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여당 인사가 모인 자리에서 관료주의·전문직주의에 빠지지 말고 국민의 어려움에 공감할 때 국민통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윤 대통령은 '국민의 뜻은 늘 옳다'며 '반성'을 거론했다. 

그러나 만 5세 입학, 주69시간제 도입, 입시제도 개편, R&D(연구·개발) 예산 대폭 삭감 등의 논란은 윤 대통령과 무관하지 않다. 보수언론에서도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관료주의·전문직주의가 설 땅이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17일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국민의힘 지도부, 주요 정부부처 장관, 대통령실 참모 등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당·정·대 고위 인사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윤 대통령은 "국민통합은 전문성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어려움을 우리가 공감해야 한다"며 "수십 년 관료 생활을 한 내가 더 전문가니까 '외부에서 가타부타 안 해도 내가 다 안다',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국민통합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통합위에서 제시한 정책 제안보다 더 나은 정책 방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국민통합위가)'이런 것이 정말 문제구나' 아젠다를 뽑은 것에 대해 우리가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자세로 내각과 당이 움직여 나가는 것이 통합의 밑거름 아닌가 생각한다"며 "국민통합위에서 내놓은 다양한 정책 제언들을 당과 내각에서 관심 있게, 꼼꼼하게 읽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라고 하지만 어려운 분들이 많다"며 "우리가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이라고 얘기도 하지만 꼭 경제적인 게 아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정상적인 사회생활, 행복한 삶을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이 많다"고 했다.    

이어 "국민통합위 정책 제언들은 저에게 많은 통찰을 줬다고 확신한다"며 "다만 그것이 얼마나 많은 정책집행으로 이어졌는지는 저와 우리 내각에서 좀 많이 돌이켜보고 반성도 많이 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통합위가 제작한 1주년 성과보고서 100부를 국무위원과 국민의힘에 배포하고, 이를 적극 반영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보도에 따르면, 국민통합위는 올여름 비공개로 1주년 보고서를 배포했다. 보고서에 통합위원들이 현장을 돌며 생각해 낸 정책들 다수와 방대한 근거자료들이 담겨 있다고 한다. 국민통합위는 정책제안 보고서의 성격상, 언론에 공개될 경우 정책이 확정된 것처럼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비공개로 발간했다고 설명했다. 

이 중 발표·제안된 것은 ▲자살예방 ▲유해 미디어환경 개선 ▲자립준비청년 지원 강화 ▲서민 상대 사기근절 차단 방안 ▲이주민·취약계층·청년에 대한 인식 개선 ▲건전한 정치 팬덤 문화 등이라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만찬에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만찬에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난맥상은 대통령과 대통령실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초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임명했다. 박 교수와 관련해 만취 음주운전 선고유예 논란, 논문 중복게재를 통한 성과 부풀리기 의혹 등이 불거졌으나 윤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박 장관이 35일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만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 소동'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이 박 장관에게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한 정책이었지만 보수·진보, 교원단체, 학부모, 학생을 막론하고 비판이 쏟아졌다. ▲아이들의 인지·정서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입시경쟁과 사교육 시기를 앞당긴다 ▲교사수급·교실확충에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입시·취업에서 이해관계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박 장관은 자진사퇴했지만 세간에서는 '경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야당은 '대통령의 책임 회피'라고 지적했다. 

'주69시간제 도입'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냈다. 노동부 장관이 직접 브리핑한 '주69시간제' 정부안을 윤 대통령은 돌연 "아직 정부 공식발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후 장시간 노동에 대한 비판이 직장인들 중심으로 터져나왔다. 윤 대통령은 "주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라며 정책보완을 지시했다. 다시 대통령실이 주60시간 이상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가, 윤 대통령이 또 "주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정책혼선이 가중됐다. 다른 한편에서는 '주60시간은 어떤 근거로 제시된 기준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입시제도 개편은 윤 대통령이 '킬러문항 배제'와 '사교육 카르텔'을 거론하자 추진됐다. 윤 대통령의 '킬러문항' 발언은 수능 5개월을 앞둔 시점에 교육현장의 일대 혼란을 불러왔지만 사실관계가 맞지 않고, 사교육 수요를 오히려 키울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교육부가 발표한 '킬러문항'에 EBS 교재와 연계된 문항이 포함돼 있었고, 대통령실이 문제로 지적한 6월 모의고사 국어영역은 예년보다 쉬웠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고점(만점)을 받은 사람이 지난해 수능보다 4배 이상 늘었다. 수능 방향을 급격하게 전환하면 학부모의 불안을 키워 사교육 수요를 더 키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학원가의 이른바 '준킬러 문항' 설명회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붐볐다. 

'대통령이 화를 내면 정책 부서 책임자가 옷을 벗는 일이 반복된다'는 보수언론의 지적도 있었다. '킬러문항' 논란으로 교육부 대학 입시 담당 국장과 교육평가원장이 교체됐다. 당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윤 대통령을 '수능 전문가'로 치켜 세우며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입시 관련 수사를 한 경험이 있다. 입시에 대해 수도 없이 연구하고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저도 전문가지만 (대통령에게)제가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8 대입제도 개편 시안'은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 윤석열 정부가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정책을 내놓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줄 세우기'식 입시제도로 적성에 맞게 수업을 골라들을 수 있도록 하는 '고교학점제' 도입 방침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내년도 R&D 예산은 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대폭 삭감됐다는 게 중론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예산안이 물거품이 됐다. 이후 편성된 내년도 R&D 예산안은 올해보다 16.6%(5조 2천억 원)가 줄어든 25조 9천억원으로 책정됐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 강훈식 의원에 따르면 1620개 R&D 사업의 67%에 해당하는 1076개 R&D 사업 예산이 감액됐으며 총 삭감액 규모는 6조 5천억 원에 달한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에서 '청년 과학자부터 잘린다', '대통령 카르텔 발언 이후 두 달 만에 예산안 조정이 이뤄져 정치적이라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들은 지난달 한국을 방문해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석학들 사이에서 "과학적 결과물이 나오는 주기와 선거의 주기는 다르다"는 비판이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정감사 과정에서 국회에 윤 대통령 발언 전 편성한 R&D 예산안을 제출하지도, '카르텔'로 지목된 R&D 사업을 제시하지도 못해 여야 모두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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