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대해 노동자 건강권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찬성하는 언론도 일방적 정책 추진을 우려하고 있다. 대부분이 노동관계법 개정 사항이다.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장관 이정식) 의뢰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검토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현행 1주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고 ▲근무일 사이 '11시간 연속휴식' ▲휴일·야간 근로를 임금이 아닌 휴가로 보상받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를 도입하는 안을 12일 발표했다.  

현행 '주 52시간제'는 1주일 기본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를 최대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예를 들어 4주 기준 208시간 노동을 하려면 매주 52시간 일해야 한다. 그러나 권고안은 1주일 단위가 아니라 월이나 분기 등 긴 시간 단위로 노동시간을 계산한다. 즉 1~3주차까지는 69시간까지 일하고 마지막 주에는 1시간만 일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권고안은 분기 이상으로 단위 기간을 확대할 시 연장근로시간 총량을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분기(3개월) 단위로 노동시간을 관리할 경우 총 연장근로시간은 기존의 90% 수준인 140시간으로 설정된다. 반기 단위는 80%(250시간), 연 단위는 70%(440시간)가 적용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월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노동부는 지난 9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정식 장관이 주한유럽상공회의소로부터 프랑스·독일·영국 등 유럽 주요국이 실시 중인 연장근로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유럽 주요국들은 대체로 우리나라처럼 총량 단위로 근로시간을 규제하고 있으나 우리와 같은 ‘주 단위’ 규제 방식이 아닌 더 긴 기간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노사가 단체협약, 종업원대표 협의 등 합의를 통해 유연하게 노동시간 제도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13일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은 장시간 노동에 따른 노동자의 건강권 훼손을 우려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주 52시간’ 허물겠다는 정부, 노동자 건강권 안중에 없나>에서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내건 개편안은 노동자 건강권을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며 "그야말로 양두구육"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노동시간을 노사 합의로 정하면 된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 ▲'주 52시간제' 도입 후 노조 사업장 10곳 중 4곳 꼴로 장시간 노동 ▲노조 조직률 14% ▲30인 이상 사업체의 '근로자 대표' 제도 미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 이어 경향신문은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가 '무임금 노동'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며 '11시간 연속휴식권'은 연차휴가도 소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빛 좋은 개살구'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국제노동기구(ILO)는 주 48시간 이상이면 장시간 노동으로 본다.(중략)최근 골드만삭스는 저출생·고령화로 2050년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5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전망했다"며 "‘일 시키기 좋은 나라’ 만들려다 ‘미래 없는 나라’ 만들 참인가"라고 정부를 질타했다.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왼쪽 두 번째)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왼쪽 두 번째)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겨레는 사설 <기울어진 노사관계 외면한 노동시간 유연화, 위험하다>에서 "노동시간 총량이 같더라도 특정 시기에 몰아서 일을 하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며 "노동부 고시는 뇌·심혈관계 질환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시간이 발병 전 12주간의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한 경우 ‘단기 과로’로 분류해 질병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한국처럼 노사관계가 사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노사 합의는 허울에 그칠 공산이 크다.(중략)사용자 뜻대로 '노동시간 선택권'이 오남용될 우려가 크다는 얘기"라며 "지난해 한국의 노동시간은 1915시간에 이르지만, 독일은 1349시간, 프랑스는 1490시간에 불과하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99시간이나 길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주52시간·임금체계 개편…일방통행은 안 된다>에서 "정부는 권고안을 바탕으로 '노동개혁안'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관건은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느냐"라며 "국제기준으로 여전히 근로시간이 긴 상황에서 급격한 노동시간 유연화가 야기할 건강권 훼손 우려나, 미비한 사회안전망 때문에 발전한 연공형 임금체계를 무작정 손봐서는 안 된다는 노동계의 주장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노동시장 변화에 따른 제도개선 요구와 이해당사자인 노동계의 반발 사이에서 정부가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가 필수"라며 "그런 점에서 최근 화물연대 파업 사태에서 드러난 윤석열 정부의 노동계에 대한 적대적이고 강경한 태도는 우려스럽다.(중략)윤석열 대통령은 색깔론을 펴는 인사를 사회적 대화기구의 수장에 앉히거나 노동계를 폄훼하는 이에게 중앙노동위원회를 맡기면서 노동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고 썼다. 

노동시간 유연화에 찬성하는 언론에서도 사회적 대화 없는 일방적 정책 추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신문은 사설 <근로시간 유연화 마땅하나 부작용도 살피길>에서 "코로나19를 계기로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제도가 확산되고, 주 4일제를 넘어 주 3일제 같은 파격적인 근무 실험이 이뤄지는 격변의 시기에 과거의 노동집약적인 산업화 시대에 맞춘 제도를 고수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면서 "주 52시간제 개편을 악용해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시키거나 근로자의 건강을 도외시하는 행위 등 부작용에 대해선 철저하게 감독하고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일보는 사설 <노동개혁 권고안 공개… 사회적 공감 속에 추진해야>에서 "노동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관련 제도를 그에 걸맞게 개혁하자는 필요성에는 국민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면서 "노사의 자율적 선택권 확대를 통해 일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이나 장시간 노동과 건강 악화를 초래할 수 있어 적절한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 유연근로 제도 개편 등 핵심 권고 사항은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야당의 협조도 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정부자문硏 노동개혁 권고… 입법 비전 없인 희망고문일 뿐>에서 "문제는 개혁을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등 다수의 노동관계법을 고쳐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계와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갈등만 키우고, 개혁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개혁안 마련보다 중요한 건 개혁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기사 <주 52시간제 유연화…1년 단위도 허용 추진>에서 "관건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다. 특히 노동계 반발을 넘어야 한다"며 한국노총·민주노총의 비판을 전했다. 

지난 달 24일 민주노총,한국노총 관계자들이 노동시간 제도 및 윤석열 정부 정책 인식조사 발표 관련 양대노총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달 24일 민주노총,한국노총 관계자들이 노동시간 제도 및 윤석열 정부 정책 인식조사 발표 관련 양대노총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양대노총이 발표한 '노동시간 제도 및 윤석열 정부 정책에 대한 노동자 인식 실태조사' 결과, 노동자  88.1%는 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해 '집중·압축 노동으로 건강권을 위협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1주'에서 '월 이상'으로 바꾸는 데 대해 노동자 89.5%는 '집중노동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 86.4%는 '업무량이 많은 주에 집중 노동을 했더라도, 다른 주에 그만큼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에 대해서는 노동자 92.4%가 '정작 쉬어야 할 때 또 다른 업무로 저축한 연장근무 시간을 휴가로 사용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 4월 후보자 시절 '주 52시간제 안착'을 강조했다. 이 장관은 "현실적으로 노동시간을 여야 합의로 개정을 했고 정착 내지는 안정화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여소야대 국회도 법 개정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이고 우선 중요한 것은 안착을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노총 사무총장 출신으로 주5일제를 도입하기 위한 노사정 대화에 관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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