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한복판에서 ‘김장’ 행사가 열렸다.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 모인 100여 명은 긴 책상에 비닐을 깐 뒤 배추와 양념을 올렸다. 그리고 저 위를 보며 “사랑한다”고 말하며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서울시나 봉사활동단체가 주최한 행사가 아니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가 진행한 행사로 139일째 노숙농성, 12일째 고공농성 중인 씨앤앰 하도급업체 노동자들을 위한 자리였다. 행사 이름은 이랬다. “진짜 사장, 매운 맛을 보여주마!”

▲ 23일 오후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씨앤앰 정규직, 비정규직 농성장에서는 <진짜 사장에게 매운 맛 보여주다> 행사가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 (사진=미디어스)
▲ (사진=미디어스)

“진짜 사장에게는 매운 맛을, 광고탑에 매달린 노동자에게는 따뜻한 맛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게 행사 목적이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는 “우리 전화 한 통이면 달려와 인터넷과 TV를 설치해주는 노동자들이 첫눈에 내린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매달려 있다”며 “1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해고돼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매일 한뎃잠을 자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씨앤앰 경영진과 대주주 MBK파트너스는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김장 행사에 참여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위영일 지회장은 “우리가 서초동에서 노숙투쟁을 했을 때 케이블 노동자들이 연대를 했고, 정말 큰 힘이 됐다”며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씨앤앰 동지들에게, 크지 않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씨앤앰 사태는 출구가 보이지 않지만, 끝까지 함께 한다면 결국 이길 것”이라며 “(MBK와 씨앤앰이) 기득권을 내려놔야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사진=미디어스)
▲ (사진=미디어스)

희망연대노동조합 이종탁 위원장은 <미디어스>와 만난 자리에서 “노동계, 시민사회의 관심이 없었다면 밀려날 수 있었다”며 “이 같은 연대가 이어지는 것은 그만큼 씨앰앰 투쟁이 절실하고 절박하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있었고,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축적된 마음과 분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종탁 위원장은 이어 “십시일반 연대가 있는 만큼 빨리 해결하고, 위에 있는 두 동지가 빨리 내려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씨앤앰 하도급업체 노동자 109명은 지난 6월 이후 계약만료로 차례로 해고됐다. ‘원청’ 씨앤앰은 지난해 노동조합과 ‘업체 변경시 고용승계’를 약속했으나, 하도급업체는 ‘선별 고용승계’과 ‘임금 20% 삭감’을 고집했다. 이를 두고 MBK파트너스가 매각가를 높이기 위해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대주주 MBK는 골드만삭스를 통해 티브로드 등에 ‘조건’을 제시하는 등 매각을 추진 중이고, 최근에는 펀드 ‘투자자 달래기’ 행사까지 연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미디어스)

넉 달이 넘는 노숙농성에도 꿈쩍 않던 ‘진짜사장’이 움직인 시점은 임정균, 강성덕씨가 프레스센터 앞 높이 20미터 옥외광고판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하고 씨앤앰 정규직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한 뒤다. MBK와 씨앤앰은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민주노총, 시민사회의 압박에 해결의지를 내비쳤다. 현재 김앤장법률사무소와 대책을 논의 중이다. 씨앤앰과 MBK는 ‘109명 복직’ 정도를 노조에 제시하고 여론을 잠재울 가능성이 크다.

씨앤앰과 MBK의 ‘물타기’가 여론을 어떻게 움직일까. 이날 ‘김장’ 연대한마당에 참석한 권영국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씨앤앰 사태의 핵심은 ‘매각을 위한 정리해고’라며 매각 전후 정리해고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씨앤앰 노동자들은 애초 다단계 하도급, 간접고용 차별 문제로 수개월 동안 싸웠지만 씨앤앰과 MBK는 매각을 위해 정리해고를 했다”며 “이 때문에 대량해고 있었고, 고공농성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최근 파업에 돌입한 씨앤앰 정규직 노동조합(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지부)의 신승훈 교육부장은 “연대파업이 아니라 ‘우리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각을 추진하는 주주와 경영진은 ‘노조 분쇄→매각’을 생각하고 있고, 이를 백지화하지 않으면, 간접고용 109명이 현장으로 돌아가더라도 내년 더 큰 문제가 생기고, 여기에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정규직이 파업을 시작한 것은 노조분쇄와 사모펀드 ‘먹튀’를 막는 마지막 싸움”이라고 말했다.

▲ (사진=미디어스)

노동조합 내에서는 회사가 일부 정부부처와 국회를 ‘조직’해 ‘사회적 합의’ 꼴을 갖춘 뒤, ‘109명 즉각 복직’을 제시하더라도 이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 109명 복직과 ‘먹튀’ 매각을 맞교환하는 ‘거래’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씨앤앰과 MBK 경영진은 “109명 해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하도급업체 정리와 임금 20% 삭감, 매각과정에서 예상되는 구조조정 등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MBK와 씨앤앰이 물타기를 기획할 즈음, 고공농성장은 김장으로 ‘겨울나기’를 준비했다. 고공농성자도 노숙농성자도 사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농성을 접을 계획이 없다. 신승훈 교육부장은 “(노조가) 임금인상안을 받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면 더는 싸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이 싸움의 취지와 사실관계, 진실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시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