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의 차기 방통위원장 내정설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오만가지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만드는 얘기일 것이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일이다.

언론이 따라가는 쟁점은 ‘학교폭력’ 문제인데, 피해자니 아니니 논란도 있지만 중요한 건 이 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동관 특보가 외압을 행사한 사실이 있느냐다. 이동관 특보는 대통령실을 통한 해명 과정에서 당시 하나고 이사장을 겸했던 김승유 하나금융회장과 통화한 사실을 인정했다.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려고 했다는 건데, 말이 되지 않는다. 이사장이 학교폭력 사안을 다 알고 있을리 없고, 학부모가 “우리 아들이 가해자라는데, 좀 알아보세요”라고 지시할 수 있는 지위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승유 회장이 이명박 정권에서 ‘금융권 4대천왕’이라 불렸고 당시 대통령과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였다는 점만 부각된다. 김승유 회장은 1943년생이고 이동관 특보는 1957년생이다. 친구 사이도 아니잖은가? 대통령과 가까운 이사장을 통한 외압을 시도한 게 아닌가?

2009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보고를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009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보고를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동관’하면 떼어낼 수 없는 또 하나의 쟁점은 ‘방송장악’이다. 사실 ‘학교폭력’은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검증 단계에서만 중요한 문제다. 여론에 미치는 악영향만 최소화 하고 임명 강행하면 끝이다. 그러나 ‘방송장악’은 임명 이후의 대언론정책을 규정할 거라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해석과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이동관 특보의 언론관은 최근 보도된 유튜브 출연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이동관 특보는 2019년 6월 이른바 ‘극우 유튜브’에 출연해 과거 보수를 떠받치는 축 중 하나인 보수언론도 보수 유권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며 “종편 재허가를 무기로 압박을 가하니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게 사실”이라고 했는데, 이 발언에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언론을 인허가권을 수단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이러한 발언이 가능하지 않느냐는 등의 얘기다.

그런데 더 짚어야 할 것은 과연 이 시기의 보수언론이 이동관 특보가 말하는 것처럼 정권의 눈치를 봤느냐는 거다. 언론 보도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평가이다. 문재인 정권 초기부터 보수언론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전체주의 등의 키워드를 활용해 정치적 반대 구도를 형성하는 것에 진력했다. ‘소득주도성장’은 ‘족보에도 없는 경제학’으로 낙인찍혀 시작하자마자 난타의 대상이 되었다. 민변, 참여연대, 운동권, 탈원전, 이권카르텔 등 윤석열 정권이 언급하는 ‘전 정권 시리즈’ 대부분의 초안이 이때  만들어졌다. 논조의 존중 여부를 떠나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이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정권의 눈치를 본다”고 말하는 사람의 세계관이란 어떤 것일까? 가령 박근혜 정권 시기를 생각해보자. 이동관 특보를 비롯한 이명박 정권 사람들의 대활약으로 방송은 이미 장악된 상태였고 문화예술계도 ‘좌파 솎아내기’ 등으로 정화(?)되는 와중이었다. 뜻있는 사람들은 권력이 좋아할만한 아이템은 키우면서 반대로 권력의 심기를 거스를만한 얘기는 보도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보도하고 ‘동물 뉴스’와 같은 연성 아이템으로 빈 공간을 채우는 방송 뉴스의 문제를 이미 지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정치 권력은 그런 수준의 뉴스에조차 만족하지 않아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해 세월호 참사 관련 아이템은 빼달라고 하거나, 지상파 뉴스는 보지 않는 ‘아스팔트 우파’를 따로 육성 및 지원하는 일 등에 공을 들여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기 MBC는 거의 ‘태극기 뉴스’를 방불케 하는 수준까지 갔는데, ‘아스팔트 우파’들은 그제서야 만족을 표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것도 안심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는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탄핵 정국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수단으로 지상파가 아닌 ‘극우인사’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을 택했다.

이상과 같은 일들을 돌이켜보면 ‘방송장악’은 방송을 장악하는 것 그 자체로 끝나는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권력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의 매체 환경은 ‘방송장악’이 절실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영방송의 영향력은 줄었고 극단으로 분열된 정치환경 덕에 종편 뉴스, 인터넷 뉴스의 중요성이 과거 정권보다도 배가됐기 때문이다. 또 ‘방송장악’의 효과가 과연 클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이야 손쉽게 손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보도국 물갈이’ 등이 과연 가능할까? 과거 MBC 사례처럼 시용기자를 대거 채용토록 할 것인가? 그게 될까? 그러다보니 이 정권이 힘주어 추진하는 ‘수신료 분리징수’는 사실상 KBS를 고사시키고 TV조선을 위시한 종편 뉴스의 상대적 경쟁력을 키워 ‘스탠다드’로 만들겠다는 거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방송장악’은 언론 환경을 바꾸는 것과는 오히려 관련이 없는 것 같다. 권력이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전부 휘어잡고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것은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편을 가르면서 사회공동체의 위기감을 끊임없이 고조시키는 여론 형성이다. 이것은 이미 ‘자유민주주의’를 자처하는 윤석열 정권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동관 특보를 정식으로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할 때가 되면, 늘 그렇듯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편가르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언급을 할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이동관 특보는 이 정권에선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 적격 인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앞서 묘사한 방식대로 권력을 이미 작동시켜 본 경험을 가진 데다, 그것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소양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만회하기 힘든 큰 상처를 남길 것이다. 그 역사적 후과를 감당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신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아적이고 자폐적인 권력의 결말은 국민들에게 버림받는 것뿐이다. 이것만큼은 틀린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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