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운용사 MBK파트너스(회장 김병주)와 맥쿼리는 지난 2007년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 씨앤앰을 인수하기 위해 투자자를 모아 ‘국민유선방송투자’(KCI)를 설립, 씨앤앰 지분을 90% 이상 사들였고, 2008년 방송위원회는 이를 허가했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단기실적 위주의 경영 유인이 높았기 때문에 8가지 조건을 달았다. 공시자료를 보면 KCI의 주주는 △국민유선방송투자 1호사모투자전문회사 △MBK파트너스사모투자전문회사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즈사모투자전문회사 등이다. KCI가 스스로 언급한 주주는 모두 사모펀드운용사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씨앤앰은 17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가입자 242만7024명이 있고, 매년 수백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는데, 이 돈의 대부분을 KCI에 배당했을 뿐더러 수천 억 원의 빚을 ‘대신’ 갚고 있다. KCI도 마찬가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최근 5년 동안 이자만 4280억 원 넘게 썼다. 2007~2008년 인수 당시 금액에 이자까지 고려하면 최소 2조6천억 원 이상에 되팔아야 손해를 안 본다. 이른바 ‘씨앤앰 펀드’의 만기는 2015년이다. MBK와 맥쿼리는 최근 씨앤앰을 ‘매물’로 내놨다. 이것이 하도급업체 구조조정의 배경이다.

사모펀드 입장에서 ‘꺼져 가는’ 케이블SO 씨앤앰을 되팔아 투자자에게 돈을 나눠 주려면, 인건비 같은 고정비용을 줄이거나 노동조합 리스크를 없애야 한다. 가장 손쉽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원-하청 거래다. 씨앤앰은 케이블TV와 인터넷 설치, 수리, 철거, 영업 등 핵심업무에 대해 수십 개 하도급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있다. 지난 5년 이상 도급비는 오르지 않았고, 올해 하도급업체들은 노동자들에게 임금 20% 삭감안을 제시했다. 업체 변경 과정에서 109명의 노동자가 계약만료로 해고됐다. 이들은 모두 민주노총 희망연대노동조합 소속이다.

▲ MBK파트너스. (사진=미디어스)

업계 3위의 케이블SO는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정부는 사모펀드의 특성 상 씨앤앰 인수 이후부터 매각 전까지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2008년 씨앤앰 최대주주 변경 인가 당시 정부는 씨앤앰에 ‘국민유선방송투자 출자자 확정 내역’을 매년 제출토록 했다. 그리고 이를 포함해 총 8가지의 승인조건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이행실적을 매년 제출하도록 강제했다. 이영미 미래부 뉴미디어정책과장은 지난 9월 국회 토론회에서 “최대주주 변경승인 과정에서 사업계획서가 있었다”며 “매년 이행실적을 받아 점검했다”고 말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규제하고 진행하는 주무부처 미래부가 갖고 있는 자료는 △경영 투명성 강화(국민유선방송투자 인수 전.후 이사 선임 현황) △지역채널 방송실적 △투자계획 이행실적 △직접사용채널 방송실적 △PP 사용료 지급실적 △공익사업 이행실적 △씨앤앰 재무구조 △국민유선방송투자의 출자자 확정내역 등 8가지다. 방송법에 외국인 지분 제한 규정이 있는 만큼, 미래부는 사모펀드가 씨앤앰을 ‘먹튀’할 때 수익을 얻을 회사와 사람 명단을 갖고 있다. 씨앤앰의 재무구조부터 사모펀드의 지배구조까지 핵심내용을 모두 꿰고 있는 것.

<미디어스>는 지난달 22일 미래부에 ‘2008년 씨앤앰 최대주주 변경 시 정부가 의결한 승인조건과 의결 당일 속기록, 그리고 이후 씨앤앰이 제출한 이행실적 내역 일체’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미래부는 지난 13일 “제3자 의견청취 결과, 씨앤앰은 이행실적에 대해 비공개를 요청했다”고 알려왔다. 미래부는 ‘출자자 확정 내역’을 뺀 7개 조건 이행실적을 공개 결정했지만 씨앤앰이 비공개를 요청했다는 설명이다. 뉴미디어정책과 관계자는 통화에서 “씨앤앰이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경우, 빠르면 12월 중순께 공개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미래부의 이 같은 결정은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이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합편성채널 4사의 사업계획서와 주주명단, 그리고 연도별 이행실적 것에 비교하면 ‘사모펀드 감싸기’로 볼 수 있다. 방송사업자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이 ‘종편 주주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한 이유다. 이 정보가 아니었다면 보수언론과 기업 사이에 있던 검은 거래들, 절반에 가까운 법인이 약정을 철회한 사실, 세무서와 KDI 같은 곳이 종편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황당한 상황은 지금도 종편과 방통위만의 비밀일 것이다.

▲지난 12일 씨앤앰 하도급업체 노동자 두 명이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와 서울파이낸스센터 사이에 있는 높이 20미터 전광판에 올라갔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오래된 수법이다. 정부는 ‘제3자 의견을 들어야 한다’며 시간을 끌고, 사업자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시간을 번다. 미래부는 <미디어스>의 정보공개를 접수한 10월23일(청구는 22일) 직후 씨앤앰에 의사를 물었고, 씨앤앰은 10월31일 ‘비공개요청서’를 미래부에 보냈다. 미래부는 보름 넘게 시간을 끌다 11월13일에야 ‘부분공개’를 통보했다. 혹여 씨앤앰이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관련법에 따라 12월 중순이 돼야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미래부가 마치 사모펀드의 홍보팀인양 적극적으로 정보를 방어하고 있는 꼴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주일 가까이 고공농성이 이어지는 배경은 사모펀드의 씨앤앰 ‘먹튀’ 계획 때문이다. 그렇다면 규제기관은 자신이 허가를 내준 방송사업자를 규제하고 가입자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미래부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만 말한다. ‘원청’ 씨앤앰도, ‘주주’ MBK파트너스도 나 몰라라 하는 상황에서 규제기관마저 손을 놓고 있다. ‘사모펀드에게 방송산업을 개방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씨앤앰 매각 추진 과정에 ‘씨앤앰 최대주주 변경 승인 조건’ 같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지만 미래부는 관심이 전혀 없다.

사모펀드는 이미 미래부를 포획한 것 같다. 씨앤앰이 미래부 관료들을 골프장, 룸살롱에서 ‘접대’했다는 내부문건이 공개된 적이 있다. “관계기관과 합심해 방송통신업계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풀어보겠다”던 최양희 장관은 더 이상 말을 않는다. 사모펀드가 ‘먹튀’를 성공할 때까지 눈을 감고 있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이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사위라서 그런가, 아니면 그가 한국 M&A업계의 큰손이라서 그런가. 그것도 아니라면 둘만 알아야 할 더 큰 비밀이 있는가. 결자해지를 요구했더니 오히려 비밀을 봉인하고 있다.

▲ 고공농성 6일차인 11월17일. 농성장 주변을 지나가는 시민에게 서명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는 한 노동자.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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