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는 4월 29일 방송된 MBC <PD수첩>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에 대해 '시청자 사과'라는 징계조치를 의결했다.

심의위는 번역 오류 여섯 군데, 진행자가 명확치 않음에도 사실인 것처럼 단정적 표현을 쓴 두 군데, 그리고 서로 다른 의견을 균형 있게 다루지 않아 공정성을 위반했다는 등의 사유를 들어 그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 김평호 단국대 교수
여기에서 심의위 일부 위원들이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하수인'이라는 주장은 논외로 하자. 그래서 이들이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거의 대화가 불가능한 집단이라는 주장도 일단 접어두자.

또 '심의위의 <PD수첩> 프로그램 심의자체가 위헌이다' '스스로 정한 절차도 지키지 않아 법률 위반이다' '시사 프로그램은 심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등과 같은 원천적 차원의 문제제기부터, 영어번역도 제대로 하지 못한 심의위가 오역을 근거로 징계를 내리는 코미디를 벌였다는 지적까지 있지만 이것 역시 일단 별도로 하고, 이번 심의위의 '징계내용과 논리'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해보자.

'시청자 사과'는 '프로그램 중지'보다 강도높은 제재 조치

먼저 <PD수첩>에 내려진 시청자에 대한 사과가 무슨 뜻인지 알아보자. 개인 간에 사과는 흔한 일이다. 그러나 방송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방송에 있어 사과는 나중에 재허가 심사에서 감점요인이 되는 큰 벌이기 때문이다.

방통위 법 100조에는 네 가지의 징계수준이 언급되어 있다.

1. 시청자에 대한 사과 2.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정정·수정 또는 중지 3. 방송편성책임자·해당방송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 4. 주의 또는 경고

얼핏 보면 해당 프로그램을 중지하는 것이 더 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사과가 가장 중징계임을 알 수 있다. 또 실제 사과징계가 내려진 경우도 2006년 SBS 뉴스가 간접광고 문제로 받은 정도 이외에는 없었다.

일부 번역 오류있지만 '주의나 경고'면 충분

다음, 심의위가 징계사유로 제시한 부분과 관련해 결론부터 말하자.

번역 오류? 심의위 지적이 일부 맞다. 명확치 않은 부분을 단정적으로 표현한 부분? 심의위 지적이 일부 맞다.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았다? 심의위 지적은 전혀 맞지 않다.

결국 <PD수첩> 프로그램의 문제는 번역의 오류·단정적 표현 등이다. 이것이 가장 중형인 사과감인가? 아니다. 과잉처벌금지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아니한만 못하지만 굳이 <PD수첩>에 대해 징계를 하겠다면 오류와 표현의 문제 등을 들어 주의나 경고 정도로 족하다.

▲ 지난 16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 19층 대회의실에서 MBC < PD수첩>, KBS <뉴스9> 등을 심의하는 방통심의위 전체회의가 열렸다. ⓒ송선영
왜 주의나 경고 정도의 낮은 징계냐고? 프로그램에 일부 번역 오류가 있지만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그것이 그리 큰 잘못도 왜곡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 진행자의 단정적인 표현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혀 사실과 다른, 또는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사프로그램에서 '기계적 균형성'은 중요하지 않아

남은 한 가지 문제는 공정성 부분이다. 심의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을 다루는 방송프로그램에서는 관련 당사자의 의견이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균형있게 다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측은 협상대표 한사람만 인터뷰한 뒤 동 협상에 반대하는 각 단체대표 및 전문가 등의 인터뷰를 집중적으로 소개한 것, 미국의 도축시스템·도축장 실태·캐나다 소 수입·사료통제 정책 등에 대해 견해가 다른 인사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소비자연맹이나 휴메인소사이어티 관계자의 인터뷰만을 방송한 점, 미국 소의 나이 측정을 다루면서 일방의 견해만 방송한 점 등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제9조(공정성)제2항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다.

간단히 말하면 서로 다른 주장을 50%씩 내용에 담으라는 이야기이다. 더 쉽게 풀이하면 이 사람이 1분 말하면 저 사람이 1분 말하게 하고, 갑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도 넣고, 을이라고 말하는 저 사람도 넣고, 결국 너도 옳고 나도 옳고…, 너도 틀리고 나도 틀리고…. 이러한 양비양시론이야 말로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안의 진실을 왜곡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공정성, 객관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진실이 왜곡되었는가를 따져보자는 것이지 프로그램 속에서 기계적인 50대 50이 지켜졌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왜? 시사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시비와 진실을 가늠하는 문제찾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판단하는 요체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제대로 짚었는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했는가 등이다. 즉 '진실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PD수첩'은 미 쇠고기 진실 왜곡하지 않았다!

<PD수첩>은 광우병과 관련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진실을 왜곡했는가? 아니다. 번역의 오류는 있지만 그것이 프로그램의 진실을 왜곡하는 정도의 것은 아니다. 단정적 표현이 있지만 그것이 프로그램의 진실을 왜곡하는 정도의 것은 아니다. 또 지금까지 나온 국내외 광우병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PD수첩>이 거짓말을 했거나 사안을 의도적으로 과장·왜곡했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엽말단'의 잘못을 가지고 <PD수첩>에 내려진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는 매우 부당한 처사이다. 이런 결정을 내린 방통심의위원 6명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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