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소설 수업을 하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보고 싶어하는 수강생이 많다. 글을 쓴다, 는 행위로 과거에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받고 싶어 한다.

소설이지만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쓰는 동안 글에 투영된 분노는 수업 시간에도 인물과 거리를 두지 못하고 그대로 나타날 때도 있다. 재산을 담보로 효도를 강요하고 화가 나면 골프채로 물건을 때려 부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그때 경험했던 공포와 두려움이 고스란히 떠올라 불안정하게 목소리가 떨리던 남자는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까지 분노를 덜어내지 못했다.

남자는 소설을 통해 치유 받지 못했다. 남자는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분노로 새삼 몸서리쳤다. “화를 내고 분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었어요. 너무 무서워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어요.”

남자는 부유한 집에 태어났지만,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지는 못했다. 어릴 때는 어른 앞에 서면 위축되어 말을 잘하지 못했고, 말을 더듬는 경우가 많았다. 치료를 받아 많이 좋아졌지만 지금도 살짝 말을 더듬는다고 했다. 남자가 말을 하다 말고 멈춰 숨을 깊게 들여 마시던 이유를 그때 알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남자가 말을 더듬는 것을 걱정했지만 할아버지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남자를 향해 쏟아부었다고 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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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자라면서 점점 더 위축되었고 초등학교,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어려웠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남자의 약점을 알아채고 괴롭히고 왕따를 시켰다고 했다. 남자는 잔뜩 화가 난 사람처럼 말했다.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은 할아버지예요.”

“그럼 할아버지 이야기를 소설로 쓸 건가요?” 묻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학교 다닐 때 이야기를 쓸 거예요. 학교에서 벌어진 이야기.” 남자는 모든 것의 시발점은 할아버지라고 했지만 쓰려고 하는 이야기는 중학교 때 이야기였다. 그 뒤에는 남자를 외면한 가족의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치유의 글쓰기 수업을 통해 내가 누구이며, 왜 존재하는지,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가 될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한다. 글쓰기 수업을 하다 보면 어른이 되었지만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글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이지만 나의 이야기이며 건들기만 해도 아픈 이야기를 꺼내는 작업은 쉽지 않다. 도중에 글쓰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를 돌아보고, 들여다보는 작업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소설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통과의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꼭 한번은 써야 한다고 은사님은 말했다. 나도 썼다. 몇 번을 망설이고, 쓰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괴로워하며 썼던 기억이 남아 있다. 소설을 탈고하니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남자도 자신을 갉아먹는 과거와 이별하고 좀 더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남자는 소설을 끝까지 쓰지 못했다.

소설 수업을 하면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소설을 쓰고 싶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말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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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고 싶은 한 줄이 있는 사람들. 그래서 수업 진행은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미워하는 사람, 행복했던 기억과 사랑했던 순간, 변한 나의 모습 등을 되짚어 보고 고쳐 보도록 한다. 나의 감정을 관찰하고 감정과 관련된 키워드와 연결하여 글쓰기를 한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글쓰기로 십 대의 나와 마주하기, 두려웠던 순간과 마주하기, 용서받고 싶은 순간으로 되돌아가기 등의 개별 주제로 진행한다. 글쓰기는 일기, 편지 등의 자유로운 형식으로 진행되며 낭독의 시간을 갖는다. 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보완할 점을 이야기하며 의견을 나눈다.

글을 쓰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잊고 싶은 과거와 결별하고 긍정적인 삶으로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한다.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다 고치고 싶은 한 줄을 꺼내어 지우고 다시 쓴다.

내 인생에서 고치고 싶은 한 줄이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응원한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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