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과 출국 과정, 대통령실의 대응을 보면 도대체 국정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한탄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이 문제와 관련한 ‘이종섭 특검’을 별도로 추진하는 것의 속내는 정치적 구도에 닿아있는 걸로 보인다. 특검법안이 21대 국회 내에 처리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22대 국회에서라도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전망’을 유권자들이 갖게 하는 것으로 정권심판론을 키우고 국민의힘을 제외한 범야권 전체 의석수를 늘려줄 것을 호소하는 전략이 아니겠느냐는 거다.
채상병 사건에 대한 특검법 처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 야당이 특검 카드를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러한 비판으로 얘기를 끝내기엔 상황이 초현실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엄중하다. 대통령실은 “공수처라는 게 민주당에서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며 출범시킨 건데, 이제는 그 공수처를 믿지 못해 특검을 하자는 건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했는데, 국정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언급이다. 야당이 ‘기재부, 금융위는 이명박 정권 때 만든 부처이므로 못 믿겠다’고 주장하면 인정할 건가?
보수언론은 수도권 지역구 출마 후보, 당 관계자 등의 주장 등을 근거로 국민의힘 수도권 위기론을 제기하고 있다. 조국혁신당의 부상이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파동 영향을 차단한데다 고물가와 이종섭 전 장관 문제 등으로 정권심판론이 다시 부상하는 가운데 한동훈 비대위가 이를 타개할 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다. 조선일보는 14일 “거리 인사를 나갔더니 한 유권자가 ‘이종섭은 어떻게 할 거냐’고 따져 묻더라”는 서울 지역구 출마 후보의 발언을 전했다.
악화된 여론을 전하는 조선일보 기사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이종섭 전 장관의 ‘4시간 조사’ 논란에 대해 공수처 관계자가 “임명 사실을 언론을 보고 알게 돼 황급하게 조사를 준비했다”고 한 대목이다. 공수처 입장에선 순서대로 수사를 해나가야 하는데 피의자가 갑자기 호주 대사로 임명이 돼 조사가 어려워질 위기에 처했으니 갑작스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를 진행했어야 했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법무부는 지난 11일 이종섭 전 장관 출국금지 해제와 관련해 “공수처에 자진 출석해 조사받고, 증거물을 임의 제출하면서 향후 조사가 필요할 경우 적극 출석해 조사에 응하겠다고 했다”는 점을 판단 근거 중 하나로 설명했다. 여기서 임의 제출한 증거물은 휴대폰으로 보이는데,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는 최근 새로 개통한 것이라고 한다. 증거물로서 갖는 의미가 크지 않은 거다.
법무부는 “고발장이 작년 9월 공수처에 접수된 이후로 출국금지 조치가 수회 연장됐음에도 단 한 번의 소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역시 출국금지 해제의 이유로 꼽았다. 공수처의 수사가 지지부진해 출국금지 조치를 계속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김진욱 전 공수처장은 지난 1월 퇴임했는데 이때까지 ‘윤심’ 논란으로 후임 결정이 되지 않았고, 공수처장후보추천위가 2명을 추천한 지금도 윤석열 대통령은 공수처장 임명을 미루고 있다. 수사에 속도가 붙을 수가 없다. 둘째, 공수처의 무능이 근본적 문제라면 그 책임은 애초에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고 제대로 된 구성을 반대해 온 지금의 여당에도 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대통령실이 ‘공수처도 못 믿느냐’는 취지로 대응하는 것은 논리 자체로만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거다.
오히려 대통령실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방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법하다. 한국일보 14일 지면 기사 제목은 <수사외압 의혹 ‘키맨’…이종섭 없인 못 푼다>이다. 경향신문은 이날 1면에 김계환 사령관 등의 휴대전화 수·발신 내역과 박정훈 대령 항명 사건 재판 기록 등을 분석해 채상병 사건 당시 대통령실과 이종섭 국방부가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 받았고, 심지어 대통령실은 해병대 수사단을 통해 언론 브리핑 자료를 전달 받고 “이쪽에 전달했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사실관계가 확인된 상태에서 이종섭 전 장관이 수사를 받게 되면 대통령실 관계자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게 아닌가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겨레 14일 지면을 보면 김원철 사회부장이 쓴 <‘국비 도피’ 이종섭, 대통령의 무리수>란 제목의 칼럼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문체부의 특정 국과장을 두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하면서 장관에게 경질 인사를 지시한 일에 대해 당시 박영수 특검팀이 직권남용 및 강요를 적용했고, 이 중 직권남용죄는 대법원에서 인정됐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대통령 범죄 전문가’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섭 전 장관을 위험을 무릅쓰고 호주 대사로 임명하는 무리수를 둔 이유가 무엇이겠냐는 게 결론이다.
보통 이런 경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제대로 이뤄지기도 힘든 수사를 호주 대사를 임명하는 등의 수단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면 특검 외에 무슨 해법을 얘기해야 할까? 더군다나 대통령실이 성심성의껏 해명하는 게 아니라 이래놓고 ‘공수처도 못 믿느냐’면서 딴청을 피우고 있다면? ‘총선용 특검 카드 남용’이라는 비판으로 퉁칠 수 있는 그런 안일한 시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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