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얼마 전 보이그룹에 관한 흥미로운 대화가 있었다. 보이그룹 ‘갓세븐’ 출신 뱀뱀의 유튜브 채널에 보이그룹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의 연준이 출연했다. 연준은 보이그룹은 걸그룹에 비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고, 뱀뱀은 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 비슷한 생각을 했다며 동의했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얘기이고, 보이그룹에 관한 일반적 인식이다. 보이그룹은 대중성이 약하고 걸그룹은 대중성이 강하다, 다르게는 보이그룹은 대중성이 약한 대신 팬덤이 강하고 걸그룹은 대중성이 강한 대신 팬덤이 약하다.

걸그룹 = 대중성 / 보이그룹 = 팬덤’의 공식은 몇 년 전부터 일정 부분 현실 적합성을 잃었다. 이젠 걸그룹도 팬덤이 크고 걸그룹이라도 예전만큼 대중성이 강하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그룹은 걸그룹보다 팬덤이 크고 팬덤 말고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아이돌 산업은 보이그룹과 함께 시작됐고 보이그룹은 대중에게 아이돌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H.O.T가 그랬다. 지난 이삼십 년 동안 보이그룹이 ‘그들만의 세상’으로 철수하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보이그룹은 이성애적 욕망의 대상이다. 그런 성격이 모든 직군의 연예인 중 가장 크다. 걸그룹은 동성의 선망과 동일시, 이성의 욕망과 퀴어적 애호 등 비교적 다양한 주체의 응시가 교차하는 장소다. 보편적인 관심사, 사회적 화젯거리가 된다. 보이그룹 팬은 절대다수가 여성이다. 케이팝 산업의 역사가 흐르며 팬덤의 성별은 고정된 채 연령대가 확장되었을 뿐이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 'BTS: Yet to Come' [쿠팡플레이 제공=연합뉴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 'BTS: Yet to Come' [쿠팡플레이 제공=연합뉴스]

둘째, 그러므로 보이그룹은 팬덤 속으로 침잠할 수밖에 없다. 이성애적 감정, 시쳇말로 ‘유사 연애’로 결속된 코어 팬덤을 개발하고 규모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1세대 보이그룹은 매스미디어 시대의 ‘좋은 시절’에 데뷔했다. 새롭게 등장한 아이돌 산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받아 안는 ‘대중성’도 누리고 10대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다. 00년대에 데뷔한 동방신기는 10대 여성 팬덤에 더욱 특화된 콘셉트로 데뷔했다. 보이그룹은 어린 여자들의 우상이라는 라벨을 더 뚜렷하게 붙이며 외부에 대해 성채를 쌓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비슷한 시기 데뷔한 빅뱅처럼 대중성에 더 특화된 존재도 있었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에는 아이돌 그룹 열풍과 함께 보이그룹들이 대중적 지명도를 얻었다.

셋째, 과도기를 거친 후 뉴미디어와 글로벌 시대가 왔다. 공중파 티브이는 예전만큼 유명세를 줄 수 없게 됐다. 시청자 연령대가 올라가며 아이돌을 위한 방송도 만들지 않는다. 기획사들은 스스로 방송국이 되는 길을 택했다. SNS와 유튜브, 브이라이브를 통해 자체 콘텐츠를 제작했다. 그것이 ‘입덕 경로’가 됐다. 주류 미디어와 공유되지 않는 미디어 사용자들이 팬덤으로 포섭됐다. 국내 팬덤 시장은 그렇게 세분화, 고도화됐다. 뉴미디어 활동의 각개 약진과 함께 해외 시장 역시 전면적으로 확장됐다. 미디어엔 더는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그룹은 국내 ‘대중성’을 얻지 못하는 대신 더 큰 시장인 해외의 팬덤을 얻었다. 정확히 이 경로로 스타가 된 존재가 방탄소년단이다. 국내에선 대중적 히트곡이 없었지만, ‘그래미 스타’가 된 후 위상이 역수입 돼 사회 명사로서 ‘대중성’을 얻은 케이스다.

요약하면, 보이그룹이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거나 그런 상태로 케이팝 산업이 발전해 온 건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외-팬덤 세일즈에 집중하는 노선이 훨씬 크고 두터운 매출을 보장한다. 많은 사람에게 대문을 여는 단순하고 통속적인 기획보다는 코어 팬덤 창출에 특화된 콘셉츄얼한 기획이 추구됐다. 복잡한 세계관과 BL적 콘셉트, 퍼포먼스에 특화돼 구성이 다단한 사운드가 제작됐다. 케이팝의 해외 지향적 움직임, 빌보드 차트를 뚫으려는 몸짓은 갈수록 가열하다. 영어 가사 비중이 한국어 가사보다 크고, 가사 전부가 영어인 노래도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대중’과는 더욱더 괴리된다. 해외-팬덤 지향적 산업으로 성장한 현재의 케이팝을 이룬 존재, 케이팝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을 이루는 것이 보이그룹이다.

그룹 세븐틴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그룹 세븐틴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최근 이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보이그룹이 있다. 세븐틴이다. 세븐틴은 2015년 데뷔 후 보이그룹의 활동 노선을 착실하게 밟으며 거물이 됐다. 한국과 해외를 아울러 가장 큰 팬덤을 보유한 그룹 중 하나가 되었지만, 국내 차트에서 히트한 노래는 없었다. 하지만 올해 초 유닛 그룹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를 시작으로 ‘손오공’, ‘음악의 신’까지 세 곡이 연달아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저 노래들은 ‘대중 지향적’ 프로덕션의 집합체라고 할만하다. 친숙하면서 신나고 직관적인 편곡과 멜로디, 몇 마디 어렵지 않은 영어 표현을 빼고는 한국어로 명료하게 쓴 가사, 챌린지 참여를 유도하는 재밌는 안무 구성… 팬덤 세일즈의 모범생 같은 이 그룹이 더 많은 ‘대중’들과 만나려 하는 의지가 모든 요소에서 드러난다.

특히 저 노래들의 가사는 특정한 성별의 팬덤에게 호소하거나 특정한 주제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일상에서 힘을 내 ‘파이팅’하라고 외치고, 음악이 주는 감동을 예찬하며 청자들과 나눈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들이다. 장르 대중화 전략의 일환으로 장르의 고유한 주제 대신 사랑 노래와 포지티브한 사회적 메시지를 가사에 담던 2000년대 한국 힙합이 걸은 길과 닮아 있다.

CJ ENM의 한류 공연 겸 축제인 케이콘이 지난 14∼16일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렸다. 사진은 16일 공연 모습. 2022.10.17 [CJ ENM 제공]
CJ ENM의 한류 공연 겸 축제인 케이콘이 지난 14∼16일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렸다. 사진은 16일 공연 모습. 2022.10.17 [CJ ENM 제공]

하이브 의장 방시혁은 최근 <유퀴즈>에 출연해 케이팝 시장이 외연 확장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케이팝이 팬덤 산업으로 고착된 경계에 갇혀 비 팬덤 소비자에게 가닿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발언이겠지만 세븐틴의 행보와도 통한다. 해외 팬덤 시장을 확보한 그룹이 다시금 ‘외연’을 넓히기 위해 거꾸로 국내 대중성 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이건 다른 그룹이 아닌 세븐틴이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이 그룹은 영어권 시장보다는 아시아 시장에 중점을 두고 있고, 한중일 동아시아에서 더 이룰 것 없을 만큼 성공을 거뒀다. 탄탄한 팬덤을 확보해 놓았기에 방향을 틀어 조금 다른 행보를 가져갈 여유가 있고, 그 방향이 가요적 색채가 짙던 기존의 음악 프로덕션에도 부합한다.

세븐틴의 노선은 분명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 뒤편엔 케이팝 산업이 마주한 딜레마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래와 챌린지는 흥행했지만, 그를 통해 세븐틴이란 그룹이 그전보다 얼마나 대중적인 존재가 됐는지는 확인하기 힘들다. 미디어의 형해화로 인해 음원의 유행, 쇼츠의 유행은 서로 다른 구역에서 일어나고 하나의 맥락으로 잘 통합되지 않는다. 해외/팬덤 지향적 콘텐츠로는 국내/대중성과 멀어질 수밖에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팬덤 산업으로선 외연의 한계에 부딪혔고, 대중성 시장이 사라지는 시대에 대중성을 잡는다고 해서 얼마나 이득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왜 보이그룹은 걸그룹보다 유명하지 않을까”란 질문에는 국내외 양면으로 성장 동력의 고갈에 직면한 케이팝의 현주소가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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