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있다. 대부분이 어릴 적 한 번쯤 읽었을 동화이다. 읽지 않아도 엄마에게, 선생님에게, 친구에게 들어 알고 있는 안데르센의 동화이다.

잠깐 동화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새 옷을 좋아하는 사치스러운 임금님이 사기꾼에게 속아 벌거벗은 채 거리를 행차하는 이야기이다. 임금님이 옷을 입지 않고 거리를 행차하지만, 누구도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신하와 백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을 보이는 것처럼 칭찬하며 감탄한다. 임금님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한 아이가 깔깔거리며 말한다. “임금님이 아무것도 입지 않았네요.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임금님 귀에도 아이의 말이 들렸지만, 체면을 생각해 행차를 계속한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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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재밌었다. 이상하고, 웃기고, 통쾌했다. 나이를 먹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면서 <벌거벗은 임금님>을 읽으면서 웃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린 조카에게 읽어주면서도 웃지 못했다. 조카는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임금님이 백성이 줄지어 서 있는 길을 걸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임금님이 옷을 하나도 입지 않았어. 벌거벗은 임금님이네’하고 동화 속 아이처럼 깔깔거리며 웃었다. ‘창피하겠다. 얼른 가서 옷 입어야겠다. 그치?’라고 말하는 조카를 보며 고개만 끄떡였다.

동화의 뒷이야기를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조카의 말대로 얼른 옷을 입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교훈적인 해피엔딩은 더욱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임금님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린다. 자신을 거리의 광대로 만든 재단사를 잡아들이고, ‘아름답다, 훌륭하다, 최고다’라고 칭송하던 신하를 거짓을 말하고 임금을 현혹한 죄로 벌한다. 깔깔거리고 웃었던 아이와 아이의 가족은 쥐도 새도 모르게 도시에서 사라진다. 백성은 임금님이 행차할 때는 땅에 엎드려 고개를 들어서는 안 되고, 다시는 임금님 모습을 보아선 안 된다.

벌거벗은 채 행차하는 건, 임금님에겐 일종의 권력적 유희였다. 사실 임금님은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백성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재단사가 있지도 않은 옷을 들고 옷에 대해 말할 때 임금님은 속아주었다. ‘보이지 않는 옷’은 권력의 시험 무대였다. “정말 아름답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군.” 임금님의 이 한마디는 권력의 마침표와 같았다.

‘어디 한번 말해 봐’라는 눈빛으로 임금님이 신하를 휘둘러 보았다. 앞다투어 ‘정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라고 입 안의 혀처럼 말하는 신하를 보며 임금님은 만족스러웠다. 이젠 머리를 조아리는 백성 차례였다. 벌거벗고 행차해도 누구 한 명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꼈다. 별안간 아이가 튀어나왔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네. 깔깔깔.”

임금님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임금님이 화가 난 것은 벌거벗었다는 사실이 들통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벌거벗었다는 건 임금님도, 신하도, 백성도 알고 있었다. 임금님이 화가 난 것은 감히 '발화'했다는 사실이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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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에서 감히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직 단 한 사람. 세상에 무서울 것이라고는 엄마밖에 없는 아이만이 깔깔거리며 말할 수 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네. 깔깔깔.”

‘모른 척한다, 못 본 척한다, 말하지 않는다’라는 암묵적 약속은 아이의 한마디로 깨어져 버렸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이 보이는 진실로,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처럼 웃을 수 없다. 아이의 말 한마디가 가져올 파국은 칼바람 부는 혹독한 겨울이 이제 막 시작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제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에선 웃음마저 사라지게 된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임금님이 행차를 계속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은 뒷이야기가 교훈적이지 못하고 잔혹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화가 품고 있는 이야기 품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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