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올해는 힙합 탄생 50주년이다. 연말이니까 50주년을 기념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힙합의 태동은 1973년 여름이라고 합의 돼 있다. 힙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DJ 쿨 허크가 어느 파티에서 턴테이블 두 개로 노래의 브레이크 구간을 반복해서 트는 기술 ‘메리 고 라운드(Merry-Go-Round)’를 선보인 날이다. 이것이 샘플링과 룹을 기반으로 하는 클래식한 힙합 작법의 견본이 되었다. 이렇듯 힙합이 첫울음을 우는 분만실이 된 것은 흥겨운 파티장이었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이 탄생의 순간을 힙합의 ‘근본’과 결부 짓고는 한다. 힙합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논쟁에 대한 입장이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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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에 관한 가장 유명 키워드이자 가장 오해받는 키워드는 ‘저항정신’이다. 힙합은 차별받는 흑인들의 저항에서 시작했으며 사회 비판이 힙합의 지향점이라는 통념이다. 주로 장르 밖의 일반적인 사람들과 지식인들이 가진 오해다. 예컨대, 힙합의 뿌리는 저항정신인데 한국 래퍼들은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는 일간지 칼럼이 있었다(경향신문, 이종임, [문화비평] 비난으로 변질된 힙합의 저항정신). 이런 논조는 몇 해 전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도 센 척하던 래퍼들이 정말로 ‘디스’할 대상 앞에선 숨죽이고 있다는 여론으로 반복됐었다. 지금도 군 면제받은 래퍼 명단을 들먹이며 한국 래퍼들은 타락했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힙합 팬들과 일부 평론가는 정반대 주장을 한다. 첫 문단에 쓴 힙합의 기원을 인용하며 힙합의 시작은 “파티 음악”이고 따라서 힙합의 근본은 저항정신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장르에 관한 지식을 제시하며 ‘대중의 무지’를 지적하는 식이다. 힙합이 저항의 음악이라는 건 꼭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그렇게 부르는 맥락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긴 하다. 잘못된 통념으로 문화가 재단되고 있다면 사실관계를 가리는 건 필요한 작업이다. 장르 신 내부에서 그 반대급부로 일반화가 일어난 것이 문제다. 파티 음악이란 ‘팩트’를 단편적으로 읊으며 힙합에서 윤리와 깊이를 추구하는 시도를 거절하는 것이다. 힙합을 유희를 위한 장르처럼 규정하고, 엄숙함·진중함과 분리하려는 편향이 생겼다. 사회적 시선이 장르와 결부되는 것 자체가 고루하게 여겨지고 ‘힙알못’들의 ‘선비질’이라고 치부된다.

'2022 망상해변 코리아 힙합 어벤져스 in 동해'가 지난 29일 밤 강원 동해시 망상해변 특설무대에서 열리고 있다. [동해시 제공=연합뉴스]
'2022 망상해변 코리아 힙합 어벤져스 in 동해'가 지난 29일 밤 강원 동해시 망상해변 특설무대에서 열리고 있다. [동해시 제공=연합뉴스]

사회의식을 표현하는 컨셔스(conscious) 랩은 랩의 하위 양식 중 하나일 뿐이다. 래퍼들이 그와 같은 방식의 가사를 쓰라고 강요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짚으면, 힙합이란 ‘장르 음악’의 출발점은 파티 음악이지만 힙합이란 ‘문화’의 바탕은 미국 흑인들의 사회적 현실과 떼놓을 수 없다. 제프 창이 쓴 'Can't Stop Won't Stop'은 힙합의 역사를 정리한 유명한 책이다. 저자는 1970년대 힙합의 발상지 사우스 브롱크스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해 당대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이 처한 억압적 현실 속에 힙합이 어떻게 발생하고 전개되었는지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힙합은 그들의 정치적 분노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을 ‘저항정신’이라고 부르자면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다.

내가 '저항정신'이란 개념을 꺼리는 건 다른 이유에서다. 장르를 규범화하는 개념이다. 장르 문화를 이해하는 프리즘이나 콘텍스트가 아니라 장르에 대한 타자화로 빠질 수 있다. 힙합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당위 부여는 물론 소울 음악 같은 블랙 뮤직을 흑인들이 부른 아픔의 음악이라고 단면적으로 규정하는 함정 말이다. '저항정신'이란 논쟁의 불씨를 품은 단어를 제치고 바라본다면 힙합 문화의 바탕에 특수한 사회적 현실이 얼마나 넓게 깔려있는지 알 수 있다. 예컨대, 미국 흑인들의 현실은 정치적 메시지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블랙 뮤직의 다양한 음악적 양식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반영돼 있다. 힙합 문화가 저항이란 테마를 품고 있음을 이해하면서도 장르의 모든 요소를 그 테마로 환원하는 함정을 피하고 개별 장르 요소들의 독자성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다.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1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1

올해는 한국힙합의 상업화를 이룬 엠넷 <쇼미더머니>가 11 시즌 만에 퇴장한 해이기도 하다. 내년에 새로운 힙합 방송 <랩: 네이션>이 론칭될 예정이란 소식이 도착했다. 한국에서 힙합은 유행이 꺼졌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마이너 문화도 아니다. 한국 최고의 음악 방송이 11, 12년 넘게 우려먹을 정도의 상업성은 있는 문화다. 그럼에도 장르 팬들 사이에서 마이너 문화를 향유한다는 배타적 자부심은 두터운 묘한 상황이다. 이들은 "나는 대중과 달리 이 문화의 진짜 멋을 아는 리스너"라는 자의식이 앞서는 나머지 귀가 닫힌 경향이 있다. 입맛에 맞는 ‘팩트’만 공유하고 쓴맛이 나는 관점은 뱉으며 상대를 ‘힙알못’이라고 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장르 내부에서부터 장르에 대한 부정확한 사실과 견해가 공인되고 유통되는 결과를 낳는다.

한 문화가 세월의 더께를 쌓은 지 50년이나 되었다면 그 안엔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맥락의 무늬들이 아로새겨졌을 것이다. 아무쪼록 이 글이 힙합에 대한 여러 사람의 관점을 중재하는 데 보탬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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