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은 “미조직 근로자들의 경우 노동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도 하소연 할 곳조차 찾기 어려워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노동약자들을 보호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노동약자법’ 제정을 지시했다.

노동약자는 기존의 노동법 체계에서 보호 받을 수 없었던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과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직(특고),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이 법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는 6월 말 ‘노동약자 정책 전문가 자문단’을 발족하고 ‘지역순회 원탁회의’를 여는 등 본격적인 법 제정 작업에 들어갔다. 

노동약자 자문단 단장을 맡고 있는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8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공제회 등 상호 부조 활성화 지원 ▲표준계약서 제공 및 임금체불 등 법적 분쟁 조정 지원 ▲노동의 사회적 경력 인증제도 도입 등을 제안했다. 

12일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은 '노동약자 원탁회의' 중간결과를 발표했는데, 원탁회의에 참여한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들은 업종별 표준계약서 마련과 프리랜서 경력관리 시스템, 플랫폼 종사자 휴게실 마련을 요구했다.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들은 연장수당 미지급 문제 해결, 육아휴직 사용 활성화,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해소를 요구했으며 기간제·파견 업종은 정부의 사업주 감독 강화와 비정규직 복지 차별 해소를 건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갈수록 심화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해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며 ‘노동대전환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양대노총은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게 우선”이라며 노조를 일종의 특권처럼 보이도록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현장’을 주제로 열린 스물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현장’을 주제로 열린 스물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모순적 ‘노동개혁’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겉으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매일경제는 9월 4일 사설 <노동약자 지원법 추진하는 與, 노동개혁 본질도 잊지 말아야>에서 “노동개혁이 노동약자 지원법보다 후순위로 밀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동개혁의 본질적 과제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근로시간·임금체계 유연화, 중장년 계속 고용 등을 제안했다. 매일경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은 저출생의 근본 원인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해소 등 구조개혁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와 근로시간·임금체계 유연화는 서로 모순적이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해소는 대기업의 약탈적 이익 독점구조 해소없이는 불가능한다. 

청년들이 ‘그냥 쉬는’ 이유

통계청 경제활동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 7월 청년(15~29세) 취업자 중 쉬었음 인구 44만 3000명 가운데 74.6%인 33만 명이 이전에 일을 해본 경험이 있었으며, 나머지 25.4%는 일경험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쉬었음 인구란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막연히 쉬고 싶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중에서도 1년 이내에 일을 그만둔 20만 4000명의 93.7%는 종사자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근무했으며 이들이 종사한 업종으로는 숙박·음식점업이 21.5%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제조업, 도소매업, 사업시설관리업, 건설업 순이다. 

특히 근로기준법 미적용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해 본 ‘쉬었음 청년’은 28.8%(5만 9000명)를 차지했다. 반면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쉬었음 청년’은 6.3%(1만 3000명)에 불과했다. 7월 기준 청년 취업자의 12.2%가 대기업 근로자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적은 비중이다. 

‘쉬었음 청년’이 중소기업을 다니다 그만둔 이유는 ‘개인·가족 관련’ 사유를 제외하면 ‘시간·보수 등 작업여건 불만족’이 35.8%로 가장 컸으며, 뒤이어 ‘임시·계절적 일의 완료’, ‘정리해고’, ‘직장 휴폐업‘, ‘일거리가 없어서 또는 사업 부진’ 순이다. 중앙일보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로 환경(저임금, 장시간 노동, 고용 불안, 위함한 작업 환경)이 청년 상당수를 '쉬었음 인구'로 전환시켰다고 분석했다.  

중앙일보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면서 이같은 현상이 지속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사업체 임금인상 특징 분석’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체 대비 300인 미만 사업체 임금은 코로나 당시인 2020년 64.2에서 지난해 61.7로 더욱 감소했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보수만 작은 게 아니라 복지, 근무여건, 문화까지 차이가 크다 보니 청년들의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가 심화되는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기업·고소득층에 세금 혜택 몰아주는 정부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조세지출예산서’를 보면, 정부는 2025년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대한 조세지출 증가율이 4조 9364억원으로, 2023년과 비교해 12.7% 늘어났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에 대한 조세지출 증가율이 4.7%인 것과 비교하면 약 3배 큰 규모다. 조세지출은 세금을 면제하거나(비과세) 깎아주는(감면) 방식 등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것으로 흔히 ‘숨은 보조금’으로 불린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조세지출이 6.2% 늘어날 때, 대기업에 대한 조세지출은 38.1% 줄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중소기업 조세지출 증가율(9.4%)이 대기업(1.3%)을 큰 폭으로 웃돌았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통합투자세액공제 혜택의 56.8%가 대기업에 돌아갔는데, 이는 중소기업(26.8%)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정부는 통합투자세액공제의 증가분(직전 3개년 평균 투자액을 초과하는 부분) 공제율을 10%로 일괄 상향하기로 했다.(현재는 국가전략기술은 4%, 일반 및 신성장·원천기술은 3%를 적용).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등 그동안 중소·중견기업만 누렸던 혜택이 대기업까지 확대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조세감면 효과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 정부에서 조세지출 규모가 큰 사업 중 상당수가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대기업, 청년 고용 갈수록 줄여

최근 주요 대기업들의 20대 이하 직원 비중은 검소한 반면, 50세 이상의 비중은 계속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123개사의 임직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해당 기업들의 전체 임직원 141만7401명 중 20대 이하 직원은 30만 6731명으로 2021년에 비해 1만 5844명 줄었다. 2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도 21.6%로 2021년(23.4%) 대비 1.8%포인트 줄었다. 

특히 삼성전자의 20대 이하 직원은 지난해 7만 2525명으로 2년 전보다 1만7372명(19%) 줄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33.7%에서 27.1%로 6.6%포인트 하락했다. LG디스플레이도 같은 기간 20대 이하 직원 18%가 줄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3월 100개 대기업을 분석한 결과 정기 공채 비율은 2019년 39.9%에서 2023년 35.8%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수시 채용 비율은 45.6%에서 48.3%로 늘었으며, 또 채용 인원 중 고졸·대졸 등 신입 직원 비율은 2019년 47%에서 지난해 40.3%로 급감했다. 

우리나라 만 20~34세 청년들이 대학 등 최종 학력을 마치고 첫 직장을 얻기까지 걸린 기간이 올 들어 1년 2개월에 달해 역대 최장 기간을 기록했다. 졸업한 지 1년을 지나서도 여전히 취업 준비에 매달리는 취업 장수생은 10명 중 3명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34세 취업 유경험자 가운데 졸업 후 바로 취업하거나 1년 이내 취업은 67.8%였고, 1년 이상 걸린 삼수(三修) 이상 취업 장수생은 32.2%에 달했다. 첫 직장도 시간제나 임시직인 경우가 많았다. 평균 14개월 만에 겨우 얻었다는 첫 직장 가운데 18.9%는 일주일에 일하는 시간이 36시간 미만인 시간제 근로자였는데, 이 비율은 2017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았다. 계약 기간이 1년 이하인 임시직 비율도 28.3%로 역대 최대였다. 시간제와 임시직 비율이 높기 때문에 첫 직장 월급이 200만 원도 안 되는 경우가 전체 취업 유경험자의 58.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라진 낙수 효과

내수 부진이 길어지면서 중소기업은 재고가 늘고, 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대기업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으며 정부의 감세 혜택도 대기업에만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0원 이하’를 신고한 무실적·결손 중소기업은 40만 1793개로 처음 40만 개를 넘었다. 전체 중소기업(96만 4736개)의 41.6%로, 10곳 중 4곳 이상이 이익을 못 낸 것이다.

반면 대기업 생산지수는 1∼7월 평균 113.7로 전년(100.7)보다 6.8% 늘었다. 대기업 재고지수는 114.9로 전년(123.6)보다 7.0% 줄어들고 출하지수는 1.0% 증가했다. 이는 소수 대기업이 독점하는 반도체 산업만 ‘나 홀로 성장’한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내수와 직결된 서비스업 상황도 기업 규모별로 격차가 뚜렷하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중소기업 서비스 생산지수는 110.8로 전년(110.4)보다 0.4%p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대기업 서비스 생산지수는 115.0에서 118.4로 3%p 증가했다.

당초 정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투자가 늘어나면 중소기업에도 혜택이 돌아갈 것(낙수효과)으로 기대하고 법인세 인하 등 대기업의 세 부담을 완화했다. 그러나 반도체 대기업의 실적 호조에도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도 반도체 중심의 대기업 투자 지원을 강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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