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한가' 편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의 심의 결과가 나왔던 지난 16일. 나는 이번 방통심의위 전체회의를 방청한 13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심의 회의를 방청한 것은 지난 9일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지난번 회의와 마찬가지로 '이게 뭥미?'('뭥미'는 인터넷 용어로서 '뭐임'의 오타. 즉, '뭐냐'는 말로 황당한 심경을 표현함)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방통심의위의 방청 사정은 매우 열악했다.

▲ 서울 목동 방송회관 19층 대회의실에서 MBC < PD수첩>, KBS <뉴스9> 등을 심의하는 방통심의위 전체회의가 16일 오후 열렸다 ⓒ송선영

방청 허가 받아도 방청할 수 없는 회의

열악한 사정 첫 번째 : 일단 방청 자체가 매우 까다롭다. 회의 하루 전까지 별도 서식의 신청서를 제출하면 방통심의위 회의 방청객으로 채택된다. 그러나 방청 허가를 얻었다고 해서 방청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일 회의에 앞서 방통심의위원들은 '회의 공개 여부'에 대해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 만약 '회의 비공개'가 결정될 경우, 방청하러 왔던 이들은 고스란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즉, 방청 허가를 받은 방청객들은 회의장 앞에서 '오매불망' 방통상임위원들이 회의 공개 결정을 내기리만을 바라며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회의가 비공개로 결정될까. '방송통신심의위 회의공개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법령에 따라 비밀로 분류되거나 공개가 제한된 사항 △개인, 법인 그밖의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정당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항 △위원회에서 비공개하기로 의결한 사항 등의 경우에 비공개로 결정한다. 공개 여부 기준이 너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나올법한 대목이다.

'PD수첩' 제작진 의견진술만 '공개'…위원들 의견 개진 부분은 '비공개'

16일 오후 3시 전체회의에 앞서 박명진 방통심의위원장은 "지난 번 회의에서 어떤 위원이 어떤 말을 했는지까지 다 알려지는 바람에 (회의를 공개할 경우) 소신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염려하는 분위기도 있다"며 회의 공개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16일 회의에서 <PD수첩> 제작진의 의견진술 부분은 공개로 결정됐으나, 정작 이에 대한 방통심의위원들의 생각을 말하는 의견 개진부터는 '비공개'로 결정됐다.

이 때문에 각 위원들이 의견을 밝히기 시작한 저녁 8시경부터 약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청석의 스피커는 'OFF'였다. 위원들이 어떤 논의의 과정을 거쳐 심의 결과를 도출하는지는 철저히 비공개로 결정했으니 방청석에 앉아있는 기자들은 도무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기자들은 방통심의위원들의 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그저 결과물인 '심의결과 브리핑' 만을 듣기 위해 얌전히 앉아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방청하는 기자들 몇몇도 "이렇게 기자들 바보 만들 수도 있는 거냐. 정작 중요한 부분을 비공개로 결정하다니, 지금까지 타이핑 연습만 시킨거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회의 도중 퇴장한 야당 추천 3인의 방통심의위원들이 "실질적인 심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 데 대해 공감이 갔다.

별도의 방에 갇혀 '스피커'로만 방청하는 회의 … 방통심의위 직원이 '목소리 감별사'?

열악한 사정 두 번째 : 방통심의위 방청은 위원들이 회의를 하는 공간과 떨어져 있다. 회의장 밖의 '유리방' 혹은 별도의 방이 바로 어렵게 허가받은 방청석의 실체다. 그래서 회의장 안에서 누가 어떤 발언을 하는지는 △질이 좋지 않은 스피커와 △ 홍보협력팀 직원 한명의 입('어느 위원의 발언입니다'는 식의 음성 감별 역할)에 의존해야 한다.

지난 9일 회의 때는 대회의실 옆의 작은 유리방에서 방청을 했고, 이번 16일 회의는 아예 대회의실의 맞은 편 방에서 회의 내용도 보지 못한 채로 방청객들만 모여 있었다. 음질 떨어지는 스피커에 귀를 쫑긋 세우며.

특히 16일 회의에서는 홍보협력팀 직원이 바깥을 들락날락거리는 바람에, 성능 불량한 스피커에서 중요 발언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누가 말하고 있는지를 몰라 기자들은 "도대체 이 목소리는 누구야?"라고 답답해하며 나가버린 방통심의위 직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또 이번 회의에서는 방청에서도 돌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엄주웅 방통심의위원이 심의에 대한 불만사항을 토로하며 신상 발언을 하는 순간, 갑자기 엄 위원의 발언이 들리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공교롭게도 녹음실의 실수(?) 였다고 한다. 엄 위원의 발언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엄 위원의 퇴장과 KBS 안건 의결, 백미숙·이윤덕 위원의 퇴장이 연달아 이뤄져 기자들은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 이후 직원이 와서 '죄송하다. 녹음한 테이프를 들려드리겠다'며 엄 위원의 발언을 들려주긴 했으나, 스피커는 이미 최악의 상태였다. '지지직'거리는 소리에 눌려 엄 위원의 발언은 묻혀버렸던 것이다. 직원은 잘 안들린다면 다시 한번 들려주겠다고 했으나 여러번 다시 듣는다고 잡음에 묻힌 발언이 살아날 거 같진 않았다.

심의과정 수시로 '비공개'하는 '말로만 공개' 회의

평범한 네티즌들이 쓴 글에 대해 삭제 결정을 내리고, <PD수첩>에 대해선 '시청자 사과' 결정까지 내리는 방통심의위. 하지만 정작 어떤 논의 과정을 통해 그렇게 엄청한 파급력을 지닌 결정이 성사되었는지는, 회의 방청을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알기 힘들다. 방통심의위원장부터가 회의 공개 자체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일단 공개 결정한 회의 도중에도 수시로 "비공개로 합니다, 땅땅땅!"이 결정되기도 한다. 설사 어렵사리 회의를 공개한다 하더라도 따로 가둬둔 방에서 스피커로만 듣는 희한한 '회의 공개 방청시스템'이다. 방청온 사람들조차도 회의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속속들이 파악하기 힘든 작금의 상황과 결론만 알려주는 방통심의위에게, 다시 한번 '이게 뭥미?'를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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