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하종삼 칼럼] 원고의 순서는 먼저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하 사전으로 표기함)의 목민심서 해설을 【】 안에 인용하고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진황(賑荒)·해관(解官)의 두 편은 수령의 실무에 속하는 빈민 구제의 진황 정책과 수령이 임기가 차서 교체되는 과정을 적은 것이다. 벼슬길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황의 항목은 비자(備資 : 자본이나 물자를 비축함)·권분(勸分 : 수령들이 관내의 부유층에게 권해 극빈자들을 돕게 함)·규모(規模)·설시(設施)·보력(補力 :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힘으로 도움)·준사(竣事 : 사업을 마침)의 6조로 편성되었다.】

이 내용은 11편 진황과 12편 해관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 순서상 해관은 다음에 다루고 이 글에서는 진황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목민심서는 책 자체가 수령의 고과법이다. 12편 72조 중 9편 54개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다산이 경세유표의 고적지법과 목민심서의 이전 부감사고공지법(附監司考功之法)에서 분명히 하고 있는 내용이다.

고적의 조례(條例)에는 대체로 9강(綱)이 있으니 첫째는 율기(律己), 둘째는 봉공(奉公), 셋째는 애민(愛民), 그다음은 6전(典)이 포함된다. -〈목민심서 이전 부감사고공지법〉

 

수령을 고적하는 데에는 아홉 가지 강령(綱領)이 있다. 첫째 율기(律己), 둘째 봉공(奉公), 셋째 애민(愛民), 넷째 이전(吏典), 다섯째 호전(戶典), 여섯째 예전(禮典), 일곱째 병전(兵典), 여덟째 형전(刑典), 아홉째 공전(工典)인데, 아홉 강령 안에 각각 여섯 조목이 있어 모두 54조목이 된다. -〈경세유표 4권 고적지법〉

진황의 글은 다산이 정한 수령의 기본업무 54개조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 다산은 이와 같이 분류를 했을까? 진황은 흉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지, 일상적인 업무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일상적인 제도가 바로 환자(還上)다. 환자가 국가재정수입의 기능이 아닌 본래의 기민(飢民)을 구제하는 기능을 한다면 별도로 진황에 대한 항목을 둘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 등의 빈민구제 정책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기민이 항상 발생하는 현실을 고려한 항목이 이 진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 표지 (牧民心書)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 표지 (牧民心書)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러므로 사전에서 설명한 ‘빈민 구제의 정책’이라는 설명은 틀린 내용이다. 사회적 약자인 빈민을 구제하는 정책은 호전 편에 있는 곡부를 기본으로 애민 편의 진궁(振窮)‧애상(哀喪)‧관질(寬疾)에 들어 있고, 진황의 내용은 일상적 사회적 약자가 아닌 흉년 등의 재해로 인한 특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굶주리는 백성이 대상이다. 진황은 빈민구제 정책이 아니라 흉년의 기민 구제에 대한 정책이다.

이어서 사전에서는 진황의 여섯 개조를 설명하고 있는데 비자(備資)와 보력(補力)에 대한 설명을 보면 무성의와 유치함의 끝을 보는 것 같다.

먼저 사전에서는 비자를 ‘자본이나 물자를 비축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본’이란 용어에서 이 내용을 편찬한 사람의 무성의를 볼 수 있다. 자본은 이익을 염두에 둔 투자의 개념이다. 비자의 내용은 저축 양곡의 철저한 관리, 조세의 감면, 곡식 구입 등의 일이다. 이 내용을 자본이란 용어로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그냥 ‘흉년을 대비한 물자의 비축’이라고 해도 될 것을, 어울리지 않는 자본이란 용어를 왜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다음은 보력(補力 :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힘으로 도움)이라는 해석이다. 병객(屛客)을 손님 접대로 설명한 것이 가장 기가 막히다면, 보력을 이렇게 해석한 것은 가장 어이가 없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다’ 정도로 하면 될 것을 ‘힘으로 도움’이라고 불필요한 내용을 덧붙여 보력 조를 완전히 천박하게 만들어 놓았다.

보력의 내용은 대파(代播), 흥역(興役), 구황의 풀(식용가능식물)을 알리는 일, 제도(除盜), 금주(禁酒), 부세를 가볍게 하고 공채(公債)를 탕감하는 등의 내용이다. 대파는 흉년이 들어 이앙을 마치지 못한 논에 차조, 메밀, 늦콩 심기를 권유하는 일이고, 제도는 도둑을 없애는 것이다. 구황의 풀을 알리는 일은, 다산도 기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관에서 하기에는 구차한 일이다. 그래서 다산도 관에서 하지 말고 고을 선비로 하여금 알리도록 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 화서문 주변 성곽길 Ⓒ연합뉴스
경기도 수원시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 화서문 주변 성곽길 Ⓒ연합뉴스

이와 같이 보력은 민력을 펴게 하는 일이다. 그 중심에는 감세‧탕감과 흥역(興役)이 있다. 흥역은 현대에도 시사점이 많은 내용이다.

다산은 보력의 두 번째 글에서, ‘봄철 날이 길어지면 공사를 일으킬 수 있으니, 관사(官舍)가 허물어져 고쳐야 할 것은 이때에 수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먹고살 것도 없는데 공사를 일으키라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각종 공사로 그냥 부역을 시킨다는 것이 아니다. 임금노동을 시킨다는 의미다. 굶주린 백성들에게 임금을 주어 제방, 저수지 등을 축조해서 가뭄이나 홍수를 대비하기도 하고 허물어진 관청도 수리한다. 그 결과 사회간접자본이 확충되고 어려운 백성들은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

명확하게 현대에서 말하는 ‘뉴딜 정책’이다. 저 시대에 무슨 임금노동이냐고 반문하는 분도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영조 때의 청계천 준설과 정조시대의 화성 축조가 이렇게 만들어진 역사(役事)다. 백성을 모집해서 부역을 시킨 것이 아니라 임금을 주고 생활이 어려운 백성을 고용해서 만들어진 결과다. 청계천과 수원화성에는 이런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애민정신이 깃들어 있다(물론 조선만 이런 것이 아니라 흉년에 공사를 일으키는 것은 송나라 시대부터 있었던 일이다).

이상이 진황 보력의 내용이다. 사전에서 말한 바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힘’으로 돕는 것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 도둑을 잡는 것은 무력이 필요하니 도둑을 잡는 것을 이렇게 말한 것인지, 아니면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양식을 대신 들어다 주라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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