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고독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다. ‘고독’은 가을 낙엽처럼 쓸쓸함을 전제로 한다. 곧 춥고 힘든 겨울이 온다는 암시다. 겨울을 잘 버티면 꽃피는 봄을 맞이하겠지만 꽃피는 봄을 보기 전에 고독사할 수 있다. 고독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고독해 보지 않은 사람들의 배부른 소리이다.‘고독’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한 것을 즐기라는 말은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초등학교에선 학기 초에 반장 선거를 한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라고 하여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반장 선거에 나서는 아이들은 모두 결의를 다지고 나온다. 저마다 학급과 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약을 만들어 선거 활동을 한다. 반장 선거에서 공약이 중요하다는 것은 후보뿐 아니라 유권자인 반 아이들도 알고 있다.공약은 공식적인 약속이라는 뜻을 알고 있기에 후보는 나부터 지킬 수 있는 공약, 내가 지킬 수 있는 공약을 고심하며 만든다. ‘라떼’와는 아주 다르다. 그 옛날 ‘라떼’의 반장 선거는 인기 있는 친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봄날 햇살은 따사로웠다. 햇살 따사로운 날 지상에서의 소풍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무겁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비보를 전해 들은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나는 강연장에 있었다. 독립운동에 관한 강연을 듣기로 한 날이었다. 강사가 한반도 독립운동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연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언니에게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고모부가 돌아가셨대.’나는 휴대 전화기를 꼭 쥐고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문자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언니와 통화를 했다. 조금 전에 장례식장으로 옮겨졌고, 입관은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바라는 것을 갖게 되면, 해보고 싶은 것을 하게 되면,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루게 되면 내가 싫지 않을까. 꿈꿔온 게 있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주 오래된 바람이었다.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반에 글을 쓰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단순히 일기 정도, 글짓기 정도를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였다. 친구는 항상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아이들은 친구가 만든 이야기책을 보겠다고 줄을 섰다. 친구는 대여 순서를 정해주고 언제까지 책을 반납할 건지 꼼꼼하게 수첩에 적었다. 책을 다 읽은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소설 수업을 하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보고 싶어하는 수강생이 많다. 글을 쓴다, 는 행위로 과거에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받고 싶어 한다.소설이지만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쓰는 동안 글에 투영된 분노는 수업 시간에도 인물과 거리를 두지 못하고 그대로 나타날 때도 있다. 재산을 담보로 효도를 강요하고 화가 나면 골프채로 물건을 때려 부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그때 경험했던 공포와 두려움이 고스란히 떠올라 불안정하게 목소리가 떨리던 남자는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까지 분노를 덜어내지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나는 떡만둣국을 좋아한다. 고소한 국물에 졸깃한 떡도 좋지만 여러 가지 재료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큼직한 만두를 더 좋아했다. 어릴 때 떡만둣국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설날.떡만둣국은 가래떡과 만두만 들어가는 단출한 음식이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기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떡만둣국을 먹기 위해서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예쁘게 썰어놓은 떡을 떡집에서, 마트에서 사면 되지만 그때는 방앗간에 쌀을 가져가 가래떡을 뽑는 일부터 시작했다.물에 불린 쌀을 이고 지고 방앗간에 가면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좋은 날 되세요. 나는 문자를 보낼 때나 메일을 보낼 때 주로 마지막 문구로 ‘좋은 날 되세요’를 선택해서 보낸다. 상투적이지 않을까 고민하지만, 진심으로 오늘 하루만은 좋은 날이 되길 바라기 때문에 결국 좋은 날이 되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좋은 날 되세요’, 라는 문구는 ‘행복한 날 되세요’만큼이나 사무적인 인사로 많이 쓰이는 인사말이다. 사무 문자와 메일을 수도 없이 주고받는 사람 입장에선 ‘좋은 날 되세요’라는 말처럼 사무적인 인사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좋은 날 되세요’라는 문구가 참 좋다.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영화배우 이선균의 사망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오보이거나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다. 그는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고 있다고 들었고, 곧 이 모든 상황이 정리되리라 생각했다. 별 무리 없이 무혐의로 사건은 종료되리라 생각했다. 그의 사망 보도가 진짜라는 말을 듣고도 사실 믿지 못했다.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이런 장난 재미없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설마, 또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허망하고 안타까웠다.배우 이선균의 마약 투약 수사 내용이 보도되었을 때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뉴스에서, 유튜브에서 연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199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 종말론에 관한 예언과 소문이 난무했다. ‘종말이 도래했으니 회개하라’ ‘1999년 12월 31일이 바로 종말의 날이다. 준비하라’라는 말이 세상을 잡고 흔들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바탕으로 세상의 종말을 외치는 사람이 나타났다.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은 종말을 외치는 사람을 따르며 세상을 술렁였다.그땐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종말론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결합해 사회 전반에 암세포처럼 퍼졌다. 일을 그만두고 재산을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내가 어렸을 때는”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꼰대라고 한다지만 정말 내가 어렸을 때는 대문 밖만 나가도 골목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집마다 형제, 자매는 기본이고 다섯 남매까지 있는 집도 있었다.학교에 가면 50명을 꽉꽉 채우고도 넘쳐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받았다. 한 학년 15반으로 이루어진 학교는 쉬는 시간이 되면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시끌벅적, 우당탕, 와다다다, 바글바글이라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복도엔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아이들로 정신없었다.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뛰지 않으면 이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다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날씨 때문에 내 몸은 적응할 시간이 없다.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약을 달고 산다. 목감기에서 기침과 콧물감기로 옮겨 다니는데 밤이 되면 으슬으슬 춥고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든다. 전기 매트를 틀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 날씨도, 몸도 이렇다 보니 집 밖에 나가는 건 큰맘 먹어야 한다. 아침, 점심, 저녁 한 움큼 되는 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한숨을 내쉰다. 의사는 약이 정말 먹기 싫어요,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말했다. 꼭 끝까지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가을야구가 시작되었다. 2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한 엘지트윈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두고 케이티위즈와 격돌하게 되었다. 엘지트윈스 팬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9년 전 엘지트윈스와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던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는 건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규시즌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던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그때 함께 야구장을 같이 다니던 친구는 결혼해 남편과 잠실 야구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전히 ‘다시 한번 그날의 영광’을 꿈꾸며 야구장에서 엘지트윈스를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이야기는 조선시대 중엽에서 시작된다. 전라도 전주 근방에 살고 있던 최만춘은 퇴직한 관리로 자녀가 없었다. 자식을 갖기를 소원한 최만춘은 명산대찰에서 불공을 드려 콩쥐를 얻었다. 콩쥐를 얻어 기뻤지만 부인 조 씨가 콩쥐가 태어난 지 백일 만에 병에 걸려 그만 죽고 말았다. 최만춘은 콩쥐를 젖동냥으로 키웠고, 둘은 행복했다. 콩쥐가 열네 살이 되던 해 최만춘은 배 씨라는 과부와 재혼하게 되는데 배 씨에게는 콩쥐보다 한 살 아래인 팥쥐라는 딸이 있었다. 배 씨와 팥쥐의 등장으로 콩쥐의 행복한 생활은 끝나고 말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에서 캐리 브래드쇼가 이른 아침 카페에 앉아 마감 기사를 쓰는 것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카페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지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며 마감 기사를 쓰는 캐리의 모습은 놀랍기도 하고 멋있어 보였다. 카페에서 마감 기사를 쓰는 캐리 주위엔 혼자 앉아 독서를 하는 사람, 신문 보는 사람이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였다. 캐리의 모습은 우리 현재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이라는 동화가 있다. 대부분이 어릴 적 한 번쯤 읽었을 동화이다. 읽지 않아도 엄마에게, 선생님에게, 친구에게 들어 알고 있는 안데르센의 동화이다.잠깐 동화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새 옷을 좋아하는 사치스러운 임금님이 사기꾼에게 속아 벌거벗은 채 거리를 행차하는 이야기이다. 임금님이 옷을 입지 않고 거리를 행차하지만, 누구도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신하와 백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을 보이는 것처럼 칭찬하며 감탄한다. 임금님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한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남편이 아내를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는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며 헉하고 말았다. 댓글을 읽어 내려가다 시선이 멈췄다. 댓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이제 결혼도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하네. 언제 남으로 돌아설지 모르잖아. 한 침대에 누워 있어도 등 돌리면 남인데 마음이 변하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하며 살아야 하네.”놀라웠다. 마음이 변하면 최후의 수단으로 헤어지는 게 아니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놀랍기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저녁에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여학생 둘이 길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낮에 카페에서 보았던 여학생들이었다. 시험 기간이었는지 카페에 앉아 역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험 준비를 마친 듯 여학생들은 길에 서서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학생 중 A가 한창 공부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대화의 모양새가 좀 이상했다.여학생 B가 대화에 낄 사이 없이 일방적으로 A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B는 ‘맞아, 그래’라는 말을 중간중간 추임새처럼 넣으며 말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여러 명이 대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카페 넓은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평화롭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늘진 나무 아래의 빛은 적당히 따사롭고, 적당히 안락하다. 쾌적한 공기 상태와 온도가 유지되는 카페에 앉아 있으면 세상은 살만해 보인다. 낮 기온이 35도를 훌쩍 넘어버렸다는 뉴스는 모두 가짜 같다. 이 정도 날씨에, 이 정도 온도라면 몇백 년, 몇천 년도 지금 이대로 살아도 될 것 같다.카페 문을 열고 밖으로 발을 내디디는 순간 생각은 화르르 타버린다. 밖은 사정없이 내리쬐는 뙤약볕에 숨도 쉴 수 없을 지경이다. 숨이 턱 막힌다는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불리는 학교가 내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였다. 까마득하게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학교에 첫발을 내디디던 순간을 기억한다. 3월이었지만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단단히 입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대로 눈밭에 굴러도 춥지 않을 정도로 입었지만 까슬한 볼은 빨갛게 얼었다.초등학교 입학식은 나에게도 중요한 날이었지만 엄마, 아빠에겐 뜻깊은 날이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아이가 나만이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언니, 오빠까지 온 가족이 함께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엄마 뭐 해?”“음, 텔레비 봐.”“아침마당?”“아침마당 끝나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보지. 오늘은 걷는 것에 대해 나왔어. 걸어야 건강하게 병 없이 산대. 넌 그렇게 걷지 않아서 어떻게 하냐?”어머니와 아침 통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팔십이 넘은 노인인 어머니의 유일한 낙은 졸며 깨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수십 전부터 어머니의 벗이다. KBS, MBC 그리고 SBS 방송국이 개국하고, 종합편성 채널, 케이블 TV 등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수십 개의 채널이 생겼지만 어머닌 오직 KBS 방송만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