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2009년 정리해고 당시 노조 조직쟁의실장이었다. 그가 맡은 일은 선동이었다. 조합원을 만나며 “노동조합으로 뭉치면 이길 수 있다”고 독려하며 파업을 조직했다. 옥쇄파업에서 그는 ‘옥상 망원경’을 맡았다. 테이저건을 들고 다니는 경찰, 최루액이 담긴 헬리콥터를 관찰했다. 동료에게 새총을 겨누는 직장동료들(이른바 구사대)도 지켜봤다. 그리고 “동료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전화를 걸었다.

2009년 평택공장은 전쟁터였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77일 동안 옥쇄파업을 벌였고, 파업 중인 6월8일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상처는 깊었다. 김득중 지부장은 파업 이후 곧장 구속돼 1년 동안 옥살이를 했는데 석 달은 망원경으로 봤던 얼굴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출소한 뒤 “왜 그랬느냐” 따져 물을 생각으로 다시 만나야 할 사람들의 이름을 정리했다. 6년 전 기억이 떠올라 여전히 공장 앞에 가기를 꺼리는 해고자도 있다.

전쟁은 그때만 치른 게 아니었다. 정리해고 이후 노동자와 가족 28명이 숨졌고, 쌍용차 노동자들은 6년 내내 상을 치렀다.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최근 2009년 정리해고자 142명, 복직자 176명 등 31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해고자의 75.2%가 ‘우울 및 불안장애’를, 72.2%가 ‘불면증 및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 해고자 열중 일곱은 연 2천만원 이하로 살고 있고, 넷 중 한명은 ‘무직’이다. 삶은 완전히 뒤틀려버렸다.

2014년 11월에는 대법원마저 ‘정리해고는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파기환송심’이 남아 있지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같은 해 12월 두 명의 해고노동자가 공장 안 굴뚝에 올라간 것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이효리 김제동 김의성 같은 유명인도 나섰다. 결국 1월 대주주인 마힌드라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쌍용차는 해고자 문제를 전향적으로 접근했다. 65개월 만에 노(쌍용차지부)-노(기업노조)-사(쌍용자동차) 교섭을 시작했다.

14차까지 실무교섭을 한 결과 노노사는 희생자 가족 지원 대책과 회사정상화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접근을 이뤘으나, 해고자 복직과 손배가압류 문제를 두고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리고 있다. 10일 만난 김득중 지부장은 “회사는 여전히 ‘아직 정상화되지 않았고 (티볼리) 판매에 따른 라인 운영의 세부일정을 확인할 수 없고 당장 답을 할 수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진척은 없지만 대화는 계속하자는 게 노노사 입장”이라고 전했다.

두 가지 쟁점은 결국 ‘결단’의 문제로 보인다. 그래서 14차 교섭 때 쌍용차지부와 기업노조는 회사에 ‘노노사 대표가 참여하는 본교섭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김득중 지부장은 지난 8일 노노사 대표들이 비공식 대화를 진행했고, 오는 12일에도 만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3시간 동안 만났고, ‘형식을 떠나 내용을 만들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지부는 6월을 교섭집중시기로 본다. 타결 소식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해고자들은 돌아갈 채비를 끝냈다. 이들은 매일 아침 7시 평택공장, 서울 정비사무소 앞으로 출근해 하루 한시간 넘게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다. 김득중 지부장은 갈등과 반목, 불신을 없애기 위해 평택으로 내려갔고, 지금 현장 분위기는 좋다고 전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새총을 쏘던 동료들에게도 악수를 건넨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조만간 활짝 웃으면서 공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그때 꼭 와 달라”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다시 모이고 있다. 김득중 지부장은 굴뚝농성 이후 3명의 동지가 다시 지부 사무실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이들은 여느 대기업 노동조합보다 훨씬 많은 조합비, 그리고 시민들의 후원, 그리고 ‘와락’과 연대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6년을 버텼다. 여전히 무직이고, 전국에 뿔뿔이 흩어졌지만 서로 의지하며 돌아갈 준비를 해왔다. 김득중 지부장은 “우리에게는 한날한시가 절박하다”고 말했다. 이제 쌍용차의 결단만 남았다.


김득중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인터뷰 전문

- 교섭은 지지부진하고, 회사와 노조를 통해 확인되는 쌍용차의 입장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여기까지 오는 데 6년이 걸렸다. 지난 6년을 어떻게 평가하고, 교섭 전망은 어떤가.

특히 올해는 만 6년이고, 굴뚝농성으로 새해를 맞았다. 굴뚝농성으로 만 65개월 만에 노노사가 만나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1월29일 첫 만남을 시작으로 지난주까지 14차 실무교섭을 진행했다. 의제는 4가지로 해고자 복직, 손배가압류, 희상자 유가족 지원 대책, 회사정상화 방안이다. 해고자 복직과 손배가압류를 제외한 의제에 대해서는 의견접근을 이뤘다.

- 가압류 문제는 왜 의견접근이 어려운 건가.

손배가압류 47억 문제는 결국 회사가 철회하느냐, 마느냐 문제다. 실무교섭에서 논의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고자 복직 문제의 경우 근속과 비용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실무교섭이 필요하지만 손배가압류는 결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가장 큰 쟁점이자 진도가 안 나가는 의제가 해고자 복직이다.

진척을 못 시키고 있다. 회사는 “아직 정상화되고 있지 못하고, 판매에 따른 라인 운영에 대한 세부일정이 확인되고 있지 않다며 당장 답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회사도 ‘대화는 이어간다’는 상황이다. 12차 교섭 때부터 지부는 회사에 ‘대표 참여 본교섭’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실무교섭에서는 대표의 결단이 필요하고 굵직한 문제를 결정하지 못한다. 14차 교섭에서는 지부와 기업노조 실무교섭위원들이 공동으로 “15차는 대표가 참여하는 본교섭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 본교섭을 하기로 했나.

굴뚝농성을 해제한 이유는 건강 문제도 있지만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되고 있는 과정이었다. 대표 참여 본교섭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8일 오후 노노사 대표가 만났다. 만 6년 되는 날이었다. 공장 앞에서 고려대 김승섭 교수 연구팀과 함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였다. 최종식 사장, 김규환 기업노조 위원장,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만났다.

3시간 가까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했다. 저도 6년 소회와 해고자 복직 문제를 빨리 해결하자고 얘기했다. 회사도 마찬가지로 좀 더 의미 있게 반응했다. 실무교섭에서 해결방안에 접근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제는 형식보다 내용을 담아낼 수 있도록 함께 빠르게 노력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못 다한 얘기는 금요일에 다시 만나 나누기로 했다.

- 노노사 대표 회동을 통해 한 발 더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나.

그렇다. 김승섭 교수 연구팀은 해고자와 복직자의 삶과 건강 문제를 다뤘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결과를 맞닥뜨리고 보니 마음이 울컥했다. 그 동안 ‘투쟁’한다며 매일 강한 모습만 보여줬는데 설문결과에는 감춰둔 마음이 있었다. 겉으로 드러내는 강한 모습과 달리 해고가 장기화되면서 갈등하고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조합원들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이 문제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라도 교섭이 진전되고, 빠르게 해결하면 좋겠다.

설문조사 결과, 우울과 정신장애가 75%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만큼 위험한 상황이 해고노동자에게 놓여 있다는 의미다. 이걸 끝내기 위해서라도 회사의 결단이 필요하다. 김승섭 교수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메르스는 지금 치료백신을 구할 수 없다고 하지만 쌍용차 해고노동자 죽음의 문제는 치료약이 있다. 바로 복직이다.” 해고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지난 1월로 돌아가 보자. 마힌드라 회장이 오고 사태가 풀리는 분위기였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티볼리가 잘 팔리면 복직이 빨리진다’며 쌍용차를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런데 교섭은 지지부진하고, 관심은 줄고 있다.

실무교섭은 상당히 지지부진하고 늘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6년 만에 열린 대화다. 우리는 “교섭하자”고 주구장창 주장했다. 실무교섭팀에게도 “대화 국면을 놓지 말고, 풀어보자”고 얘기했다. 그 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다. 장기투쟁사업장은 대체로 ‘잊혀질까’ 걱정한다. 굴뚝농성은 (옥쇄파업 이후) 지난 6년 간 쌍차 투쟁의 최고점이었다. 세간의 이목과 관심이 집중됐다.

2012년과 2013년 노동의제의 중심에 쌍차가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올해 금속노조는 열사(배재형 양우권) 국면이다. 스타케미칼 차광호 동지는 1년 넘게 굴뚝에 있다. 부산의 생탁택시 문제도 있다. 곳곳에 문제가 있다. 물론 쌍용차의 경우, 교섭을 재개하면서 ‘다 끝난 것 아니냐’는 분들이 있다. 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곳에 관심을 더 갖는 분들도 있다. 걱정된다. 그런데 우리 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 지부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우선 현재 (쌍용차지부는) 평택 중심이다. 아침 7시 공장 앞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하는 동료들에게 한 시간 십분 동안 인사한다. 그리고 공장 앞에 있는 사무실에서 하루 일정을 논의한다. 연대집회가 있으면 연대를 가고, 조합원을 만나기도 한다. 간담회도 1~2주마다 진행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정비사업소에 조합원이 있고 이곳에서도 출근투쟁을 진행하고 연대집회에 결합한다. 지부 전체가 집중해야 할 일정이 있다면 그렇게 한다. 2014년부터 이렇게 살고 있다.

사실 우리가 서울 대한문에서 평택으로 내려간 가장 큰 이유는 공장 동료와의 반목, 갈등, 불신에서 벗어나서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분위기는 좋다. CCTV가 있어도 아랑곳 않고 “빨리 돌아오면 좋겠다”는 동료들이 많다. 지부장인 저도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건다. 과거 망원경으로 얼굴을 확인했던 사람들에게도 먼저 다가가 악수를 건넨다.

-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복직자들의 상태였다. 또 다른 비교대상인 완성차 공장 노동자에 비해 대부분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온다. 옥쇄파업과 정리해고로 받은 상처들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분명 트라우마가 있다. 2013년 복직했지만 2009년부터 4년 넘도록 해고자들과 똑같은 삶을 살았다. 복직한지 이제 만 2년이 지나고 있지만 충분히 치유됐다고 보진 않는다. 또 하나 원인으로 현장의 노동강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 않겠나 싶다. 현장에 대한 통제야 과거에 비해 풀렸다곤 하지만 노동강도는 상당히 높아졌고, 이 강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맞춰가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 주관식 답변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자책하는 분이 많다. 자기 능력이 부족해서 정리해고 대상자가 됐고 가족을 먹여 살리지 못하고, 사람들을 피하고, 재취업하려고 해도 차별을 받는 사람이 다수다. 지난 6년 간 이 조합원들과 함께 지냈다. 매일 선전전을 나오는 조합원보다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조합원이 더 많을 거다. 조합원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힘들다”는 메시지로는 짐작이 안 된다.

직업 조사 결과를 보면, 무직이 많다. 일자리가 있어도 정규직보다는 일용직이나 계약직 같이 불안한 일자리다. 평택에 있는 조합원은 적다. 많은 조합원이 일자리를 찾아서 떠났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분들이 많다. 주관식 답변에 나오지만 대부분 부채 문제, 경제적 문제로 힘들어 한다. ‘내가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무능하다’는 심리와 정신적 갈등을 다 갖고 있다.

설문조사에 다 드러난다. 더 비참한 동지들도 있다. 일도 못하고, 이혼을 당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분도 있다. 경제적 문제에, 치매 걸린 부모님 뒷바라지에 외부활동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2009년 (경찰의 강제진압) 후유증으로 몸이 아픈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극소수이지만 2009년의 기억 때문에 공장 앞에 오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있다.

- 그래서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서로 어떻게 케어(care) 하나.

일주일이나 격주에 한 번씩 간담회를 한다. 5월10일에는 총회를 했다. 백여명이 모였다. 지난 과정과 교섭 상황을 설명했다. 그 이후에도 일주일 한 번 만나고 있다. 돌아가신 분과 정년을 넘긴 분까지 187명인데 평택공장이 다수고, 창원 엔진공장 조합원 17명, 정비지회 15명이 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분들이 많지만 간담회에는 60~80명이 온다.

- 교섭 결과를 기대하는 분이 많을 것 같다.

본인의 삶도 힘들지만 노노사 교섭 소식에 관심이 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좌절했지만 교섭에 작은 희망을 갖고 있다. 3자 대표 회동에서도 “회사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한날한시가 절박하다. 희망고문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교섭을 빨리 진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요일에 결론이 날지, 한 번 더 만나야 할지 모르겠다.

- 개인적으로는 지난 6년을 어떻게 버텼나.

2009년 파업 지도부에서 조직실장을 맡았다. 하는 일은 대부분 ‘선동’이다. 선동의 핵심은 “노동조합으로 단결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이었다. 파업 전후, 파업 기간 동안 계속 얘기했다. 제게는 노동조합으로 단결하면 이긴다는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일자리를 찾거나 삶을 돌아봐야겠다는 고민을 못했다. 앞만 보고 왔다. 당장 이 시간 이후, 내일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파업을 하면서 맞벌이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커나가는 것을 보면 미안하다. 그래도 개인적인 고민은 많이 못했다. 문제해결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파업이 끝나고 구속됐고 1년 뒤 복귀했다. 2012년 김정운 지부장 때 수석부지부장을 했고, 2013년 10월부터 지부장 맡았다. 올해 9월 말이면 임기가 끝난다. 2009년 파업 때도, 수석부지부장 때도, 지부장을 맡고 있는 지금도 ‘꼭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이 문제를 빨리 끝내는 게 내 역할이라는 생각으로 하루 한달 일년을 살아왔다. 그러다 6년이 됐다. 6년까지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 임기 내에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해야 한다. 간절함과 확신을 가지고 부딪치고 있다. 6년을 싸우다 보면 때로는 ‘악’이 나온다. 논리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지만 과감한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합원들과도 얘기했다. 쌍용차 범대위와 마찬가지로 6월까지는 일단 노노사 대표 회동과 본교섭 과정에 집중하고, 이후 여러 가지 투쟁계획을 논의하기로 했다.

- 마지막으로 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흩어져서 투쟁하는 장기투쟁사업장의 문제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외롭게 싸우는 곳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언론은 이슈를 찾아 떠난다. 그에 비하면 쌍용차 투쟁은 행복한 편이다. 쌍용차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들게 싸우는 현장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주면 좋겠다. 모든 투쟁을 찬반으로 다루기보다 현장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해주길 바란다. 펜의 힘은 강하다.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가와 사회가 재취업과 재교육을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이런 것에 대해서도 언론이 좀 더 다루면 좋겠다.

쌍용차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해고자가 복직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된다고 해서 마무리할 싸움이 아니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긴 싸움 속에서 쌍용차는 노동의제의 중심이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있다. 우리는 하청 동지 8명과 함께 싸워왔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법의 문제를 고쳐야 한다. 우리가 받은 사랑과 관심만큼 끊임없이 나가야 한다. 이게 쌍용차 싸움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답이 아닌가 싶다. 언론이 이런 과정을 꾸준히 다루면 좋겠다. 우선 조만간 쌍용차 해고자들이 활짝 웃으면서 공장으로 들어가는 모습부터 보여드리겠다. 그때 꼭 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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