은 연예인 같은 유명인들에게 쏠려 있어서 마약 문제가 사회면 뉴스보다는 일회성 가십으로 휘발되고 만다. 마약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면 투약자들 재활에 힘써야 하고, 원천적으로 공급을 차단해서 예방해야 한다. 그런데도 마약이 정책이 아니라 도덕으로 가늠되고, 실질 대책은 뒷전인 채 유명인의 몰락이 중계된다. 이선균의 피의사실이 무더기로 흘러나온 건 단순히 일부 경찰과 언론, 천박한 근성의 인터넷 군중 때문이 아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공고하게 조성되어 있기에 경로 의존성에 따라 이슈가 흘러가고 상황이 진행됐다. 사람을 살리려고 마약을 막는 건데, 사회적 파산 선고를 내리는 황색뉴스가 난무한 끝에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다. 이게 이 나라에서 도덕이 왜곡되고 과잉된 지점이다.

[단독] 유흥업소 실장 “5차례 투약” 진술…이선균 측 “허위 주장” (KBS 뉴스9 11월 24일 자 보도화면 갈무리)
[단독] 유흥업소 실장 “5차례 투약” 진술…이선균 측 “허위 주장” (KBS 뉴스9 11월 24일 자 보도화면 갈무리)

마약을 비범죄화하자는 급진적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선균 역시 피의사실 유출과 별개로 수사를 받을 만한 혐의점은 있었다. 그 외의 행적 또한 지켜보는 이들에 따라 나름의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다만, 죄의 성질과 경중을 가리자는 것이다. 마약을 투약했건 무엇을 했건 잘못이 있었다고 해도 죽을죄는 아니란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선균을 죽인 것이 누구라고 범인을 찾는 언설이 난무하는 것을 봐도, 유사한 사태가 재발되어선 안 된다는 점에 공감대가 있긴 있는 것 같다. 그를 위한 대안은 마약에 대한 도덕주의를 걷어 내는 것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모든 이가 미디어의 연옥에 갇힌 '이슈 초과잉 사회'에서 귀를 닫고 살 방법은 없고, 가십을 소비하는 행위에 죄의식을 추궁하는 건 쓸모가 없다. 정책과 형법을 다루고 수사를 하는 국가 기관들이 관점을 전환하여 일을 처리하고 사회적 판단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 마약 사범을 카메라 앞에 소환해 가짜 이슈를 만들거나 사회를 정화하며 정부 권위와 강권력 강화의 명분을 얻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마약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초점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이 부고 소식에서 얻을 수 있는 구체적 교훈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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