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다시 한 번 칼을 빼든 것일까? 17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공수처의 소환을 전제로 한 귀국,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에 대해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는 소식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수도권 및 격전지 출마 후보들의 원성을 견디다 못해 나온 걸로 보인다. 17일 선대위 회의 이전까지만 해도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종섭 전 장관과 황상무 수석 논란에 대해 미온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철수, 나경원 후보 등이 참석한 선대위 자리에서 심각한 수준의 우려가 나오자 결국 총대를 메기로 한 거다.
언론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 문제를 두고 충돌했을 때에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사퇴 압박을 떨치고 주도권을 잡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지나고 보면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어쨌든 이번엔 어떻게 될까? 결말을 예상하려면 지금 용산의 생각, 특히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이 MBC를 겨냥해 1988년의 ‘회칼 테러’ 사건을 재론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
사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은 지난주부터 제기됐다. 지난주 언론은 국민의힘 수도권 출마자 등의 주장을 근거로 ‘여당 수도권 위기론’을 제기했다. 특히 이종섭 전 장관 문제에 대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대통령실에 임명 철회 등을 건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게 언론 보도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 그간 별 반응이 없던 대통령실이 14일부터는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YTN에 “이종섭 주호주 대사 임명 철회는 절대 없다”, “공언유착”, “(공수처는) 공정한 수사 기관이 아닌 좌파 공작기구”라는 등의 극단적 표현을 격앙된 톤으로 늘어 놓은 데 이어, SBS에는 장호진 안보실장이 출연해 공수처가 소환조사 없이 출국금지를 연장한 것은 인권침해라는 등의 주장을 직접 내놓은 것이다.
애초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등장한 것은 정권심판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누구 표현처럼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는 게 여당에는 도움이 되는 구도다. 그런 상황에서, 그렇잖아도 위기라는데 대통령실이 굳이 전면에 나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야당이 공수처까지 이용해 정치공세를 펴는데 여당이 이에 맞서지 않고 오히려 휘둘리며 칼끝을 용산으로 돌리고 있다’는 판단을 한 게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실제 다음 날인 15일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여당 내에서 이종섭 전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철회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자기만 살겠다고 그런 얘기를 하는데 제발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한 걸로 돼 있다.
황상무 수석이 기자들을 만나 밥을 먹다가 말고 “MBC 잘 들어”라며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한 것도 14일이다. 앞서 인용한 이날 YTN 보도를 보면 이종섭 전 장관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수처와 야당, 좌파언론이 함정을 팠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좌파언론’이란 MBC다. 이종섭 전 장관 출국금지 사실 등을 확인해 단독보도한 게 MBC이기 때문이다. 결국 황상무 수석의 언론에 대한 테러 예고에 가까운 발언은 ‘싸우지 않는 여당’에 참다 못해 대통령실이 직접 전선에 나서기로 한 것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이 ‘싸우자’는 분위기니 시민사회수석도 뭔가 역할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그게 이런 괴이한 발언으로 이어진 거 아니냐는 의심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을 보는 대통령의 심경은 어떤 것일까? YTN 보도에 인용된 “공언유착”이라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더불어민주당, 친야 성향의 일부 언론이 결탁한 ‘정치 공작’”, “세 축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덫을 놨다”는 등의 발언은 참모가 독자적으로 고안한 것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과감하다. 대통령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확신해야 가능한 표현이라는 거다.
이게 대통령의 생각이 맞다면, 대통령은 황상무 수석의 문제적 발언에 대해서도 언론이나 일반 상식인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일, 그러니까 싸우지 않는 여당을 대신해 대통령실 참모가 직접 현안에 대응하려다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한 것은 과하지만 그건 주변적 문제일 뿐이다.
18일 신문을 보면 이러한 추론은 불행히도 맞아들어가는 걸로 보인다.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황 수석이 식사 자리에서 과거 일을 언급하고, 농담을 한 것임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한다. 또 이 신문은 “대통령실은 황 수석의 발언이 실수인 것은 분명하지만 수석 직을 내려놓을 만한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 “황 수석은 주말에도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업무지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고도 보도했다. 그 외 다른 신문도 지금으로서는 황상무 수석의 경질 가능성은 없다고 보도하고 있다.
지난번 윤석열-한동훈 충돌의 본질적 결말은 당시 김경율 비대위원의 표현으로 설명 가능하다. 당시 김경율 비대위원은 “아버지가 사과하면 좋은데 그걸 못했으니까 이제 아들이 두들겨 맞으면서 총선까지 가야 되지 않을까”라고 했고, 1교시 국어시험은 (망친채로)끝났고 2교시 영어시험을 봐야 하는 시간이라는 취지의 비유를 들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18일 공수처 조사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사가 귀국해 마냥 대기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검증 과정에서도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또 황상무 수석 건에 대해서도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이나 압력을 행사해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 “현 정부는 과거 정권들과 같이 정보기관을 동원해 언론인을 사찰하거나 국세청을 동원해 언론사 세무사찰을 벌인 적도 없고, 그럴 의사도 없다”고 했다.
현재 상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건데, 앞서의 비유를 들자면 이제 여당은 3교시, 4교시 시험도 망친 채 시험 종료 종소리를 듣게 된 셈이다. 대통령이 자기 살자고 참 여러 사람 고생시킨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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