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KBS의 대통령과의 특별대담은 예상대로였다. 대통령은 대부분의 정책 현안에 대해 구체성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고, KBS 측은 추가 질문을 되도록 자제했다. 고맙게도(?) 시청자가 지루해할 것을 배려한 것인지 대통령실 내부를 보여주거나 해외 정상과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대목이 들어갔다. 편집이 여러 날 걸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많은 관심을 모았던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선 유권자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답변이 나왔다. 대통령은 당시 관저가 아닌 사저에 거주하던 상황이라 검색대 등을 설치하지 못한 상황에서 만남을 요구하는 사람을 박절하게 대하기 어려워 벌어진 일이라며 매정하게 끊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했다.

7일 방송된 'KBS 특별대담-대통령실을 가다' 캡처
7일 방송된 'KBS 특별대담-대통령실을 가다' 캡처

특별감찰관은 국회가 요구하면 임명할 수밖에 없고 제2부속실 설치는 검토 중이라고 했는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조치들이 사전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거고 따라서 앞으로 ‘매정한 사람’이 되면 된다는 건데, 결국 대통령은 이 문제를 개인적 차원의 가벼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드러난 거다. 이런 논리라면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청탁과 뇌물 역시 대다수는 마음먹기에 따른 문제에 불과할 것이다. 구조적 보완책이나 대책 따위는 사실 필요 없는 거다.

이런 답변이 나왔을 때 질문하는 사람은 어떤 태도를 취했어야 할까? ‘조그만 파우치’라고 표현한 명품백을 받은 것 자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방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법에 따른 처분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돌려주려는 노력을 했는지 등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KBS 측은 이 대목을 그냥 넘어갔다. 김건희 여사와 이 문제로 부부싸움을 했는지 등을 물은 것은 특히 의문이다. 무슨 답변을 기대한 것일까?

KBS가 이 ‘특별대담’을 기획 혹은 수용한 속내를 추측할 수 있는 장면이 두 가지 정도 있었다고 본다. 첫 번째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실의 대통령 좌석에 앉을 것을 권유하는 장면이다. 대통령은 “박 앵커, 여기 앉아보실래요?”라고 했고, KBS 측은 자리에 앉아보니 대통령의 책임감 등이 느껴진다며 “개인적으로 영광입니다”라고 했다. “언론은 권력과 의식적으로라도 거리를 두어야 하기에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7일 방송된 'KBS 특별대담-대통령실을 가다' 캡처  
7일 방송된 'KBS 특별대담-대통령실을 가다' 캡처  

두 번째는 늘봄학교 전면도입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대목이다. 초등교사들의 반발에 대한 대책을 묻자 대통령은 당위론 이상의 구체적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KBS는 돌연 대통령이 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진을 감성적 음악과 함께 배치했다. 대담과 다큐의, 공영방송과 국정홍보처의 경계를 허무는 편집이다.

이러니 온갖 상상을 안 할 수 없다. 가령 동아일보 이진영 논설위원은 8일 이렇게 썼다. “공교롭게도 녹화대담 결정이 공개된 1일 KBS가 이달부터 시행한다던 수신료 분리 징수를 갑자기 유예한다고 밝혔다. 수신료 분리 징수로 7020억 원이던 수신료 수입이 4407억 원으로 줄어들 것이라며 인건비 1100억 원을 삭감한 긴축 예산안을 의결한 지 하루 만이다.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 중이라는데 불발된 분리징수를 언제 할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수신료 수입이 줄어 죽는 줄 알았던 KBS로서는 살길이 열릴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됐을 것이다. 녹화대담 결정과 수신료 분리 징수 유예, 이게 우연인가.”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이런 시각에서도 드러나듯, 보수신문을 포함한 대다수 언론은 대통령의 KBS와의 이번 대담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8일 1면에 대통령 사진도 싣지 않았고 사설에서는 “대담 방송사인 KBS는 사장 인사권자가 대통령이다. 대담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이뤄졌다고 하기 힘들다”며 “‘사전에 각본을 짜고 사후 편집이 가능한 녹화 대담은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것’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보수신문도 마찬가지 맥락의 평가다. 한겨레, 경향 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전날 관훈토론회에서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본질은 ‘몰카 공작’이라면서도 국민이 걱정할 일이라고 했던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묻고 싶다. 국민의 우려는 이제 해소됐는가? 여전히 우려가 남았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보다 대통령의 대담 내용을 보고 앞으로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제기의 수위를 고려하겠다던 김경율 비대위원의 입장도 궁금하다. 김경율 비대위원은 8일 오전 회의 끝나고 기자들을 향해 방송을 “못 봤다”며 “아쉽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더 기대할 게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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