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로드 하도급업체들이 직장을 폐쇄한지 한 달이 돼 간다. 직장을 잃은 케이블 기사들은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티브로드 사무실 앞 보도블록에서 보름째 노숙농성 중이다. 그런데 <미디어스>가 14일 밤부터 15일 새벽까지 농성장에서 만난 기사들은 대부분 웃고 있었다. “아내가 이기기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 했다”는 50대 가장부터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는 말을 이제야 실감한다”는 20대 청년까지 티브로드 간접고용노동자들은 싸움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4일 이들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창립 1년을 맞아 보낸 떡으로 허기를 달랬고, 새벽까지 도란도란 모여 이야기를 풀어낸 뒤에야 거리에 누웠다.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이영진 수석부지부장은 지난해 노동조합 결성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큐릭스가 티브로드로 넘어갈 때 정말 기뻤다. ‘대기업 직원이 되는 구나’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티브로드 직원이 아닌 걸 몇 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노조를 만들 당시 같은 팀에 50대 형님과 들어온 지 3년차 후배가 있었다. 월급은 120~130만 원이었다. 3년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죽어라 일한 후배는 중국집 배달 월급보다 적었다. 센터장에게 10만 원이라도 올려달랬지만 안 된다고 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 각 센터를 돌며 노조를 해보자고 했다. 우린 그 동안 너무 당했다.”

이날 농성장에서 만난 막내 조합원 강용진(25)씨는 2008년 1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티브로드 안양중앙기술센터에 입사해 일했다. 강씨는 몇 달 동안 선배들을 따라 다니며 일을 배웠고, 2010년 1월 군에 입대해 2011년 11월 전역한 뒤에도 곧장 티브로드에 재입사했다. 그리고 2013년 3월 생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그해 가을 점거농성에 참여했다. 입대 전 110~120만 원이던 월급은 지금 200만 원이 됐다. 그는 “회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영업목표를 못 채우면 밤 10시까지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사유서를 썼다”며 “이제 그때로 되돌아갈 수 없다. 이겨야 끝나는 싸움이 됐다. 우리는 노숙이 즐겁다”고 말했다.

▲ 14일 밤부터 15일 새벽 사이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 만난 안양중앙기술센터 막내기사 강용진(25)씨. 강씨는 사진을 찍자는 기자 앞에서 ‘팔뚝질’ 포즈를 취했다. (사진=미디어스)

미디어스) 언제부터 일했나.

19살, 2008년 12월 입사했다. 안양평촌공고 3학년 2학기 말에 안양방송이란 곳에서 취업공고가 내려왔다. 면접을 보고 입사했다.

미디어스) 처음에는 무슨 일을 했나.

형님들에게 설치, AS 일을 배웠다. 특히 고객을 응대하는 법을 배웠다. 몇 달 뒤 차를 배정받아 혼자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영진 수석부지부장은 케이블 기사들의 고객응대는 다른 서비스와 많이 다르다고 했다. 십여 년 전 시작한 케이블 기사들에게는 ‘자기지역, 자기고객’이 있지만 2009년 출범한 IPTV도 그렇고, 지금 방송통신업계 기사들은 ‘경쟁’ 매뉴얼대로 고객을 응대한다고 말했다. 해피콜 평가에 따라 페널티가 있기 때문에 대화 없이 로봇처럼 읊는다고 한다. 친분이 있는 고객이 있을 수 없는 환경이다. 이영진 부지부장이 말하는 ‘케이블 설치 가이드’는 “(초인종 누르며) 케이블이요.” “어머니, TV 어디 있어요? 이게 잘 안 나와요?” “무슨 프로그램 보시려고 케이블 다시는 거에요?”부터 시작한다.)

미디어스) 군대는 언제 다녀왔나.

1년 정도 일하다 갔다. 일이 숙달되고 내 구역을 꾸릴 수 있을 때쯤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 (웃음) 2010년 1월 군대에 갔고 2011년 11월 전역했다. 그리고 전역과 동시에 12월 재입사했다.

미디어스) 군대에 있을 때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나. 재입사한 계기가 있다면.

사실 중학교 때부터 기계를 만지고 IT에 관심이 많았다. 이게 회사를 들어간 이유다. 군 생활하면서 많이 생각했는데 나는 사무직보다 기술 쪽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미디어스) 초기 처우와 노동조건은 어땠나.

2009년만 하더라도 영업과 기술을 통합적으로 했다. 만약 영업목표를 못 채우면 밤 9~10시까지 남아 노력하곤 했다. 목표를 채우고 또 채울 때까지 사무실에서,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많았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반복됐다. 일하고 들어오면 센터에서는 “영업 얼마나 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왜 영업을 못했는지 사유서를 썼고, 앞으로 영업계획을 보고서로 올렸다.

미디어스) 월급은 어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받은 월급이 110만 원에서 120만 원 사이였다. 군대를 전역한 뒤 재입사해서는 150만 원 정도를 받았다. 노조가 생긴 뒤에야 50만 원 가까이 올랐다. 지금은 월급 200만 원 정도다.

▲ 15일 새벽 2시께 서울 광화문 티브로드 농성장 모습. (사진=미디어스)

미디어스) 군대에 다녀온 뒤 재입사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재입사했을 때는 노동조합이 없었다. 1년 정도 뒤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기술지회에서 가입하라고 했다. 2013년 중순이었다. 그때 책자를 나눠줬는데 한 번 읽어봤다. 다른 센터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알았다. ‘그 동안 원청이 내려주는 일을 곧이곧대로 하면서 노동자 권리를 못 받았구나, 이렇게 일할 수는 없겠다’고.

미디어스) 노동조합에 들어가니 어땠나.

사실 처음에는 노조가 뭔지도 몰랐다. 노동조합에 들어가서 많은 것을 배웠다.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파업을 하고 집회를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당 김일웅 서울시당 위원장 등 연대하러 온 분들 말씀을 들으면서도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됐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할 때는 모르던 내용이었다.

미디어스) 지난해 티브로드 광화문 사무실을 점거했다. 처음으로 노조 가입하고 투쟁한 건에 두렵지는 않았나.

그때는 원청에 “노동조합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새벽에 계획이 나와서 7층 사무실에 올라갔다. 무작정 올라갔었는데 가장 어려웠던 게 배고픔이었다. 미안하지만 그때 사무실에 있던 컵라면과 물을 많이 먹었다. 당시 우리는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지만 승리해서 내려가자’는 마음이었다. 대오가 많았고, 결국 승리해서 내려갔다. 점거 하루 만에 이겼다. 파업에 점거까지 38일 동안 느낀 것은 ‘우리가 다시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노조를 만들고, 우리 요구를 외칠 수 있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꼈다. 이 업계에서 이렇게 싸운 것, 원청을 상대로 이렇게 싸운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는 점에서 특히 자부심이 있었다.

▲ 15일 새벽 2시께 서울 광화문 티브로드 농성장. 이 시각에도 깨어 있는 노동자들이 여럿 있었다. (사진=미디어스)

미디어스) 1년도 안 돼 지난해 첫 파업에 들어갔다. 어떤가.

파업은 딱딱하게 할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이번 파업을 즐기고 있다. 예를 들면 노래도 하고, 연대온 분들과 이야기도 하고, 때론 약주도 한다.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다. 파업을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각 지역에 있는 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산 천안 아산 전주, 지역의 색과 가치관이 있다. 동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미디어스) 과거에는 다른 지역 동료들을 만나지 못했던 건가.

만날 수 없었다. 본사(원청 티브로드)에서 일 년에 한두 번 각 센터 조합원을 모아놓고 기술과 영업을 교육했다.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이것뿐이었다. 기술교육을 가봤자 노상 하는 일이 글로 적혀 있는 것뿐이었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난 태어나서 부산에 간 적이 없는데 투쟁하면서 처음 가봤다. 부산 조합원들의 말투와 행동, 추구하는 가치관을 알게 됐다. 재밌다.

(케이블 기사들은 보통 해마다 본사가 기획, 시행하는 교육을 받는다. 이영진 수석부지부장에 따르면 티브로드 경력기사는 보통 2박3일에서 3박4일, 신입은 4박5일에서 5박6일 동안 대전에 있는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는다. 이 부지부장은 “교육기간에는 밤까지 일정이 꽉 차 있다. 강사가 몇 명 있는데 대부분 원청 매니저들이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최근 나랏돈으로 하도급업체 교육을 시킨 대기업들이 적발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실에서는 통신업계에서도 이 같은 일이 있었는지 추적 중이다.)

미디어스) 노숙농성이 길어지면서 가족과 친구들이 걱정할 것 같은데 반응은 어떤가.

사실 부모님이 안 계신다. 누나가 있다. 누나가 이런 말을 했다. “언제 끝날 것 같나?” “이길 수는 있을 것 같나?” 난 물어볼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이길 때 끝난다”고. 지난해부터 이 생각이 못 박혀 있다. 언제까지 투쟁할 것인지, 그런 것은 없다. 친구들도 “열심히 하라”고 한다. 친구들 중에서 이렇게 사회의 연대를 받으면서 투쟁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친구들과 모일 때 이런 얘기를 한다. “너희가 정규직이 될지 비정규직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비정규직으로 싸우고 있다. 내가 먼저 싸워서 이기고, 너희가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알려주겠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응을 보면 좀 차이가 있긴 있다. 그럴 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느낀다. 참, 가장 걱정인 건 집에 있는 강아지다. (웃음) 24시간 혼자 있는 경우가 있는데 걱정이다. 그것 말고 걱정되는 것 없다.

▲ 농성장에 걸린 정당, 시민사회단체 플래카드들. 이날 농성장에는 노동당 서울시당 김일웅 위원장(케이블공대위 공동대표, 티브로드지부 명예조합원)이 함께 했다. (사진=미디어스)

미디어스) 티브로드지부의 강점은 ‘기술자’ 팀장급들이 많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는 비조합원과 대체인력들의 반응은 어떤가.

타격이 크다. 우리는 하루 20~30건을 해왔다. 우리가 한 순간에 빠졌고, 비조합원에게 일이 배로 몰렸다. 온종일 주구장창, 휴일에도 못 쉬고 일만 하게 된다. 회사에 타격이 심할 거라 생각한다. 대체인력에게는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지. 우리는 자부심이 있다. 각자 맡은 지역이 있고, 고객을 상대하면서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일한다. 대체인력들은 돈(일당 20~25만 원)은 많이 받겠지만 회사가 지시하는 일만 할 것이다.

미디어스) 파업이 길어지고 있다. 지금 행복한가.

전국에 있는 조합원들을 만나 기쁘다. 나는 여기서 율동패를 한다. 물론 우리가 파업을 해서 고객들이 느끼는 불편함들, 서비스를 제대로 못 받는 고객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런데 그만큼 우리 조합원들은 일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사람들이다. 파업을 하면서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다. 내성적이었는데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일도 더 잘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료애가 무엇인지 느끼고 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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