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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함부로 짓밟아버리는 미물들, 야광충 벌레 인간들의 연대[기고]하늘에서 투쟁중인 씨앤엠노동자 강성덕, 임정균에게
전규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언론연대 대표 | 승인 2014.11.21 11:39

오늘 아침 서울의 온도는 6.5도. 이 글을 쓰는 아침, 라디오가 알려주는 바깥 공기의 기온입니다. 당신들은 그래서 오늘도 무사하신지요. 광고탑 위에 올라 농성 중인 강성덕, 임정균 두 사람의 안전을 진심으로 빕니다. 그래도 아직 추위가 덜 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 어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은 또 하룻밤 전광판 위에서 벌벌 떨며 사내들끼리 몸뚱이를 껴안고 차가운 운명을 버텨내야 했겠지요. 잠 못 오는 도심의 밤을, 온갖 사념들을 물리치면서, 오직 동지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하여 승리하리라는 각오로서 보냈을 겁니다. 집에 있을 식구들 걱정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동지들이 끓여 올린 뜨거운 라면 후루룩 말아 먹으며 새로운 아침을 맞고 있겠지요.

이틀 연속 당신들 야광충(夜光蟲)을 찾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런 이상한 이름을 붙입니다.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내게 당신들은 하얀 빛을 발하는 작은 벌레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이자 씨앤엠의 대주주이며 이번 사태의 최종 책임자인 MBK를 비롯해 온갖 신자유주의 금융자본들로 꽉 들어찬 파이낸스 빌딩 앞. 높다란 선전 광고판 위에 오른 당신들은 이 야만의 시대를 증언하는 인간 벌레입니다. 자본이 함부로 짓밟아버리려는 미물들. 그래도, 그렇기에 그 생명의 존엄과 노동의 권리를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꿈틀거립니다. 약한 몸을 움직이고 하얀 진액을 내뱉으며 시대의 야만에 저항합니다. 당신들은 이렇게 폭력의 사태를 고발하는 또 다른 벌레 인간들입니다.

밤이 되면 하얀 빛으로 변하는 존재들. 캄캄한 이 시대 허공에서 흐릿한 빛을 흘리는 작은 몸뚱이의 미물(微物)들. 사람들이 서둘러 웅크린 채 집으로 찾아드는 초겨울 바람 부는 광화문 거리의 난장이들. 1백 일 넘게 도심에 모여 웅성대고 1백 명 넘는 목숨들이 짓밟히고 찢겨져나간 하찮은 생명체의 세계가 어둠 속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어둠이 잔뜩 깔린 자본의 아스팔트 위 검은 점들, 전광판 위 하얀 점들의 세계. 설마 그 조그만 하얀 빛이 강씨, 임씨라는 성을 가진 인간들이 보내는 생존의 표식인지, 사람들은 쉽게 알아채지 못합니다. 100명의 해고된 노동자들이, 훨씬 더 많은 파업 노동자들이 보내는 간절한 구조의 신호인지 알아주지 않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우실까요. 우리가 안 미우신가요?

   
▲ (사진=미디어스)

이틀 전 저녁에 당신들을 처음으로 찾았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전광판 아래 수십 명의 씨앤앰 노동자들이 바닥에 앉아 투쟁문화제를 열고 있었습니다. 사회자는 오늘은 외부 연대발언 하나도 없는 우리만의 조촐한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전날 시민사회 대표자 회의에서 적극 연대하겠다고 약속했던 터라, 더욱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이렇게 여러분들끼리만 내버려 두는 것은 명백한 폭력입니다. 절대로 옳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최소한의 예의는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발언신청을 했습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전광판 앞에 서서, 다음 이야기는 저 높은 곳의 당신들에게 전해드려야 했습니다. 기억나시죠?

수업을 시작하면서, 당신들 중 한 명의 부인이 쓴 편지를 학생들과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얘들하고 잘 지내고 있으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자기 몸 잘 챙기면서 아프지 않게 있다가 내려와. 그래도 추운 날씨에 자기랑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다행이다. 어려운 결정하고 거기까지 올라갔는데 빨리 좋은 결과 얻어서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어찌 말로 부인의 많은 생각을 다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찌 그녀들의 생각뿐이겠습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의 내용도 저 사연 그대로입니다. ‘못난 남편’이 부친 11월 11일자 편지도 학생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노트를 찢어 적어 내려간 편지였습니다. 한 녀석이 차분히 읽어내려 갑니다. 당신의 찹찹한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난 따뜻한 밤에서 자고 있는데 우리의 해고노동자들이 점점 추워지는 길바닥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매일 매일 하루가 지옥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재미있는 아빠 좋은 아빠, 당신 옆에서는 든든한 배우자,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직원이 되야만 했는데. 그런데 내 마음 속 한 구석은 계속 망가지고 있었나봐. 내가 이렇게 즐겁고 행복해도 되나라고. 내가 정말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해고 동지들을 처음처럼 생각 안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몇 일이 될지 얼마나 있을지 지금은 알 수가 없어. 몸 상하지 않고 건강하게 내려올지 아님 어찌 될지도 모르겠다.” 이 대목에 이르러 갑자가 학생은 말을 뚝 멈춥니다. 조용한 울음, 고요한 침묵. 미련한 선생도 등을 돌리고 겨우 눈물을 참습니다.

   
▲ 서울 프레스센터와 서울파이낸스센터 사이에 있는 20미터 높이 전광판에서 고공농성 중인 임정균, 강성덕씨가 18일 기자회견에서 나온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얼른 다른 녀석이 다음 대목을 받아 다시 읽습니다. “술을 먹어도 잠아 안와. 너와 얘들은 옆에서 자고 있는데, 이쁜 우리 똥강아지에게 너무 미안하고 매일 아빠 일찍 돌아오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당분간 못 들어온다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더라. 당신에게 말하면 너무 놀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혼자 결정하게 된 거지. 다시 한번 미안해. 그냥 얘들이 아빠 왜 안 들어 오냐고 하면 좋은 회사 만들기 위해 당분간 못 들어온다고 잘 말해 줘. 미안해. 항상 부탁 안 해서. 이제껏 나랑 살면서 좋은 거 맛난 거 맘 편하게 해주고 몸도 고생, 마음도 고생만 시킨 못난 남편이라 점점 할 말이 없다.” 이 녀석도 결국은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예술을 하는 아이들이라 워낙 예민해 그랬던 것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녀석은 저한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요?” 무능한 선생은 이런 때 대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하는 것일까요?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패배자들도 이야기를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어쩌면 그게 이 야만의 시대 우리의 운명, 예술가들의 숙명일지 모른다고 하면 위로가 되겠습니까? 아, 이 어둠의 시절에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전광판에 오른 두 명의 인간들, 금융자본의 매끈한 유리벽에 붙은 두 마리 야광충들을 앞에 두고, 우리는 함께 눈물을 삼키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이게 나와 우리 학생들만의 이야기겠습니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여러분께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작은 이야기로 연대의 발언을 대신하고 싶었습니다. 귀 기울여 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런 우리의 슬픔은, 눈물은 연대를 방해하는 건가요? ”아니요!“ 전광판 아래 동지들이 힘차게 답해주셨습니다. 뜨겁게 박수를 쳐주셨습니다. 당신들은 겨울 거리로 내 몰린 자들임에도 참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관심을 귀하게 여기는 넉넉한 마음씨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런 당신들을 자본과 국가는 외면합니다. 비정하게 차가운 거리로 내몹니다. 그러나 인간인 우리는 여러분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여러분의 노난,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눈을 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다가갑니다.

   
▲지난 12일 씨앤앰 하도급업체 노동자 두 명이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와 서울파이낸스센터 사이에 있는 높이 20미터 전광판에 올라갔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아닙니다. 상황은 훨씬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여러분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아파하고 여러분과 함께 슬퍼합니다. 분노하고 눈물 흘립니다. 상대도 두려워합니다.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곧 대화에 나설 겁니다. 이런 희망의 메시지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광판 위 당신들이 힘차게 외쳐주셨습니다. 그때 나는 흐릿해지는 눈으로 당신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아, 전광판 위에 오른 하얀 빛의 벌레들. 우리가 반드시 지상으로 안전하게 내려오게 해야 할 벌레 인간들. 인간의 예의, 인간의 도리, 인간의 의무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바로 우리의 얼굴입니다. 제국에 맞서는 벌레들, 우리의 운명적인 희망 연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젯밤에도 당신들은 저 높은 전광판에 검은 점 두개로 단단히 붙어있었습니다. 아래쪽 동지들의 구호나 노래에 맞춰 가끔은 하얀 빛 두 개로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당신들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의 흐린 빛이겠죠? 아, 자본과의 대화, 정권와의 대담,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모두 끊어진 상태에서, 당신들은 이 작은 화면의 빛으로 세상에 당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무사함을, 당신들이 여전히 분노하고 있음을, 당신들은 간절히 문제의 해결을 원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자고 외치는 인간의 소망, 끝까지 저항한다는 노동자의 결기가 감전되듯 전해집니다. 20미터 높이 전광판 위에 붙은 야광충들, 우리도 당신들처럼 작고 흐린 하얀 빛으로써 이 캄캄한 시간에 대항할 것입니다.

문화제를 마치고 한 씨앤엠 노동자를 인터뷰했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은 씨앤엠 투쟁의 현장에서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모두 함께 노동자이고 구분 없는 동지들일 뿐이었으니까요. 엄마로서 현 상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고 있는지 말해주시라 했습니다. 두 아이 이름을 부른 이 여성노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엄마는 여섯시 되면 퇴근해서 너희들 볼 수 있지. 그런데 집에 가지도 못하고 훨씬 더 오래 일해야 하는 아저씨들이 많이 계셔. 그 분들이 부당하게 일자리를 잃고 그래서 저기 올라 가신거야. 엄마도 어쩜 그렇게 될 수 있어. 안 좋겠지? 난 사랑하는 너희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가서 함께 하는 거니, 이해해 줄 거지? 응원해 줘서 고마워.”

전규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언론연대 대표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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