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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싸움 6년의 마지막 고비, “함께 삽시다, 같이 갑시다”[3.14 공동행동]이창근의 봄날을 함께 맞읍시다!
박장준 기자 | 승인 2015.03.14 21:28

“쌍용차가 평택에서 가장 좋은 직장이긴 하지. 다 가고 싶어 하는데, 사람 해고하는 회사에서 사람을 더 뽑겠어? 그때(2009년)는 (지역주민들이) 지지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은 굴뚝에 올라가도 별 얘기도 안 해.” 평택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강아무개씨는 한숨을 쉬었다. 2009년 이후 평택에서 가장 큰 변화는 여전히 쌍용차 정리해고다. 차가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에 멈출 때까지 그는 희망퇴직을 했다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 지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인이) 복직한 뒤에 회사 얘기를 거의 안 한다”고 했다.

14일 오후에 찾은 평택공장 앞에는 퇴근버스가 있었다. 5시 반이 되자 버스들은 사람을 태우고 사라졌다. 이 버스에는 “다른 것들은 전부 시시해져 버렸다. 티볼리를 본 순간부터”라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이효리도 춤추게 하는 티볼리’다. 번호판을 붙이지 않은 자동차들이 공장 안에 쌓여 있었고, 아직 퇴근을 못한 쌍용차 직원들도 공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공장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공장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한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해고자 이창근이었다.

   
▲ 14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모인 3.14 공동행동 참가자들은 공장 철조망에 자물쇠를 걸었다. 오른쪽 굴뚝에 이창근씨가 있다. 이날 공동행동에는 밀양, 스타케티칼, KTX여승무원,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동양시멘트, KEC, 유성기업 노동자들도 함께 했다. (사진=미디어스)

2009년 이곳은 전쟁터였다. 하늘에서는 최루액이 쏟아지고, 수십 미터 앞에서는 물대포가 사람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최루액이 섞여 있었다. 경찰과 용역깡패는 그렇게 사람을 흠씬 두들겨 팼다. 경찰이 내짖는 공포에 사람들은 쫓겨났고, 누구도 공장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생수를 넣는 것조차 며칠 동안 실랑이를 해야 했다. 77일의 옥쇄파업 동안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은 봉쇄됐다. 공장 안은 상상도 못할 작전이 진행됐다. 경찰은 이창근과 같은 노동자들을 ‘진압’했고, 쌍용차는 2464명을 그렇게 ‘정리’했다.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정리해고 이후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는 현실이 됐다. 26명의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숨졌다. “함께 살자”는 가장 절박한 말은 구호가 됐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서울 대한문 앞에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영정들’이 있었다. 그 동안 정부는 쌍용차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멀쩡한 돌담에 느닷없이 화단을 설치하겠다며 들이닥친 일도 있었다.

   
▲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 (사진=미디어스)

해고자들은 국회 문도 열심히 두드렸지만 국회는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철탑에도 올랐지만 쌍용차는 ‘법적 판단’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새 해고자 가족들의 정착을 위해 ‘와락’도 만들어졌고, 쌍용차의 회계조작 사실이 밝혀졌다.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쌍용차는 물러서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고법 판결을 뒤집고 “해고는 정당했다”고 했다. 막막해졌다. 그래서 이창근 김정욱은 지난해 12월 13일 새벽 공장 안에 있는 70미터 높이 굴뚝에 올랐다.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상황은 조금씩 바뀌었다. 굴뚝농성 소식에 이효리 김의성 같은 유명인들이 지지와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언론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1월 신차 ‘티볼리’ 출시에 맞춰 방한한 쌍용차 대주주는 결국 노사교섭을 약속했다. 옥쇄파업 이후 5년 5개월 만이었다. 쌍용차는 “한 발 더 양보한다” 약속했다. 교섭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신임사장 지명자까지 희생자 가족 지원과 해고자 복직을 위한 테이블에 함께 하기로 한 터라 해결 가능성은 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기자에게 “해결하기 위해 4자 회동을 하는 것이지, 그게 아니라면 만날 이유가 없다”고 했다.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 쌍용차 대주주 마힌드라그룹의 마힌드라 회장, 임기가 곧 끝날 이유일 쌍용차 사장에게 “저 굴뚝에 하루, 일초라도 올라가 보라”고 했다. (사진=미디어스)

이창근이 내려올 수 있을까. 마이크를 잡은 백기완 선생은 “봄기운이 완연한데 아직 저 하늘은 봄이 아니다. 이창근이가 아직도 못 내려오고 있다. 2009년 파업을 불법이라고 했고 ‘사업이 안 된다’는 회계조작까지 해서 노동자를 박살냈다. 26명은 이명박 정부와 쌍용차, 용역깡패가 죽인 거다. 그런데 매일매일 양심을 죽이고 노동자를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가 야마가타 트윅스터 말대로 마힌드라와 쌍용차가 “돈만 아는 저질”로 남을지 아닐지 판단할 수 있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경찰은 이곳을 자유롭게 활보한다. 그러나 이제 한 걸음 남은 것 같다. 사람들이 다시 쌍용차로 모이고 있고, 기자도 ‘줌인’하고 있다. 2009년 꽉 막힌 이곳은 이제 눈앞에 철조망이 하나 있을 뿐이다. 2009년 전선이 최루액이 쏟아지던 거리였다면, 지금은 굴뚝 바로 앞이고 공장 안이다. “저기 (이창근이) 손 흔드는 거 보이는데 스마트폰으로는 (그 모습이) 안 나온다” 하지만 2015년 쌍용차와 노동자는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거리까지 좁혀졌다. 지금이 쌍용차 6년 싸움의 마지막 고비다.

   
▲ 밀양의 어르신들도 자물쇠를 걸었다. (사진=미디어스)
   
▲ 공동행동에 참석한 시민들이 민중가요 지민주씨가 부른 노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에 맞춰 팔뚝질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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