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앤앰 하도급업체 노동자들이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지 142일, 20미터 높이 전광판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한지 보름째인 26일, 씨앤앰이 공식입장을 내놨다. 장영보 사장은 이날 노동조합과 하도급업체에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지도·배석하는 ‘씨앤앰-협력사협의회-노동조합’ 3자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노동조합은 이 테이블이 다뤄야 할 의제로 △109명 해고자 원직복직 △구조조정 중단 및 고용보장 △2014년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 △위로금 지급 등 4가지를 제안했다.

▲ 씨앤앰 장영보 사장.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씨앤앰 “109명 고용문제부터 해결” 노조 “조건부 검토”

씨앤앰은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계약종료 협력업체 직원 관련 씨앤앰 기자회견’을 열고 “전광판 위 농성에 따른 안전문제를 고려해 도의적이고 인도적 차원에서 농성 근로자의 고용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겠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장영보 사장은 협상의제에 대해 “우선순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단 저 분들이 (전광판에서) 내려오도록 고용문제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영보 사장은 원청이 나서는 이유로 “방송업계 대표기업으로서 (노사, 원하청) 상생을 하고자 하고, 농성으로 협력업체 사정이 어려워 고객의 불만을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무엇보다 (고공농성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 문제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적 책임은 없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나섰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씨앤앰은 앞서 노동조합이 제안한 요구안에 대해서는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장영보 사장은 ‘본사가 하청을 설득하려면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있어야 하는데 구체적인 방안은 하나도 없다’는 JTBC 봉지욱 기자의 질문에 “각자 입장이 달라 해결방안이 나오기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해결방안을 논의하겠다. 지금은 (씨앤앰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사태를 해결) 하겠다는 선언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지부와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는 “씨앤앰 장영보 대표이사가 노동조합에 3자 협의체에 대한 공식적인 제안과 문제해결에 진정성 있는 태도로 나서고, 협력사 사장단(정확하게는 파트너사 협의회) 또한 이를 수용한다면 노동조합 역시 참여를 검토할 수 있다”며 “또한 교섭의제로는 해고자 복직문제와 더불어 노조의 4대 요구안이 의제가 돼야 한다. 이를 통해 현사태에 대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3주체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씨앤앰의 기자회견에 30분 앞서 열린 노동조합 기자회견. 노동조합은 4대 요구안을 제시하며 노사 직접교섭을 제안했다. (사진=미디어스)

‘진짜사장’ MBK, 씨앤앰에 ‘내용’ 없는 선언 하라했나

문제는 씨앤앰의 이 같은 기자회견 사실을 협력사협의회와 노동조합은 사전에 알지 못했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3자협의체 구성’ 제안을 받지 않았다는 데 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이종탁 위원장은 씨앤앰의 기자회견 직후 <미디어스>와 만나 “사전에 어떤 제안을 받지 못했다”며 “협력사에서도 노동조합을 통해 기자회견 소식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씨앤앰이 ‘언론플레이’로 여론을 잠재우려 꼼수를 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 씨앤앰은 기자회견 계획을 MBK파트너스 등 주주 쪽에는 알린 것으로 확인됐다. MBK파트너스의 홍보대행사인 ‘웨버 샌드윅 코리아’ 홍세규 상무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장영보 사장이 주주들에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알리면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겠다’는 정도로 (사전에) 보고했다”며 “주주는 이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씨앤앰과 MBK가 조율한 결과’인 셈이다. 실제 MBK 측은 씨앤앰의 기자회견 자료를 언론에 배포하기도 했다.

사모펀드운용사인 MBK파트너스는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와 손을 잡고 투자자를 모아 ‘국민유선방송투자’라는 법인을 세워 2008년 씨앤앰을 인수했다. MBK는 씨앤앰을 되팔아 이 차익을 투자자에게 나눠주는 것이 최대 목표다. 하도급업체 일부 폐업과 대량해고 사태를 두고 ‘MBK가 구조조정과 노조파괴를 기획했다’는 분석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홍세규 상무는 ‘MBK파트너스가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주요 경영상황과 퍼포먼스(영업실적)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지만 인사와 노무 등 경영은 장영보 사장이 한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씨앤앰이 포함된 펀드1호는 2016년 만료된다”며 “아직 매각이 가시화되지 않았고, 레터(제안서)를 돌리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매각가를 높일 목적으로 주주단과 씨앤앰이 ‘노조 깨기’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 장영보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동조합이 씨앤앰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반박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금수준 등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이를 지적하는 기자들에게 한상진 상무는 “홍보팀을 통해 문의해 달라” 요청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장영보 “사모펀드, 언젠가 떠나지만 지금은 매각 아니다”

장영보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MBK파트너스의 경영개입 등은 없었다며 주주를 적극 변호했다. 그는 ‘가짜사장 씨앤앰, 진짜사장 MBK’ 논란에 대해 “씨앤앰을 경영하고 운영하는 권한은 대표이사 장영보에게 있다”며 “최종책임자는 나”라고 말했다. 그는 “MBK와 맥쿼리는 대주주 KCI(국민유선방송투자)의 투자자이시다”라고 말했다.

장영보 사장은 “노동조합은 ‘(사모펀드가) 매각가를 높이기 위해 협력업체 직원 해고하고 인위적으로 구조조정을 한다’고 주장하고 ‘먹튀’라고도 하지만 이번에 계약종료된 협력업체는 경영상 이유로 연장이 안 됐고 다른 업체로 대체됐다. 비용절감이 아니다. 인력도 줄지 않았다”며 “명확한 근거 없이 투자자들이 사모펀드로 구성돼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씨앤앰의 현실을 왜곡한다면 상황을 악화할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회견장 바깥에는 보안업체 소속 직원 십여 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어 노동자들은 장영보 사장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장영보 사장 등 경영진은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회견장 뒤편 주방이 연결된 통로를 통해 프레스센터를 빠져나갔다. 이날 기자회견은 시간과 장소가 긴급하게 잡혔는데도 50여 명 이상의 기자들이 몰렸다. 이를 두고 한 방송사 기자는 “씨앤앰이 언론플레이를 하기 위해 부른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케이블 업계 관계자는 “대안도 없이 간담회를 해서 노동조합을 자극했다”며 “하나마나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 이날 기자회견에는 50여 명의 기자가 몰렸다. 반면 씨앤앰 고공농성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와 언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진=미디어스)
▲ 씨앤앰 기자회견 직후, 씨앤앰 고공농성장 모습. 강성덕(35), 임정균(38)씨가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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