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방송사들이 OTT(Over The Top)서비스인 ‘푹(POOQ)’의 상품 가격을 인상하기로 지난달 말 결정했다. 지상파는 오는 6월1일자로 제공 콘텐츠 수를 늘리고 화질을 높이는 ‘푹 2.0’을 출시하면서 실시간방송 상품과 VOD 전용 상품 등을 천원 정도 올릴 계획이다. 지상파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방송광고 시장에서도 지상파 몫이 줄고 있는 ‘수익 위기’를 모바일에서 메우려는 시도다.

문제는 모바일IPTV로 지상파 실시간방송을 보는 이동통신가입자들이 빠르면 오는 12월부터 지상파를 시청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사연은 이렇다. 2013년 말 푹을 운영하는 콘텐츠연합플랫폼(대표이사 장만호, 이하 CAP)과 이동통신사는 총 금액 250억원 규모의 콘텐츠사용계약을 맺었다. 당시 모바일 전용 상품이 없던 CAP는 이동통신사의 모바일IPTV 플랫폼에 ‘PIP(플랫폼 인 플랫폼)’ 형태로 입점해 가입자를 확보했고, 이동통신사 또한 지상파 콘텐츠를 ‘킬러 콘텐츠’로 월 정액상품 가입자를 늘려 왔다. 지상파와 이통사는 75대 25의 비율로 수익을 나눈다.

서로가 이득이 상황이 어그러진 것은 지상파의 가격인상 통보 때문이다. 2013년 계약금액을 가입자 수로 나누면 1900원(부가세 제외) 꼴인데, 최근 CAP는 가격을 3900원(부가세 포함)으로 인상한다고 통보했다. 이후 CAP와 이동통신사는 결합상품 가격을 두고 협상을 진행했으나, 최종 결렬됐다. 비유하자면 백화점 1층 가장 목 좋은 곳에 입점한 명품업체가 상품가격을 100% 가까이 올렸고, 백화점은 전체 매출이 떨어질까 입점업체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현재 지상파 실시간방송이 포함된 모바일IPTV 월정액 상품은 3천원~5천원선이지만 이동통신사는 지난 2~3년간 LTE 가입을 유도하며 고가의 데이터 요금제 가입자에게 공짜 또는 헐값에 제공해 왔다. 이동통신사 몫 25%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보는 게 맞다. 이런 가운데 이동통신사는 당장 오는 6월부터 가격을 올리면 가입자가 ‘이탈’하고, 올리지 않으면 지상파의 푹 가격인상분만큼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된 것. 더구나 최근 이동통신사는 월 4만원대 이상 데이터 중심 요금제 가입자에게 모바일IPTV를 ‘덤’으로 주기로 약속까지 했다. 이통사 처지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이동통신사는 지상파를 핑계로 가격을 올릴 수는 없는 처지다. 한 IPTV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모바일IPTV에서 지상파 시청점유율은 49% 내외다. 우리 입장에서는 절대적이고 킬러콘텐츠는 맞다”면서도 “애초 푹 자체 가입자는 많지 않은데 자체 서비스 가격을 인상했다는 이유로 모바일IPTV 서비스 가격까지 올리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 결국 이용자에게 돈을 더 받으라는 이야기 아니냐”고 말했다.

이밖에도 데이터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허용한 요금제를 내놓은 상황에서 VOD 헤비유저들이 가격인상이 결정되지 않은 CJ헬로비전 ‘티빙’ 같은 OTT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도 이동통신사에게 불리하다. OTT 등 N스크린 이용자들은 자동 소액결제 같은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사업자는 가입자를 한 번 잃어버리면 되찾기가 어렵다. 한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모바일IPTV나 OTT는 상품과 가격이 비슷하기 때문에 가입자 뺏기는 휴대전화 번호이동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지상파는 가격 인상은 지상파 자체 결정으로 유료방송사업자와의 협상 대상이 아닐뿐더러,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가입자 이탈이 적어 매출을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푹 운영사인 CAP 이희주 전략기획실장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지난해부터 푹 2.0을 준비했고 콘텐츠를 늘리고 화질을 개선하고, 시스템도 넷플릭스도 구축했다”며 “여기에 지상파의 콘텐츠 제값받기 분위기가 있었다. 푹 가격인상은 이통사와 협상 대상이 아니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도 수익의 25%를 받기 때문에 가격인상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푹 가격인상 갈등은 위기의 지상파와 콘텐츠에도 진입 중인 유료방송사업자의 마지막 ‘기싸움’ 성격이 강하다. 지상파는 단건 VOD 가격을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인상하는 데 성공했고 재전송료를 현행 280원에서 400원으로 인상하는 협상을 주도하고 있으나, 시청률과 시청점유율 그리고 영향력은 줄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네트워크-플랫폼에 이어 콘텐츠 영역에 진입해 수직계열화를 추진 중인 상황을 고려하면 지상파의 ‘갑’ 지위는 향후 몇 년 안에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SBS 스마트미디어사업팀 김도식 부장은 ‘지상파가 무료보편 서비스인 DMB 등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유료 시청자에게 요금인상을 통보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 ‘지상파의 수익 위기로 무료보편 서비스가 불안정한 상황’을 강조했다. 그는 “(지상파에) 곳간이 있을 때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무료보편 플랫폼으로서 지상파의 수익이 떨어지고 있고, 수익원들도 불안정해졌다”며 “이번 가격 인상은 두 가지로 애초 계약 때 맺은 가격을 정상화한다는 의미와 수익 위기로 인한 가격인상”이라고 말했다.

향후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CAP와 이동통신사의 협상이 어그러지고 이동통신사가 모바일IPTV에서 ‘푹’을 내보낸다면 모바일IPTV를 통해 푹에 가입한 이용자들은 기존 계약에 따라 6개월(11월 말까지)만 시청이 가능하다. 협상이 타결되면 1년 이후인 2016년 6월부터 가격 인상이 된다. 이 경우, 이동통신사는 모바일IPTV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는 별개로 푹 신규가입자는 오는 6월부터 인상된 요금을 납부해야 한다.

지상파는 “이동통신사가 방송을 저가에 끼워 팔면서 방송이 ‘별책부록’으로 되는 구조를 만드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동통신사들도 “무료보편 서비스를 하는 지상파가 ‘갑질’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결국 두 진영의 싸움은 가입자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푹 같은 OTT나 모바일IPTV에 대한 규제는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고, 방송법이나 IPTV서비스 상 ‘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규제기관의 개입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푹 이용자들, 모바일IPTV 가입자들의 반응이 관건이긴 하지만 콘텐츠 1위 지상파와 네트워크를 독점한 이동통신사의 이해관계가 장기적으로 일치한 만큼 가입자 이탈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지상파가 필요한 이동통신사는 지금처럼 지상파를 PIP로 입점시키고, 시간을 두고 모바일IPTV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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