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치의 기본은 통치 시스템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이다. 이게 전제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적 조건이 있기에 이러한 일이 100% 실시간 생중계처럼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소 융통성을 발휘하더라도 통치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이 점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가령 최근 논란이 된 대통령의 독일-덴마크 순방 취소는 어떤가? 물론 대통령 해외 순방을 순연하거나 취소하는 일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이 지적하듯 과거 사례는 대개 외환위기, 천안함 폭침, 메르스 사태 등의 명확한 이유가 있었고 대통령 또는 참모가 그것을 설명했다.

지난 2023년 11월 26일 영국·프랑스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김건희 여사와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 2023년 11월 26일 영국·프랑스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김건희 여사와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그런데 이번에는 언론도 이유가 뭔지 모른다. 모르니 추측만 분분하다. 대통령실은 여러 정무적 판단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대개는 의료계 파업에 대한 염려, 북한의 도발 우려 등을 거론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거의 모든 언론이 김건희 여사 관련 대목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는 거다.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나 사과가 결국 불발로 돌아간 상황에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과 함께 전용기에 오르는 장면이 총선 전에 공개되는 건 정치적 부담이라고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이런 추측을 사실로 전제한다면, 또다른 의문이 뒤이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의 언론 노출 부담 때문에 연기 혹은 취소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애초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정이었던 게 아닌가? 이런 의문은 다시 대통령의 ‘잦은 해외 순방’ 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독일-덴마크 순방이 취소된 데에 명확한 이유가 있다면 대통령실이 설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설명을 안 하니, ‘설명을 할 수 없는 이유’인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이렇게 불리할 만한 일은 감추면서 내세울 만한 일은 과대포장 한다면 더 큰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쿠바와 수교한 일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 그런 우려가 든다. 가령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조선일보 지면에 16일 실린 인터뷰에서 쿠바와의 협상 과정에 대한 뒷얘기를 풀어놨는데, 별로 알맹이는 없는 내용이다. K팝이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음악을 배경으로 틀었다는 얘기가 눈에 띄는 정도다.

대통령실은 “이번 수교는 과거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북한의 우호 국가였던 대(對)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세가 어떤 것인지, 또 그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쿠바와의 수교는 물론 역대 우리 정부 노력의 결실이지만 무엇보다도 대외환경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쿠바 입장에서는 경제적 측면에서 미래 동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미국의 트럼프 정권 재탄생의 영향을 고려해 외교관계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한국에 대해선 북한과의 관계가 걸림돌이었는데, 올해 들어 북한이 사실상의 ‘2국가 체제’를 천명하면서 남북과 별개의 외교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덜해진 거다. 16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지난 5일 쿠바 측에서 수교를 원한다는 연락을 해온 것에 대해 “갑작스러운 전화에 우리 당국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고 돼있다. 우리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쿠바가 주체적으로 움직였다는 뜻인데, 앞서의 맥락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어찌됐건 쿠바와의 수교는 성과이기에 이것 자체를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외교 안보 사안에 대해 과대포장 하지 말고 투명한 자세로 임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국민적 의구심이 남지 않는 입장에서 대응할 수 있다.

영국 국빈방문 당시 윤석열 대통령 (런던=연합뉴스)
영국 국빈방문 당시 윤석열 대통령 (런던=연합뉴스)

가령 중앙일보는 16일 지면에 <대통령의 동선이 북한에 해킹당하다니…>란 제목의 사설을 썼는데, 대통령실 행정관의 이메일이 북한에 해킹당했고 이 사실을 지난해 11월 영국 프랑스 순방 직전 국정원이 확인했다는 사건에 대한 얘기다. 이 사건은 대통령실 행정관이 네이버 등 개인 메일을 업무에 활용하면서 해킹을 당한 황당한 사례다. 앞서 쿠바와의 수교 논의에서 양국은 논의가 유출돼 북한에 의한 방해공작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어 보안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는데, 이런 황당한 수준의 보안의식으로 비밀 논의를 진행했다고 하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는 거다.

이런 일은 정부가 그저 잘해서 될 일이 아니라 언론에 의해 공개되고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바로잡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언론을 적대하고 불리하면 감추며 오로지 자신들에 유리한 보도를 하는 신문 또는 방송사만 챙기는 일이 일상이다.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통치의 실패를 초래할 것이다. 독일-덴마크 순방을 왜 연기했는지부터 투명하게 밝히고 그 판단이 적절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국민에게 구해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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