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고용노동부가 KBS·MBC·SBS 등 지상파 3사 방송작가 152명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것과 관련해, 지상파 3사가 ‘2년 근로계약’을 제안했다. 또한 KBS는 2년 이상 근무한 방송작가를 '행정직'으로 전환했다. 방송작가의 정규직 채용에는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결국 방송작가들의 노동 환경만 더욱 열악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해 12월 30일 고용노동부는 KBS·MBC·SBS 83개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방송작가 363명 중 152명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조건이 확인된 작가들의 근로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한 근로계약서를 제출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시정명령 이행 시한은 10일까지다.

MBC, KBS, SBS 사옥

미디어스 취재에 따르면 지상파 3사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작가들에게 '2년 근로계약 체결', '프리랜서 계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했다. KBS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재계약은 없다'고 통보했다. 해당 방송작가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로 판단된다. 또한 KBS는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자인 방송작가 9명을 동의를 얻어 행정직으로 전환했다. 이들은 2년 이상 근무했다.

KBS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방송작가는 프리랜서성이 강한 직군”이라면서 “이분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프리랜서인 방송작가들과 차별성이 생긴다. 이런 차이를 막기 위해 동의를 얻어서 (계약을 체결)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인사쪽에선 (방송작가 근로계약 기간을) 2년을 넘지 않게 한다는 원칙을 세울 수밖에 없다"며 "2년 계약을 넘겨버리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KBS 관계자는 ‘정규직으로 채용할 계획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그렇게까지 할 여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답했다. 미디어스는 SBS에 관련 문의를 넣었으나 답이 오지 않았다. MBC 관계자와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한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은 9일 열린 <이재학 피디 투쟁 이후 방송비정규직의 현실과 과제> 토론회에서 “그토록 원했던 노동자성 인정, 근로감독 착수였으나 현실은 암담하다”며 “(행정직 전환은) 근로감독의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근로감독을 한 이유 자체가 없어지는 결과다. 방송사는 작가들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방송사의 종용이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김한별 지부장은 “제보에 따르면 KBS는 방송작가의 개인 책상을 없애고 공용 책상을 준다”며 “방송작가들의 노동자성을 지우기 위한 다양한 액션들을 취하고 있다. 이는 많은 지역사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지부장은 “결국 방송작가들의 노동 환경만 더욱 열악해진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21일 여의도 KBS 앞에서 열린 '방송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 제대로 협조하라'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부위원장)는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이 인정됐는데, 왜 노동자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인가”라면서 “강력한 페널티가 필요하다. 엄중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방송작가를 계약직으로 채용하거나 행정직으로 보내는 것은 엉뚱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서 “정규직화가 필요하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곤, 방송작가를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대표 노무사는 “방송작가는 근로 실질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에도 사용자(방송사)에 의해 철저히 프리랜서로 ‘위장’되어 왔다”며 “그동안 그 누구도 방송작가가 노동자라는 생각을 못 했다. 그렇다 보니 10년을 같은 업무를 수행했어도, 말 한마디에 퇴직금조차 받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김유경 노무사는 토론회가 끝난 후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행정직으로 전환된 분들은 작가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며 “지상파 3사의 결정은 ‘작가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신분의 선을 그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2년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은 법적으론 문제가 안 될 수 있다”며 “하지만 법적인 부분을 떠나서, 상시적·지속적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 기간제라는 허점을 악용하는 것은 공영방송이 해선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노동부, 방통위 등 관계부처, 실질적인 조치 취해야”

이날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용우 변호사는 고용노동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기관의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 변호사는 “비정규직 문제는 오랜 기간 누적된 악습”이라면서 “법제도를 바꾸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국 관계부처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용우 변호사는 “방송사들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를 고용할 때 계약직으로 하려 한다”며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선 형사처벌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방송사들은 방통위의 재허가를 신경 쓰는데,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재허가 과정에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유경 노무사는 “노동부, 방통위 등 방송사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기관은 비정규직 확대를 방관해서 안 된다”며 “(지속적인 관리·감독이 없다면) 방송사들에게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노무사는 “(기관들은)방송사들이 노동법상 사용자의 의무를 다하는지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드라마 제작과 관련된 관계부처가 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방통위로 분리돼 있다”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 주체를 놓고 핑퐁이 계속된다. 관련 문제를 총괄할 수 있는 책임부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강 변호사는 “드라마 제작 현장에 대한 상시적인 감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9일 열린 <이재학 피디 투쟁 이후 방송비정규직의 현실과 과제> 토론회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용우 변호사는 “중요한 건 비정규직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자세”라면서 “노동자 스스로 신경을 안 쓰는데 사측이 신경을 쓰겠는가. 노동계 내부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현재 노사협의체에 비정규직이 참여하지 못하는데, 선도적으로 선례를 남기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경 노무사는 “방송사 정규직들은 오랜 세월 ‘우리와 신분이 다르다고 하는 일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해왔다”며 “방송 프로그램 제작 인력의 30~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사는 방법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한별 지부장은 “방송작가와 방송사 직원 모두 언론노조의 조합원”이라면서 “조합원 간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김 지부장은 “조직적인 힘이 필요하다”면서 “힘이 있어야 임금 인상 및 처우개선, 노동자성 인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지부장은 방송계 비정규직을 조직화해 방송사를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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