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엄마 뭐 해?”

“음, 텔레비 봐.”

“아침마당?”

“아침마당 끝나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보지. 오늘은 걷는 것에 대해 나왔어. 걸어야 건강하게 병 없이 산대. 넌 그렇게 걷지 않아서 어떻게 하냐?”

어머니와 아침 통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팔십이 넘은 노인인 어머니의 유일한 낙은 졸며 깨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수십 전부터 어머니의 벗이다. KBS, MBC 그리고 SBS 방송국이 개국하고, 종합편성 채널, 케이블 TV 등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수십 개의 채널이 생겼지만 어머닌 오직 KBS 방송만 보며 애정한다. 채널은 항상 KBS1 방송에 고정되어 있다. 교양, 시사, 예능, 드라마, 뉴스까지 모두 KBS에서 하는 방송만 본다. 너무하다 싶어 다른 채널을 권하며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볼 것을 말하면 항상 대답은 같다.

“9번 틀어 봐. 뉴스는 KBS 뉴스를 봐야지.”

“세상에 방송 채널이 하나밖에 없어. KBS 재미도 없구만.”

KBS 건강생활정보/ 시사다큐/교양프로그램
KBS 건강생활정보/ 시사다큐/교양프로그램

어머닌 이웃집 찰스 이야기도 들어야 하고, 전국에서 노래 자랑하는 것도 봐야 하고, 열린음악회를 현장에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집에서는 봐야 하고, 진짠지 가짜인지 모르는 드라마를 보며 욕도 해야 한다. 어머니에겐 2500원의 수신료가 아깝지 않다. 나는 사실 수신료가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KBS 방송이 뭔가 시대에 맞지 않는 한참 올드한 느낌이 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수신료를 내는 것만큼 공영방송으로 그만한 가치를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시행될지 모른다는 기사를 보았다. KBS 큰일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신료 징수율이 떨어질 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태를 불러온 건 KBS에도 책임이 있다는 걸 안다. 이 점은 앞으로도 곱씹을 문제이다. 그런데 기분이 참 묘하고 이상하다. 수신료를 내는 게 아깝다고 생각하던 입장이었지만 왠지 그 뒷맛이 씁쓸한 게 개운치 않다. 2500원의 수신료에 KBS의 존폐가 달려 있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존폐까지 들먹이는 건 과할지 모르지만 많은 프로그램이 폐지라는 절차를 밟게 되리라는 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돈이 되는 프로그램은 살아남겠지만 돈이 되지 않는 프로그램은 폐지될 것이다. 시사 프로그램, 교양 프로그램, 다큐 프로그램, 예술 프로그램이 가장 먼저 정리 대상에 오르게 될 건 누가 보아도 뻔하다. 폐지만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가 제작되지 않을 수도 있다. 효율성을 따져보았을 때도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면 제작되지 않을 것이다. 장기기획 다큐 프로그램과 시사 프로그램은 제작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수신료 2500원이 불러오는 파장은 어마어마한 나비효과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미덥지 않은 방송이 더 미덥지 않은 방송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합니다 – 동행 (KBS)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합니다 – 동행 (KBS)

집에 앉아 텔레비전을 돌리다 보면 모든 채널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채널과 방송 플랫폼이 생겼다. 볼거리가 넘치는 세상이다. 달마다 수백 개의 드라마와 예능이 쏟아져 나오고 세상 모든 방송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런데도 KBS만 할 수 있는 방송이 있다고 생각한다.

10년을 넘게 한결같이 제작해온 프로그램이 있고, 10년이 넘게 한결같이 시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국민이 내는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번 주는 것은 시청자의 권리 아닐까 생각한다. 

2500원으로는 기본 김밥 한 줄도 사 먹지 못하는 시대이다. 김밥 한 줄 먹는 데도 3000원, 떡볶이 1인분에 튀김 몇 개 추가하면 6000원이 훌쩍 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2500원을 내고 ‘차마고도’를 다녀오고, ‘한국인의 밥상’을 받는 건 아주 특별한 권리이며 행운인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오래된 벗을 잃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침마당’, ‘걸어서 세계속으로’, ‘6시 내고향’이 어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 어머니는 모른다. 어머니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엄마, 이제 졸면서 텔레비전 보면 안 돼. 정신 단단히 차리고 텔레비전을 시청해. 지금 보고 있는 ‘걸어서 세계속으로’ 이제 보지 못할지도 몰라.”라고 어머니에게 말하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한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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