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 합산규제로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는 3년의 시간을 벌었다. 규제기준인 3분의 1을 목전에 둔 KT는 계열사인 KT스카이라이프 가입자를 자사 가입자로 전환해야 하는 터라 앞으로 3년 동안 새로운 영업전략을 짜야할 상황이고, 케이블 사업자들은 업계 3위 씨앤앰을 나눠가져 덩치를 키우면서 디지털 전환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넷플릭스 같은 OTT(Over The Top)사업자도 새로운 경쟁자로 출현할 것이지만 한국 같은 ‘저가-결합 시장’에서 OTT의 성공을 낙관하는 사업자는 별로 없다. 합산규제 3년 동안 업계 최대 이슈는 ‘케이블의 KT 가입자 뺏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로 한 숨을 돌렸다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케이블 가입자는 정체 중이거나 조금씩 빠지고 있다. 상황을 극복할 방법은 뚜렷하지 않다. 대부분 사업자들이 ‘위기’라고 진단하지만 해법은 내놓고 있지는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다시 ‘3년의 미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방법이 있다. IPTV 출범 이후 몇 년 동안 검토만 하던 ‘이동통신 진출’이다. 한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고위관계자는 최근 <미디어스>와 만난 자리에서 “3년 안에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케이블은 그대로 몰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휘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또한 12일 ‘케이블 20주년’ 행사에서 “일부 MSO들이 제4이동통신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1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살림관 2층 세미나실에서는 케이블 20주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3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렸고, 이 자리에서 양휘부 회장은 최근 업계 이슈에 대해 의견과 입장을 밝혔다. 그는 ‘청와대 낙하산 논란’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아직 시간이 있다.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잇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단계하도급과 간접고용 문제’에 대해 그는 “MSO를 중심으로 한 문제인데 씨앤앰과 티브로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그런 추세로 봐 달라”고 말했다.

케이블이 이동통신 진출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유료방송시장을 ‘결합상품경쟁-전국시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다. 복수의 케이블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케이블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은 이렇다. “CJ헬로비전과 티브로드 같이 ‘실탄’이 넉넉한 MSO가 자본금을 3조 원 이상 모집하고,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한다. 이동통신상품과 각 지역의 케이블SO의 방송·인터넷상품을 결합해 판매한다. (기존에는 거주지를 옮기는 가입자를 눈 뜨고 보기만 했다면) 법과 제도를 바꾸고 각 지역 케이블SO 간 네트워크를 강화해 케이블 전체 파이를 유지한다.”

이동통신 진출은 조건이 같아 진단 점에서 케이블이 이동통신사와 경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환상은 금물이다. VOD(Video On Demand), UHD(Ultra HD) 콘텐츠 강화, 기가인터넷,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은 분명 사업자가 따라가야 하는 트렌드와 기술이지만, 가입자를 유도할 수 있는 유인은 아니다.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란 얘기다. 12일 케이블협회가 발표한 4K, 홈 케어 서비스 같은 것들 역시 이동통신사가 며칠이면 베낄 수 있는 기술이다. 소비자가 유료방송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보조금’과 ‘요금’ 그리고 ‘콘텐츠’ 뿐이다.

양휘부 회장은 “방송콘텐츠가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방송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시급하게 확립해야 한다”며 “이동통신사의 결합상품으로 지나치게 저가로 고착된 시장을 어떻게 개선할지 정부와 유료방송업계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밝혔으나, 케이블이 제시하고 있는 이동통신 진출로는 방송의 ‘제값’을 받을 수 없다. 정부가 결합상품 할인율을 규제한다면 평균요금을 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방송이 통신의 부가상품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외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유료방송 요금은 ‘헐값’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동통신 결합상품 경쟁은 결과적으로 더 심화된 ‘저가 경쟁’을 부추길 게 빤하다. 복기해보면, 2008년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제공사업자(IPTV사업자)가 등장한 이후 방송은 통신의 부가상품이 됐다. 이동통신사를 끼고 있는 재벌 대기업은 불과 5~6년 만에 케이블이 20년 동안 일군 파이를 만들어냈다. 이동통신에 인터넷과 방송을 끼워 팔며 이룬 성과(?)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방송을 공짜로 보는 셈이지만,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도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다. 통신 요금 많이 받고, 방송 요금 적게 받는 구조다.

케이블이 앞으로 3년 동안 정관계 로비를 통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한다 하더라도 이는 장기적인 생존 전략이 될 수 없다. 이통시장의 5:3:2 구도를 균열 내는 것은 더 어려운 과제다. 고가 가입자 5500만명을 데리고 있는 이동통신사와 저가 가입자 1400만명의 케이블은 덩치에서도 실력에서도 게임이 안 된다. 그래서 이동통신 진출은 케이블에게 중원 진출이 아니라 낭떠러지행이 될 수 있다. 방송통신 결합상품을 파는 제4이동통신으로 방송콘텐츠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허풍’이다.

결국, 해법은 지역, 콘텐츠, 요금에서 찾아야 한다. 케이블이 지갑을 열 만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제작하지 못한다면 결국 지상파-종합편성채널과 금액 협상만 하고, 청와대 낙하산을 받아들이는 만년 ‘을’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역채널을 강화하고 ‘우리동네’ 방송과 인터넷을 평생 책임지는 방식의 공적 역할도 확대하는 것으로 사업의 의의를 다져야 한다. 지역기반의 케이블이 전국사업자 IPTV과 경쟁할 수 있는 무기는 결국 ‘지역’이다.

LG유플러스가 HBO 콘텐츠를 독점 제공하고,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 드라마를 만드는 것처럼 경쟁력 있는 방송콘텐츠를 확보해 2030 가입자와 제로TV 가입자를 유인하는 것도 필수다. 십 년 동안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성장했다고 하지만 tvN 같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를 새로 런칭하는 것도 필요하다. 양휘부 회장이 제안한 대로 케이블이 공동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송출하는 ‘원(one) 케이블’ 전략도 유효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요금인하도 가능하다. 킬러 콘텐츠를 만들면서 기본요금을 인하하는 것도 장기적인 전략일 수 있다. 시청패턴이 다시보기(VOD)로 옮겨가는 흐름에 맞춰 VOD 매출을 고려해 디지털케이블의 기본요금을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VOD는 조 단위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케이블이 3년 이상을 내다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기획이다. 결합상품에 묶여 있는 이동통신사가 따라하기 어려운 전략을 펼쳐야 케이블이 생존할 수 있다.

20년을 맞은 케이블의 전략은 지금까지 해오던 ‘MSO 중심의 덩치 키우기’와 다르지 않다. 공룡과 맞서기 위해 공룡이 돼야 한다는 주장은 이용자를 ‘호갱님’으로 만들었다. 결합상품 3년 약정에 묶인 이용자들은 가입 때 받은 상품권을 토해내야 하는 채무자가 됐다. 일부 MSO가 더 큰 공룡이 된다면 방송시장의 선순환은 더 멀어진다. 케이블이 할 일은 IPTV보다 빠르게 방송 트렌드를 읽고, 이동통신사가 못하는 전략을 짜는 것이다. 한가하게 청와대 낙하산을 기다릴 때가 아니다. 호갱님은 언제나 코드 커팅(Cord Cutting)할 준비가 돼 있다. 케이블은 당장 내일을 어떻게 살지, 그리고 10년을 어떻게 살지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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