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노하연 기자]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씨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발의된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법안 취지를 퇴색시키는 조항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방송 미디어 노동자와 직장내 괴롭힘 : 오요안나법의 조건은 무엇인가?’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번 토론회는 국회 노동포럼(이학영·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 직장갑질 119가 공동주최했다.

지난해 9월 비정규직 기상캐스터 오 씨가 사망하고 올해 1월 언론 보도를 통해 오 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이 공론화됐다. 고용노동부는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 MBC 특별근로감독을 실시, 5월 19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오 씨에 대한 MBC 내부의 괴롭힘 행위가 인정된다면서도 “고인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정했다. 노동부는 “같은 법 76조의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해당 조항은 프리랜서 및 특수고용직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근무 노동자, 온라인 괴롭힘에 대해 적용 불가능하다.
이날 발제에 나선 진재연 엔딩크레딧 집행위원장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를 거론하며 “방송미디어 현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여전히 여러 가지 형태로 심각하게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엔딩크레딧과 직장갑질119는 지난 3월 5일부터 14일까지 방송 미디어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 396명을 대상으로 ‘방송 비정규직 긴급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오 씨 사망 사건의 구조적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무늬만 프리랜서라는 고용형태’(48.3%)를 가장 많이 꼽았다. 재발 방지책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대상을 프리랜서에게 확대 적용’,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 및 관리·감독 강화’가 각각 43.1%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진 위원장은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에게만 적용하는 현행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은 비정규직 방송 미디어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며 “근로자성 인정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일하는 노동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돼야 제2, 제3의 오요안나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 씨의 사망 이후 정치권에서 관련 법 개정 움직임이 이어졌다. 22대 국회에 발의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100여 건에 달하며, 이 중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안은 7일 기준 13개다. 이들 개정안은 괴롭힘 판단 요건을 구체화하고 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며 미비한 피해자 신고 절차를 보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개정안이 실질적인 보호보다 형식적인 접근에 그쳐 법 제정 취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형식상 ‘오요안나 법’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구체적 내용을 살펴봤을 때 오히려 법 취지에 역행하고 우려가 되는 지점이 사실 몇 가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이 거론됐다. 해당 법안은 ‘지속성’과 ‘반복성’을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 요건으로 추가했다. 김 노무사는 “‘괴롭힘 정의 규정이 모호해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적극 수렴한 결과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법령상 ‘지속성 반복성’을 판단 요건에 추가할 경우 필연적으로 ‘지속성 반복성의 기준’을 수치화할 수밖에 없고 신고의 문턱이 한층 높아지는 것은 물론 노동부 등이 행정 편의상 기계적 수치에 끼워 맞춰 괴롭힘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2019년 채택된 ILO(국제노동기구) 190호 협약은 ‘일회적이든 반복되든 괴롭힘과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용자가 구성한 직장 내 괴롭힘 조사위원회가 ‘신고 내용이 명백히 허위인 경우 신고자에 대한 징계를 의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김 노무사는 “징계를 우려하는 피해자들이 신고를 못하도록 위협하는 법적 장치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기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제정 취지 자체를 퇴색시키는 것은 물론 ‘일터 약자 보호’라는 명분에도 정면 배치되는 이중의 문제를 안고있다”고 했다.
김 노무사는 “고용형태를 불문하고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근로기준법 상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적용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 법률은 반드시 제정 또는 개정돼야 할 것”이라면서도 “현행법의 취지를 역행하고 제도 자체의 실효성을 퇴색시키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내용들은 여야가 합의해서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오요안나 사건을 맡은 전상범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위해 노동부가 ‘표준 징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전 변호사는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징계 등의 조치를 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만약 가해자와 사용자가 가까운 위치에 있다던가 (가해자가) 직접적인 사용자라면 제대로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고용노동부에서 괴롭힘의 사례를 분석해서 표준 징계 기준 등을 고시 형태로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하은성 샛별노무사 사무소 공인노무사는 근로자성 인정 문제를 짚었다. 하 노무사는 “모든 노동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발제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며 “하지만 여전히 근로기준법이 근로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근로자로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 노무사는 “전반적인 발제 방향인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 범위 확대에는 동의를 하지만 왜 유독 이렇게 방송 미디어업계에 비정규직 그리고 프리랜서가 많은지, 그 특수성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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