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TBS 민영화 추진 사태에 대한 언론계·학계의 선택적 태도가 논의에 부쳐졌다. '정치적 공정성'이라는 잣대로 공영미디어의 문을 닫겠다는 발상은 정치권력의 외압이며 논리적·학술적 근거가 없으나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 중 하나로 주류언론의 '패권적 저널리즘'이 거론됐다. 주류 언론이 향유하는 특정 저널리즘이 다른 종류의 저널리즘을 공론장에서 축출·배제한다는 것이다.

'내용' 이유로 공영미디어를 민영화한다는 발상
27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한 '공영미디어, 권력에 의해 닫힐 것인가 시민을 향해 더 열 것인가' 긴급세미나에서 이정훈 신한대 교수는 "동료학자분들을 대상으로 정색하고 교과서에서나 할 얘기를 하게될 줄 몰랐다. 내용이 문제여서 언론사를 없앤다는 발상 자체는 있을 수 없는 얘기"라며 "내용이 문제라면 제도적·행정적 절차로 따지면 된다. 최근 TBS 사태를 접하고 가장 충격받은 것은 학자들조차 이런 생각을 심각하지 않게 내뱉는다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언론의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등 현행법상 절차를 따라야 할 문제이지 언론사 존폐 여부를 따져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시장에서 시청자·독자로부터 선택받지 못해 퇴출되거나 벌점이 쌓여서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프로그램 내용이 문제이니 그 언론사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공정성'이 언론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정성은 언론의 내용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적합하지 않고, 더구나 언론사의 존폐를 결정할 정도로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은 더욱 될 수 없다"면서 '공정성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며 누구의 입장에서 공정할 것인가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언론학자 메릴의 주장을 인용했다.
그는 "기자의 입장, 언론사의 사시나 논조, 국민여론 등이 공정성의 기준이 될 수 있는데 문제는 어느 것이 우월하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더 큰 문제는 공정성을 언론의 품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강조한다면 언론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이다. 좋은 보도보다 어떤 정파로부터도 욕먹지 않을 적당한 보도, 질적으로 낮은 보도를 하게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언론중재법 개정 국면에서 다수의 언론사와 학자가 언론자유 침해를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보탰던 얼마 전 상황을 거론하며 "이 상황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저는 당시 그분들의 입장과 우려에 대해 부분적으로 동의했다. 언론중재법이 언론자유를 일부라도 위축시킬 수 있다면 그 부분을 강조해 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정치권력이 노골적으로 언론사를 탄압하고, 언론자유를 말살하는 바로 이 순간 모두가 조용하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은 "현 여당은 야당 시절부터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뉴스공장'에 대한 정치인들의 반응보다 보도가 더 흥미롭다"며 "'뉴스공장'이 정치인의 입에 오르내릴 때, 정치권력이 언론사인 TBS를 탄압할 때도 해석·분석·비판없이 정치인의 언표를 따옴표로 전달할 뿐이다. 언론탄압이 작든 크든 그 대상이 언론사이고, 그러니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했다면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은 최근 TBS 사태의 출구전략 중 하나로 '뉴스공장' 폐지와 이강택 대표 사퇴를 제시한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 TBS 양대노조(TBS노동조합·언론노조 TBS지부) 등에 대해서도 유감을 나타냈다. 언론노조는 TBS 경영진에 '정치적 독립을 위한 혁신안'으로 지역저널리즘 구현을 위해 시사교양프로그램을 전면 검토하고, 그 결과 '뉴스공장' 폐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TBS 양대노조는 이강택 대표의 리더십을 '불신·불통·무책임'의 리더십으로 규정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정 위원은 "TBS 정도를 내어주고 큰 것(KBS·MBC 등)을 지키자? 어차피 미우니까 모르는 척 하자? 이해가 안 간다"며 "이 사안은 '뉴스공장'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나쁜 프로그램을 없애자는 식의 논리는 현재 자행되고 있는 언론탄압의 목적과 취지, 즉 '뉴스공장'도 없애고 대표도 갈아치우고 TBS를 정치도구화하는 데 부합하는 결과를 도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민주주의에 TBS '뉴스공장'이 더 유해한가,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의 개입이 더 유해한가. 당연히 후자"라며 언론계·학계 등이 '양비론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개입을 시도하는 권력도 문제지만, 개입을 불러온 정치적 편향도 문제'라는 시각은 TBS 민영화 사태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지난해 언론중재법 논의에서 '자유주의' 이름으로 연대한 이들이 지금은 공정성 문제가 있는 언론은 자유를 침해받아도 된다는 데 암묵적으로 연대하고 있다"면서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고, TBS 노조와 언론노조는 양비론을 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뉴스공장'이 쪽팔린데, 사장하고 김어준 목을 갖다 바치면 우리는 깨끗해지니까 TBS는 남기라는 것인가"라며 "여기에 언론노조의 핵심축은 주요 지상파 공영방송사다. TBS의 문제는 조금 있으면 KBS·MBC의 문제가 되는데, TBS라는 창피한 목을 넘겨줄 테니 우리는 살려달라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공정성 개념은 공영방송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공영방송을 평가하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기준이 시각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는 '편향'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며 "지금 우리가 해야할 것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으로 입길에 오르면, 즉 공영방송의 기능 수행 평가를 특정 정파가 진영화하는 데 성공할 경우 다른 모든 성취는 가치가 0에 수렴하고 마는 '사또 판결'에 문제제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권적 저널리즘'이 작동하고 있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공정성' 잣대의 부정확성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패권적 저널리즘', 즉 언론 권력을 꼽았다. 채 교수는 "예를 들면 공론장에서 '뉴스공장'은 퇴출되어야 할 저널리즘이지만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여타의 시사보도 프로그램들은 공정한 저널리즘 실천의 경계안에서 수용될 수 있는 것으로 판정된다"면서 "대선 기간동안 매우 적극적이며 명확하게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거부하더라도 어떤 저널리즘은 공론장에서 수용되지만 반패권적 저널리즘은 응징되고 배제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공론장에서 보이는 정치적 편향성이라는 논쟁 과정은 패권적 저널리즘의 쟁투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저널리즘을 중심으로 한 헤게모니적 쟁투 과정은 새로운 언론 권력이 시민들의 공론 공간에서 권력 형성의 조짐을 보일 때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면서 "패권적 저널리즘은 그들이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저널리즘 이외의 저널리즘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라고 짚었다. 채 교수는 대표적 사례로 ▲2000년대 초 '시민 저널리즘'을 주창한 오마이뉴스에 대한 주류 언론의 비판('언론인가 사유물인가', '사이버 홍보 기관지' 등) ▲미네르바 사건 등을 꼽았다.
채 교수는 "헤게모니적 저널리즘에 반하는 저널리즘 실천을 소멸시키려는 권력을 통해 공론장의 '단일성'을 재생산하는 구조는 한국 사회 공론장과 민주주의에 즉각적인 위협"이라며 "패권적 저널리즘은 언론 표현의 자유를 불공평하게 배분하는 권력을 가졌다. TBS 문제는 정치 편향성의 문제로 논의할 게 아니라 반패권적 시민 저널리즘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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