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올 것이 왔다고 해야 할까,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가 결국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정치권의 극한대립은 이미 시작됐다. 언론계 전반은 전쟁터가 될 것이다. 정권이 왜 이런 선택을 끝끝내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동관 후보자는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이명박 정권 당시의 ‘방송 장악’ 등을 기획하고 실행한 인물이다. 그 결과로 당시 만들어진 언론환경이 모범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정권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아무리 내심으로는 선거 앞두고 언론을 손봐야 한다고 보더라도 겉으로는 문제없는 사람을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내정해 방송 장악 의도에 대한 의심을 피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오히려 방송 장악을 빼면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을 방송 장악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에 앉히려고 한다. 집권 세력이라면 싸움을 피하면서 원하는 바를 관철하려 하기 마련인데, 오히려 싸움을 거는 식이니 이해하기 어렵다.

‘방송 장악’을 말하면 “전 정권은 뭐 달랐느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 정권에서도 부적절한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이명박 정권식의 내리꽂는 방식과 같았는지는 의문이다. “전 정권도 했다”는 식의 핑계를 들어 다시 방송 장악에 나서겠다는 심보를 정당화할 수는 없는 거다. 그런 식의 논의라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과 언론은 장악당하고 쫓겨나야 한다.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지명된 이동관 대통령 대외협력특보가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지명된 이동관 대통령 대외협력특보가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일은 전 정권이 꼭 달성했어야 할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특히 다수당이 됐을 때에도 이 과제를 외면한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런데 또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정권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같은 논란에 휘말릴 수는 없다’는 이유로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의 해법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이동관 후보자가 지명 직후 “이제 대한민국에도 영국 BBC 인터내셔널이나 일본 NHK 국제방송처럼 국제적 신뢰와 인정을 받는 공영방송이 있어야 한다”고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의 단서이다. 굳이 “BBC나 NHK”라고 하지 않고 “BBC 인터내셔널이나 NHK 국제방송”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BBC나 NHK의 국제적 신뢰도를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큰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KBS에 대한 수신료 분리징수를 강행하고 여당 일각에선 일부 방송 채널에 대한 민영화까지 언급하는 상황까지 묶어서 보면, 국내적 쟁점에 역량을 투입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고 해외 뉴스 해설에 신경쓰라는 맥락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특히 NHK의 경우는 이미 전례가 있다. 2012년 집권한 2차 아베 신조 내각은 NHK 경영위원회를 장악하고 이를 통해 입맛에 맞는 회장을 선임하는 방식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했다. 당시 선임된 모미이 가쓰토 회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국제뉴스의 방향에 대해 “정부가 ‘우’라고 하는 것을 ‘좌’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 정부는 이후 실제로 NHK 국제방송을 담당할 ‘전문가 모임’을 설치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NHK 국제방송에 독도를 포함한 영토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해외에 일방적으로 전하는 나팔수의 역할을 강요했던 것이다.

일본 언론 지형의 특성상 이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전 정권을 겨냥한 정치적 보복보다는 언론 고유의 역할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역사 문제와 관련해 NHK가 자민당 내 극우파들에 밉보인 것은 NHK 내부의 소수가 나름대로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 한 역사 때문이다. 가령 1996년 NHK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집중 조명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한국의 피해자들에 대한 취재도 진행한 일이 있다. 그런데 일본 법무성의 문제제기로 이 프로그램의 제작은 돌연 중단되었다. NHK는 2001년 ‘일본군 성노예 여성국제법정’을 다룬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란 프로그램을 4부작으로 편성하였는데,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2회의 경우 극우파 정치인들의 압력에 굴복한 NHK 임원들에 의해 난도질 당한 일도 있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자민당 집권기에 일어났다. 아베 신조는 가장 크게 반발해 압력을 행사했던 정치인 중 하나였다. 이후 당시 압력을 행사한 당사자 중 하나라는 내부고발이 나오자 2005년 관방 부장관이었던 아베 신조는 방송에 출연해 북한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NHK는 딱히 자민당과 정치적 갈등을 벌일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고유한 역할을 다하려 한 거라 볼 수 있는 기획과 취재를 해 굳이 미움을 산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아베 신조는 본인이 총리가 되고 나서, 이미 정치적 압력에 취약한 상태인 NHK에 만족하지 않고, 역사적 진실에 대한 기획취재 보도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고자 한 거였다.

세월호 보도 개입 이정현, 벌금형 확정 (서울=연합뉴스)
세월호 보도 개입 이정현, 벌금형 확정 (서울=연합뉴스)

돌이켜보면 보수 정권에서도 비슷한 골칫거리(?)들이 있었다. 박근혜 정권 당시 공영방송은 분명 정치적으로 장악된 상태였을 터였다. 그런데도 KBS 보도국장이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 개입 사실을 폭로하는 일이 일어났다. 문창극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의 괴이한 발언이 보도돼 낙마하는 일도 있었다. 장악을 해도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하려 들면 정권은 불편해진다. 언론노조가 파업을 하는 등의 상황이 겹쳐지면 정치적 리스크가 커진다. 그러니 아예 이번 기회에 공영방송의 역할을 비가역적인 방식으로 위축시키겠다는 거고 그게 수신료 분리징수와 “BBC 인터내셔널이나 NHK 국제뉴스” 타령이 나오는 맥락 아니냐는 거다.

공영방송이 지금까지 다 잘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잘하지 못한 것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면 언론 생태계 내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이를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는가? 잘하지 못했다고 해서 굳이 잘하길 바라지도 않는 사람들이 공영방송의 존립기반을 사실상 허물겠다고 나서는 걸 어떻게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 저출산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 직접 청년 200명을 섭외해 토론을 진행하거나 시민 500명을 모아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꾸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공론조사를 사실상 주관하는 기획을 공영방송이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좌파 타령은 그만두고 정치권도 깊이 고민을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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