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오늘(12일) 새벽 4시50분. 씨앤앰의 간접고용 비정규직노동자 두 명이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전광판 위에 올랐다. 높이 20미터, 너비 3~5미터로 난간 없는 전광판을 농성장으로 삼았다. 전광판 위에 있는 임정균(38)씨는 씨앤앰의 하도급업체 JC비전(용산지역) 소속으로,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정책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해고상태는 아니지만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농성을 해왔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임씨는 고공농성을 시작하기 전인 11일 밤 배우자에게 ‘그곳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편지로 남겼다. <미디어스>가 편지 전문을 싣는다. 문장부호만 일부 수정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가 노조에 가입한지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있는 것 같구나. 처음과는 다르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봐줘서 고마워…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끔 옆에서 묵묵하게 응원해주고 힘든 일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같이 울어주고 즐거워하고 괴로워해주는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어.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을 말하지 못한 거 정말 미안해. 나중에 알게 되면 정말 많이 놀라고 힘들 거라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말고는 없다는 생각에 결정하고 하는 거라 이 못난 남편 이해해줘… 오빤 아직도 강하고 강하잖아…

사실 많이 두렵다. 처음 해보는 거라… 많이 떨리기도 하다. 하지만 해고대오들 생각하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미안하고 죄송해서. 그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느낀 건데 회사에 대한 원망보다도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당한 것 같대‥ 젊은 시절 회사를 위해서 누구보다 잘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도 하고 했는데… 이제는 별로 필요 없어서 버려진 것 같다고 많이들 아파해…

무슨 회사가 이럴까? 어떤 회사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까? 109명이란 사람들을 해고시켜놓고 5개월 넘게 노숙하는 사람들을 향해 ‘배가 덜 고픈 것 같다’고 말하는 회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 답답하고 욕이 나온다.

요즘 더욱 더 심해진 것 같아. 해고대오 사람들과 만나면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아. 해고대오 사람들 앞에서 잘하고 있다고, 여러분 존경한다고, 멋지게 얘기하고 희망도 주고 싶고 이길 수 있다고 확신도 줘야 하는데 그냥 해고대오들 앞에 서서 말을 하면 목이 메이고 눈물이 먼저 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도 있지만 어느새 해고대오들도 내 가족같이 된 것 같아. 이들의 힘든 하루하루와 아픔이 막 전해져 와서 하루하루가 너무 아프다. 이런 선택한 나를 이해해줘.

난 따뜻한 방에서 자고 있는데 우리의 해고동지들이 점점 추워지는 길바닥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매일매일 하루가 지옥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재미 있는 아빠, 좋은 아빠, 당신 옆에서는 든든한 배우자,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직원이 돼야만 했는데, 그런데 내 마음 속 한구석은 계속 망가지고 있었나봐. ‘내가 이렇게 즐겁고 행복해도 되나’하고.

내가 정말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해고동지들을 처음처럼 생각 안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며칠이 될지 얼마나 있을지 지금은 알 수가 없어. 몸상하지 않고 건강하게 내려올지 아님 어찌될지도 모르겠다. 술을 먹어도 잠이 안 와…

너와 얘들은 옆에서 자고 있는데… 이쁜 우리 똥강아지에게 너무 미안하고 매일 “아빠 일찍 들어오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당분간 못 들어온다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더라. 당신에게 말하면 너무 놀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혼자 결정하게 된 것 다시 한 번 미안해. 그냥 애들이 아빠 왜 안 들어오냐고 하면 “좋은 회사 만들기 위해 당분간 못 들어온다”고 잘 말해줘.

미안해. 항상 부탁만 해서‥ 이제껏 나랑 살면서 좋은 거 맛난 거 맘 편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몸도 고생, 마음도 고생만 시킨 못난 남편이라 점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말야.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는 건 알지? 그건 그 누구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한 번만 더 나를 믿어주고 내려오게 되면 크게 말해줄게. “사랑해”라고…

2014년 11월11일 못난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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