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어제 보고를 받지 못했다.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52시간제'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발표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하루 만에 이같이 말했다. 이를 두고 국민 반응에 놀라 책임을 회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14일 윤 대통령이 '주69시간제' 방안에 대해 재검토를 지시했다. 우군이라 여겼던 'MZ노조'가 반발하자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입법예고 8일 만의 '소통' 지시로, 애꿎은 노동부가 유탄을 맞게 됐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주도해 온 윤 대통령이 이제와 남 얘기 하듯 재검토를 지시하느냐는 언론 비판이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CEO)초청 오찬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날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 세대의 의견을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말했다. 

지난 6일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해당 법안은 현재 주52시간제(법정근로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에서 1주일 12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연장근로시간의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연장근로시간 총량을 분배할 수 있도록 해 '주 12시간'이라는 한도를 없애는 것이다. 1주일 최대 80.5시간(7일 근무 기준, 6일 기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해 과로를 강제한다는 비판여론이 들끓었다. SNS상에서는 '기절 시간표'가 등장했다.

윤 대통령의 보완 지시가 있기 전까지 정부와 여당은 제주도 한 달 살기 등 장기간 휴가가 가능해진다거나, 가짜뉴스로 오해가 빚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 여론을 달랬다. 하지만 당장 연차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직장인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가 'MZ노조'라며 때마다 치켜세운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는 "노동조건을 개선해왔던 국제사회 노력에 역행한다"며 개편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의견수렴과 보완을 지시했지만 큰 틀에서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4일 "큰 프레임은 변화가 없다"면서 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전했다. 윤 대통령은 "MZ세대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보고 철저히 이행되도록 할 확고한 정부의 의지가 있다"며 "정부 의지가 명료하게 국민들에게 이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책임은 이정식 노동부 장관을 향하고 있다. 가짜뉴스로 오해를 사고 있다던 여당의 태도는 대통령 보완 지시 하루 만에 사뭇 달라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5일 "69시간은 너무 과도한 시간으로 보인다"면서 이 장관을 향해 "(개편안을)발표하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좀 매끄럽지 못했다.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설명되는 바람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SNS 상에서 회자되고 있는 '기절시간표' 
SNS 상에서 회자되고 있는 '기절시간표' 

윤 대통령이 이미 발표된 노동 정책에 대해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장관은 지난해 6월 23일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주 단위로 관리되는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변경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윤 대통령은 다음날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노동계에선 '주 52시간제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거다'라고 반발하고 있다'는 질문에 "어제 보고를 받지 못한 게 아침에 언론에 나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확인을 해보니까 노동부에서 발표한 게 아니라, 부총리가 노동부에 민간연구회나 조언을 받아 노동시간 유연성에 대해 검토 이야기해보라고 이야기한 상황이다. 아직 정부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주무부처 장관이 직접 발표한 '정부' 발표안을 대통령이 뒤집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신현영 민주당 대변인은 "대통령도 모르는 설익은 정책 발표야말로 국기문란일 것"이라며 "국민 반응에 놀라 서둘러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이동영 정의당 비대위 대변인은 "윤석열 정부의 장관이 공식발표를 했는데, 하루 만에 정부 공식입장이 아니라는 대통령의 말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며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노동정책을 발표한 노동부 장관도 ‘국기문란’이라고 또 말할 건가. 대통령으로서 책임 있는 입장을 밝히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15일 한겨레는 사설 <남 얘기하듯 ‘주 69시간’ 재검토 지시한 윤 대통령>에서 "노동시간 제도 개편은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발언으로 시작해 직접 진두지휘해온 '노동 공약 1호' 정책"이라며 "지금까진 뭣 하다가 마치 남 얘기하듯 재검토를 지시한 모양새부터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보인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분명히 명토 박아 둘 것은, 직접 이해당사자인 노동계 의견 수렴도 없이 상륙작전하듯 제도 개편을 밀어붙여온 그 기조부터 바꾸지 않으면 결코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겨레는 "윤 대통령 지시에 도드라지는 건 엠제트(MZ) 세대를 콕 집은 대목이다. (중략)민주노총은 거세게 몰아붙이면서도, 엠제트 노조에는 허둥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며 "그동안 청년들이 원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개혁'을 추진한다고 주장해놓고 이제야 청년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의견을 듣겠다니 앞뒤가 안 맞는다"고 썼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사설 <‘69시간 노동’ 보완 지시한 윤 대통령, 원점에서 재검토하라>에서 "이번 개편의 본질은 노동자의 선택권·건강권 보장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할 때 몰아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한 데 있다"며 "아무리 사탕발림해봤자, 사용자 이익을 위한 노동시간 연장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둘러대기와 '찔끔 수정'으로는 성난 여론을 달랠 수도, 야당을 설득할 수도 없다"며 "노동시간 단축에 역행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을 해치는 개편안은 백지화돼야 한다. 노동자는 돌리면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일보는 사설 <대통령 한마디에 주69시간제 보완으로 선회한 정부>에서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주69시간제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동안 노동계의 우려와 반발에도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다 돌연 방향을 선회했다"며 "정권이 선호하는 노조 의견은 경청하고 거대 노조의 우려는 묵살하는 듯한 자세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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