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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인 게 두렵고 노동조합 하기 무서운 이곳[기자수첩] 내일도 씨앤앰노동자 고공농성장으로 출근한다
박장준 기자 | 승인 2014.11.12 18:21

월급이 며칠만 밀리면 알아서 눈칫밥을 먹는다. 가끔 가족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예전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에게 “갚을 수 있느냐” 부탁하기도 하지만 뜻대로 안 된다. 그나마 안정적으로,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기본급’을 받는 직접고용 정규직의 일상이 이런데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고단함은 오죽하겠는가?누군가에게 밥벌이는 지겹고 피곤한 일이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노동은 고달프다.

내가 노동자라는 사실, 가장이 될 거라는 미래가 두렵다. 이 사회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노동’을 취재하면서 든 생각이다. 12일 새벽 4시50분 케이블 업계 3위 씨앤앰의 하도급업체 노동자 2명이 대주주 MBK파트너스 사무실이 입주한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전광판에 올라갔다. 높이 20미터, 난간 없는, 그야말로 벼랑 끝이다. 이들의 한손에는 현수막이 있었고, 다른 한손에는 시너를 담은 통이 있었다.

강성덕(35), 임정균(38). 이 두 사람을 여러 번 봤다. 강성덕씨는 기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다룬 ‘사모펀드’ 토론회에서 가장 열심히 질문을 할 정도로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이다. 페이스북으로 매일 투쟁 현장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노동조합 정책부장인 임정균씨는 ‘피만 끓었던’ 기자에게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씨앤앰, 그리고 하도급업체의 관계를 친절하게 설명해준 노조 간부다.

   
▲ 씨앤앰 간접고용 노동자 임정균씨가 고공농성을 시작하기 전 가족에게 남긴 편지.

임정균씨는 해고자가 아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어젯밤 아내와 세 아이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는 노동조합 활동을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했고, 또 혼자 이런 결정을 내려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도 있지만 어느새 해고대오들도 내 가족같이 된 것 같다”며 “이들의 힘든 하루하루와 아픔이 막 전해져 와서 하루하루가 너무 아프다. 이런 선택한 나를 이해해 달라”고 썼다.

그는 “술을 마셔도 잠이 안 온다”고 했다. “난 따뜻한 방에서 자고 있는데 우리의 해고동지들이 점점 추워지는 길바닥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매일매일 하루가 지옥”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해고동지들을 처음처럼 생각 안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해고대오들 생각하면 미안하고 죄송해서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잠을 안 자고 전광판에 올라갔다.

“올라가야 할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올라가지 않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MBK파트너스는 투자자에게 수익을 나눠줘야 하고 어떻게든 매각가를 높여야 한다. 만만한 대상은 노동자다. ‘일부 하도급업체 정리-임금 20% 삭감’ 계획은 MBK파트너스 기획이 분명하다. 사양산업 케이블에서 ‘먹튀’를 하려면 임금 같은 고정비용을 줄이고 노동조합 리스크를 없애는 방법뿐이다.

   
▲ 씨앤앰 간접고용노동자 두 명은 12일 새벽 4시50분께 서울파이낸스센터와 프레스센터 사이에 있는 대형전광판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사진=미디어스)

게다가 씨앤앰은 주간실적을 대주주에게 보고하고, 셋톱박스 변경도 대주주 허락을 받는 사모펀드 ‘빨대’다. 씨앤앰 경영진은 ‘허수아비’다. 씨앤앰이 국회의 압박에 잠깐 머리를 숙이며 “해결하겠다”고 했다가 하루아침에 말을 뒤집은 배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매각을 추진하는 MBK파트너스의 판단에 있다. 노동자 109명이 넉달 넘게 MBK 앞 길바닥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12일 아침 7시께 문자가 왔다. “케비지부(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조합원 둘, 고공농성 돌입하였습니다. (새벽 4시50분) 프레스센터 전광판. 취재 부탁드립니다.” 편집장에게 출근을 그쪽으로 하겠다고 보고한 뒤 현장을 찾았다. 전광판 위 두 사람을 확인했고, 울고 있는 동료들을 만났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내려다보이는 프레스센터 18층 전국언론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기사를 썼다.

우리 사회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는 임계점을 넘은지 오래다. ‘무노조’ 삼성과 ‘반노조’ 티브로드에도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생겼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간접고용 노동자들도 올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현재 을지로 SK텔레콤 건물과 여의도 LG 쌍둥이빌딩 앞에서 농성 중이다. 이들은 업체가 바뀔 때마다 신입사원이 되고, 하루아침에 목이 날아가는 파리목숨이다. 그야말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씨앤앰, 티브로드, 삼성전자서비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문제는 결국 원청만 풀 수 있다. 하지만 원청의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답은 “하도급업체의 노사문제”라는 것뿐이다. 원청 재벌은 답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피하고, 뒤로는 “노조를 정리하라”고 한다. 광고주 눈치 보는 언론은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고 광고주와 혼연일체가 돼 “하청노조 때문에 원청이 떨고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 SK브로드밴드 간접고용노동자는 10월 생활비로 5만 원을 건네고 파업에 참여했다. 방송통신업계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반은 노동자, 반은 사장님이고 아예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는 것을 강요당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일감을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경우, 임금이 아예 없다.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평범한 노동자, 가장을 취재하는 것은 더 힘들고 ‘곤란’해질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섭고 두려워진다. SK브로드밴드 인천 부평행복센터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10월6일 파업 첫 날,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쪽지와 함께 생활비 ‘5만 원’을 남기고 파업에 참여했다. 회사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에게는 일을 주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평범한 가장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노동자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사회에서 노동조합을 하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기본급’이 아예 없는 노동자는 더 그럴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들이 기본급을 받기까지 두 명의 죽음이 있었고, 수십 일 동안의 노숙투쟁이 있었다. 정체 모를 투자자와 사모펀드의 ‘먹튀’를 위해 버림받은 노동자 109명이 직장으로 돌아가기까지 어떤 사건이 더 일어날까? 상상하기 싫다.

며칠 전 5만 원짜리 ‘희망채권’을 샀다. 안정적인 기본급을 받는 내게도 5만 원은 적지 않은 액수다. 그런데 이 돈은 한 달 생활비로 5만 원을 건네는 간접고용 노동자와 서울 한복판에서 130일 가까이 컵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노숙하는 노동자에게 더 소중하다. 노동자인 것이 두렵고, 노동조합을 하기 무서운 이곳에서는 특히 그렇다. 내일도 고공농성장으로 출근해 기사를 써야겠다. 언젠가 5만 원을 돌려받으려면.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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