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다시 한 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미국 얘기가 나올 리가 없고, '바이든'이라는 말을 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2022년 9월 22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브리핑 중

외교부가 MBC에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인지 특정하지 않았다. 23일 미디어스가 외교부 정정보도 청구 소장을 확인한 결과, 윤 대통령 발언 취지만 나열돼 있었다. 외교부가 "MBC는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지칭하며 욕설을 하고, 바이든 대통령을 언급하며 비속어를 사용했다고 허위사실을 보도했다"고 주장하면서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윤 대통령 발언을 특정하지 못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모습 (사진=MBC 보도화면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모습 (사진=MBC 보도화면 캡처)​

외교부는 "윤 대통령은 외교행사인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세계 질병 퇴치를 위한 우리나라의 1억 불 공여 발표 후 다음 행사장으로 급히 이동하는 과정에서, 우리도 외교적 위상과 경제적 규모에 걸맞은 기여를 다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 국회 예산이 통과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취지로 예산 심의권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 국제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책임 이행을 거부하면 나라의 면이 서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발언 중 '국회'는 '한국 야당'을 지칭한 것이고, 욕설과 비속어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는 주장이다. 

외교부는 "박진 장관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답변으로 '제가 잘 설명해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하였는데, 이와 같은 답변 내용은 윤 대통령 발언이 미국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그런데도 MBC가 방송한 영상에서는 이와 같은 박진 장관의 답변 장면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MBC가 의도적으로 박진 장관의 답변 부분을 빼고 편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다"고 했다. 

외교부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2022년 9월 30일자 오마이뉴스 기사를 거론했다. 해당 기사는 '바이든·날리면' 사태 이후 박 장관과 외교부 출입 기자들의 일문일답을 담고 있다. 

박진 장관은 '대통령이 어떤 말을 했는지 단 한 문장이니까 이 자리에서 공개해달라'는 취재진 질문에 "구체적으로 표현 하나하나에 대해 말씀드리지는 않겠다"며 "다만 제가 대통령 옆에 지나가면서 이해한 취지는 '우리가 세계 질병 퇴치를 위해서 공여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그것이 제대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창피한 것 아니냐' 이런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저는 나가면서 대통령께 '제가 잘 설명해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렇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지난해 9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쉐라톤 뉴욕 타임스퀘어호텔 내 프레스센터에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지난해 9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쉐라톤 뉴욕 타임스퀘어호텔 내 프레스센터에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외교부는 윤 대통령 발언을 전하면서 자막에 '(미국)'을 넣은 주요 방송사는 오직 MBC뿐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외교부가 예로 든 주요 방송사는 채널A, SBS, KBS, JTBC, TV조선, MBN 등이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보도했던 언론사 수는 140여개로 추산된다. 당시 상당수 언론은 윤 대통령 발언이 '미 의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MBC 비판에 나선 언론들마저 논란 당시 자사 기사에서 '국회는 미 의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미국 의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관련기사▶'이 XX' '바이든' 보도했던 언론, 안면 바꿔 MBC 탓)

외교부는 MBC 보도에 한미동맹을 훼손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MBC가 "우리 외교의 핵심축인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외교부의 외교 성과를 흠집내고 한미 간 외교분쟁을 초래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지칭하며 욕설을 하고, 바이든 대통령을 언급하며 비속어를 사용했다'는 허위보도를 한 것"이라고 했다.

MBC는 보도 객관성을 유지했다는 논거 중 하나로 2022년 9월 23일 같은 프로그램에서 두 가지 버전의 자막을 순차적으로 보도했으며 9월 26일부터는 모든 뉴스에서 '바이든'이라는 자막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공정보도를 빙자한 허위보도 이슈몰이"라며 "반성이 없는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외교부는 "정부 해명을 보도했다고는 하나, 그 횟수와 길이가 일련의 최초 보도에 비해 현저하게 적었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대부분 우리 정부의 해명이 납득하기 어려우며 해명 방향도 계속 바뀐다는 등의 부당한 비판 일색이었다"고 했다. 

한국영상기자협회 설명과 MBC·KBS 등 윤 대통령 해외 순방 일정을 동행취재한 기자들의 해설 보도를 종합하면, 한국시간으로 9월 22일 오전 7시 30분 무렵 관련 영상이 방송매체 서버로 송출완료됐다. 방송기자들은 동영상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각자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으며 오전 7시 40분경부터 욕설로 들리는 단어가 있다는 이야기가 기자들 사이에서 오갔다. 기자들은 기자실에 있던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바이든'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지만 이 관계자는 "나는 다르게 들린다. 좀 기다려달라"는 취지로 답했다.

이후 오전 9시를 전후로 '바이든'으로 적시된 발언 녹취와 영상이 이른바 '지라시'로 돌았다. MBC가 오전 10시 7분 첫 보도를 했고, 당일 대부분의 언론사가 '바이든'으로 표기해 보도했다. 이 같은 과정에서 대통령실 관계자는 영상취재 기자단에게 "어떻게 해줄 수 없느냐"고 말한 데 이어 방송사 취재기자단 간사에게도 "외교상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이라며 비보도를 요청했다. 

해당 영상이 퍼진 3~4시간 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사적 발언을 외교성과와 연결짓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은 기자들에게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 발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됐다. 이 시점까지 윤 대통령 발언을 두고 기자들과 대통령실 사이에 논란은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윤 대통령 발언이 나온 후 15시간이 지난 시간에 김은혜 홍보수석이 '날리면'이라고 해명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후 대통령실은 "이 XX' 발언은 야당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니었다", "('날리면'은)최종적으로 100% 확정할 수 없는 내용" 등 김은혜 홍보수석 해명을 번복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외교부는 '언론인을 위한 교과서'로 불리는 톰 로젠스틸·빌 코바치 저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MBC를 비판했다. 외교부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따르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뉴스 사이클 속에서 뉴스 제공자들은 진실성을 검증하지 않은 채 최신 소식을 쏟아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시청자들이 무엇을 알게 되는지는 '언제 뉴스를 접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면서 "비슷한 맥락에서 심리학에 따르면 소위 '각인효과' 또는 '앵커링 효과'라고 하여, 어떠한 사건에 대한 첫 인상이 이후의 인식과 사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고 했다.

외교부는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와 대통령을 겨냥해 발언했다는 MBC의 보도를 접한 시청자들은 해당 보도 내용이 진실인 것처럼 인식하게 되고, 이후에는 어떠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고착화 된 인식을 바꾸기가 대단히 어렵다"며 "우리 정부 부처는 지금 이와 같은 소모적인 공방을 해나갈 여력도, 시간도 없다. 국익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왜곡하고 깎아 내리는 보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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