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지난 12일 새벽 4시50분. 씨앤앰 간접고용 노동자 두 명이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와 서울파이낸스센터 사이에 있는 높이 20미터 전광판에 기어 올랐다. 지난 7월1일자로 씨앤앰 하도급업체 시그마에서 해고된 강성덕(35)씨, 해고자는 아니지만 노동조합 간부로 복직투쟁을 함께 한 임정균(38)씨다. 두 사람은 업체 변경 과정에서 계약만료로 해고된 109명 원직복직을 위해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임정균씨는 농성을 시작하기 전날 밤 배우자에게 쓴 편지에서 ‘그곳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고, 임씨의 부인은 고공농성 3일차인 14일 낮 농성장을 찾아 편지를 낭독했다. <미디어스>가 두 사람의 편지 전문을 싣는다.

아내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

형진아빠!

자기 편지 보고 많이 놀랬고, 뉴스에서 보고 또 놀랬어!

내가 걱정하는 맘이 너무 크지만 자기가 거기까지 올라가야 했던 심정 충분히 이해해!

애들하고 잘 지내고 있으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자기 몸 잘 챙기면서 아프지 않게 있다가 내려와!

그래도 추운 날씨에 자기랑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다행이다…

어려운 결정하고 거기까지 올라갔는데 빨리 좋은 결과 얻어서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모이면 반드시 들릴거야!

나두 응원하고 있으니까! 힘내고 빨리 와!!

남편이 아내에게 남긴 편지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가 노조에 가입한지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있는 것 같구나. 처음과는 다르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봐줘서 고마워…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끔 옆에서 묵묵하게 응원해주고 힘든 일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같이 울어주고 즐거워하고 괴로워해주는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어.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을 말하지 못한 거 정말 미안해. 나중에 알게 되면 정말 많이 놀라고 힘들 거라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말고는 없다는 생각에 결정하고 하는 거라 이 못난 남편 이해해줘… 오빤 아직도 강하고 강하잖아…

사실 많이 두렵다. 처음 해보는 거라… 많이 떨리기도 하다. 하지만 해고대오들 생각하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미안하고 죄송해서. 그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느낀 건데 회사에 대한 원망보다도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당한 것 같대‥ 젊은 시절 회사를 위해서 누구보다 잘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도 하고 했는데… 이제는 별로 필요 없어서 버려진 것 같다고 많이들 아파해…

무슨 회사가 이럴까? 어떤 회사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까? 109명이란 사람들을 해고시켜놓고 5개월 넘게 노숙하는 사람들을 향해 ‘배가 덜 고픈 것 같다’고 말하는 회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 답답하고 욕이 나온다.

요즘 더욱 더 심해진 것 같아. 해고대오 사람들과 만나면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아. 해고대오 사람들 앞에서 잘하고 있다고, 여러분 존경한다고, 멋지게 얘기하고 희망도 주고 싶고 이길 수 있다고 확신도 줘야 하는데 그냥 해고대오들 앞에 서서 말을 하면 목이 메이고 눈물이 먼저 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도 있지만 어느새 해고대오들도 내 가족같이 된 것 같아. 이들의 힘든 하루하루와 아픔이 막 전해져 와서 하루하루가 너무 아프다. 이런 선택한 나를 이해해줘.

난 따뜻한 방에서 자고 있는데 우리의 해고동지들이 점점 추워지는 길바닥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매일매일 하루가 지옥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재미 있는 아빠, 좋은 아빠, 당신 옆에서는 든든한 배우자,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직원이 돼야만 했는데, 그런데 내 마음 속 한구석은 계속 망가지고 있었나봐. ‘내가 이렇게 즐겁고 행복해도 되나’하고.

내가 정말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해고동지들을 처음처럼 생각 안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며칠이 될지 얼마나 있을지 지금은 알 수가 없어. 몸상하지 않고 건강하게 내려올지 아님 어찌될지도 모르겠다. 술을 먹어도 잠이 안 와…

너와 얘들은 옆에서 자고 있는데… 이쁜 우리 똥강아지에게 너무 미안하고 매일 “아빠 일찍 들어오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당분간 못 들어온다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더라. 당신에게 말하면 너무 놀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혼자 결정하게 된 것 다시 한 번 미안해. 그냥 애들이 아빠 왜 안 들어오냐고 하면 “좋은 회사 만들기 위해 당분간 못 들어온다”고 잘 말해줘.

미안해. 항상 부탁만 해서‥ 이제껏 나랑 살면서 좋은 거 맛난 거 맘 편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몸도 고생, 마음도 고생만 시킨 못난 남편이라 점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말야.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는 건 알지? 그건 그 누구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한 번만 더 나를 믿어주고 내려오게 되면 크게 말해줄게. “사랑해”라고…

2014년 11월11일 못난 남편이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