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여야 대표 회담은 이재명 대표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연기됐지만, 방식을 놓고 이례적 갈등이 이어진 상황은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생중계’를 요구한 것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회담을 ‘쇼’로 만들려는 심산이냐며 반발했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과거 김기현 대표의 회담 요구에 대해 같은 요구를 한 예를 들어 왜 입장이 달라졌느냐며 받아쳤다.

여의도 정치의 문법으로 보면 ‘생중계 하자’는 것은 사실상 회담을 거부하는 논리다. 여야 대표간의 회담이라는 것은 ‘합의’ 도출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면 여야 대표는 서로 주고 받는 협상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선 서로의 지지층이 보는 앞에서는 하지 못할 말도 서로 해야 한다. 흉금을 털어 놓는 제스추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뢰가 없이는 진행될 수 없다는 점에서, 협상은 본래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 이 과정을 거쳐야 서로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형법 제98조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한 뒤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형법 제98조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한 뒤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생중계’, 즉 공개 토론은 ‘합의’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각자의 입장에 대한 방어 논리를 지지층에 공유토록 하면서 결집을 이루는 게 목적이다. 따라서 ‘합의’를 의도하고자 하는 쪽이라면 ‘생중계’는 제안하기도 수용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여의도 정치의 문법에서는 한동훈 대표의 ‘생중계’ 제안은 사실상 회담 거부로 보는 게 맞다.

그런데 한동훈 대표는, 지난번 금융투자소득세 관련 건에 대해서도 그랬지만, 늘 야당에 토론을 제안하는 쪽이다. 25일로 날짜까지 정해진 상태에서 방식을 ‘생중계’로 하자는 제안을 하는 것도 ‘거부’를 목표로 한다고 보기엔 잘 맞지 않는 느낌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단순히 회담 거부만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실제 공개 토론이 성사 되어도 나쁠 게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가령 이런 식으로 하겠다는 거다. 이재명 대표가 ‘금투세 시행 유예’를 말하면, “왜 유예는 되는데 폐지는 안 되죠?”라고 반박하는 건데, 비유하자면 ‘이재명 잡는 한동훈’ 구도를 만들어 ‘여의도 토론대회 1등’을 노리는 행보라고 볼 수 있다.

한동훈 대표는 왜 ‘합의’가 아니라 ‘토론대회 1등’을 노리는 것일까? 이에 답하려면 용산과의 관계까지 설명의 범위에 넣어야 한다. 한동훈 대표가 이재명 대표와 합의를 할 수 있는 입장일까? 가령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25만원 지원’에 대해, 일부 지급 범위를 조정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이룬다 해도 한동훈 대표 입장에선 이 내용을 갖고 용산을 설득하는 과정이 또 필요하다. ‘금투세 폐지’를 유예나 완화 정도의 입장으로 수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만일 한동훈 대표가 용산과의 신뢰관계가 충분한 상황이면 이 과정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전당대회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런 상황은 전혀 아니다. 한동훈 대표 당선 이후 최고위원회에서 전기요금 지원 등의 정책 의제를 논의할 때 추경호 원내대표와의 이견이 부각된 바도 있다. 한동훈 대표가 대통령과 틈을 벌리는 행보를 야당 대표와의 회담을 통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주장의 빌미를 주면, 그렇잖아도 ‘지켜 보는 중’이라는 용산과 친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특히 ‘착화제’ 역할을 하게 되는 건 채상병 특검이다.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 여야 대표 회담을 제안한 애초의 목적은 채상병 특검일 수밖에 없다. 한동훈 대표가 제안한 ‘제3자 추천 특검’의 유효성을 확인하고 특검 수용을 이끌어 내면 나머지 의제에서 어떤 손해가 있든 결과적으로는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한동훈 대표 입장에서 이 회담이 ‘합의’를 만드는 쪽으로 가게 되면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를 들어 유예해놨던 채상병 특검에 대한 입장을 확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 끝은 당연히 용산과의 충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등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등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만일 한동훈 대표가 그런 상황을 감수할 준비가 됐다면 ‘합의’를 만드는 쪽으로 가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준비가 된 것으로 보긴 어렵다. 가령 서울중앙지검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는 보도에 대해 한동훈 대표는 “검찰이 팩트와 법리에 맞는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보수언론인 동아일보가 22일 사설에서 “특혜조사 논란까지 겹치면서 다른 비슷한 사례에도 이 사건처럼 ‘헐한 잣대’를 적용할 수 있겠느냐는 논란을 낳았다”고 평가한 것보다도 후한 평가다.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 채상병 특검 외의 정책적 대목에서 성과를 기대해야 할 이벤트는 대통령과의 회담이다. 그런데 용산은 회담에 부정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다. 지난번의 회담이 성과가 좋지 않았고 추가 논란만 키운 데다 지금은 독립기념관장 등 뉴라이트 논란과 ‘반국가세력’ 등 발언 후폭풍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내놓기 좋은 핑계가 “여야 대표 회담부터 하라”는 거다. 이재명 대표가 ‘생중계’를 언급했던 김기현 대표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재명 대표의 ‘생중계’ 언급은 용산이 대통령과의 회담을 거부하는 명분을 만들어 주기 위해 김기현 대표가 나선 데 대한 대응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용산의 시각에서 보면 한동훈 대표가 이재명 대표의 회담 제안을 수용하면서 굳이 ‘합의’를 이루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몰고 가는 것은 나쁘지 않은 행보다. 즉, 여야 대표 회담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결국 용산과 일단 코드를 맞추면서 갈등 관리를 하려는 한동훈 대표의 의도가 반영된 행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셈법이 어쨌든 원론적으로 보면, 국회가 민생에 대한 성과를 내야 할 필요성이 있고 그 연장선에서 여야 회담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각자 입장에 대한 셈법을 논할 때가 아니라 여당이 대통령실과의 협의까지 포함해 회담의 의제를 조율하고 ‘합의’ 도출을 위해 나서야 할 때다. 물론 여야 대표의 정견을 비교해볼 수 있는 공개 토론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건 그것대로 하면 된다. 토론은 토론이고 협상은 협상이다. 두 개를 섞으면 안 된다. 돌발변수 때문에 여야 대표 회담은 연기되었지만, 실효적인 회담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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