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 즉 내란을 완전히 끝내고 나라를 새롭게 하는 의미로서의 대통령 선거의 날이 밝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유권자들이 어떻게 투표를 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정치권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여의도와 언론은 50, 40, 10의 숫자를 주목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50% 득표를 넘기면 새 정부가 강력한 개혁을 밀어 붙일 수 있게 되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40% 득표에 미달하게 되면 보수 궤멸의 상황에 빠질 수 있으며,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10% 득표에 미달하게 되면 새로운 보수를 재건할 수 있는 밑천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 필요한 것은, 내란의 뿌리를 완전히 뽑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선을 하루 앞둔 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마지막 유세가 열린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 마당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이 후보의 연설에 환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선을 하루 앞둔 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마지막 유세가 열린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 마당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이 후보의 연설에 환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는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가?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로 볼 때, 윤석열은 지난 총선 결과를 부정하고 자신이 주도하는 사실상의 독재 체제 구축을 시도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총선 결과가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의 기록적 패배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의 압도적 승리라는 점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는 이 시기 이후 본격적으로 모색되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총선에서 패배한 대통령은 협치 등 타협적인 정국 운영의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할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한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치명적 약점이란 첫째로 김건희 관련 문제이며 둘째로 자신의 파행적 국정 운영과 관련된 사법적 책임의 문제이다. 해병대원 사망 사건은 이 두 가지 리스크의 교차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김건희 특검, 해병대원 특검이 협치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윤석열의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장기였다면 외통수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패배를 인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판을 엎기로 한 것이고, 그게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라는 기행으로 나타난 게 내란의 본질이다.

그런데 김건희 문제 중에서도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등은 윤석열 집권 이전부터 상존하던 것이다. 윤석열이 ‘김건희 방어’를 위해 불법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정도였다면, 그 이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대해왔던 것일까? 가령 검찰총장 시절에는 어떻게 한 것인가? 이 사태의 근본을 찾아가는 것은 이러한 질문에 모두 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씨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씨 (사진=연합뉴스)​

물론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앞서 ‘판을 엎기로 한 것’이라고 했는데, ‘판을 엎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곧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한 덕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은 어떻게 가능하였는가? 자유민주주의자의 소양이 없는 자를 자유민주주의자로 부르며 다수 유권자들이 지도자로 선택하는 일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대선은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우리 사회 공동체의 집단적 실천이 되어야 한다.

윤석열이 자유민주주의자로 둔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그 전임인 문재인 정권을 권위주의 혹은 전체주의, 즉 ‘독재’로 규정하는 데에 일정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에서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어떤 특성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상대가 ‘독재’임을 소리 높여 외치며 그것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다. 즉, 자유민주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독재에 반대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현대 정치를 구성하는 여러 요인들이 알아서 그 사람을 자유민주주의자로 포장해준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이재명 총통’을 말하며 히틀러, 스탈린의 예까지 들어 독재를 막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의 이러한 정치 문법을 겨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그러한 문법은 오늘날에도 일정한 성공을 거두어 김문수 후보의 지지율은 보수 유권자들의 단결에 힘입어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기간 직전까지 소폭의 상승을 거듭해 온 바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는 앞서 언급한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관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정작 윤석열과의 절연은 확고히 선언하지도 못하면서 과거 윤석열이 즐겨 사용한 정치적 프레임 형성의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윤석열식 정치를 바꾸는 대선'을 치르기는커녕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조차 반성이 없다는 것은 것은 결국 심판의 대상이 되는 길을 자처하는 것이다.

5월 22일 서울 성북구 한 도로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후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서울=연합뉴스)
5월 22일 서울 성북구 한 도로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후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문수 후보가 심판의 대상이라면 새로운 보수를 대안으로 생각해야 할까?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그 새로운 보수의 성격이다. 그 새로운 보수가 혐오와 갈라치기 위에서 시작한다면 마찬가지의 결과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로 상징되는 파국적 보수는 혐오에 편승하는 정치와 맞닿아 있다. 윤석열이 이전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고 자신을 자유민주주의로 포장하는 과정에는 여성의 새로운 정치적 단결을 위협으로 보는 흐름의 정치적 각성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키워드는 이들을 기성의 기득권적 보수와 하나로 묶는 고리로서 악용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역할을 한 게 혐오에 편승하는 정치다. 따라서 혐오에 편승하는 정치란 곧 윤석열 정치의 일부이다.

그런데 이준석 후보는 지난 대선 후보 TV토론과 그 여파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혐오에 편승하는 정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 이러한 정치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불법적 비상계엄을 촉발한 윤석열식 정치를 끝내는 유권자들의 투표는 어디로 귀결되어야 하는가? 앞서의 과정을 보면 명백해진다. 압도적 격차의 정권교체, 광장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나선 후보의 유의미한 득표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이 결과가 실제 현실이 되는 결과를, 오늘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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