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방송 산업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례가 나오고 있지만, 실질적인 근로계약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법원의 판단과 주무부처의 결정을 구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29일 국회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 주최로 ‘방송 비정규직 운동방향과 과제 도출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를 맡은 강은희 공감 변호사는 비정규직을 직고용하라는 고용노동부의 시정 지시에도 방송사는 별도의 직군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방송작가에 대한 차별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9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방송 비정규직 운동방향과 과제 도출을 위한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9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방송 비정규직 운동방향과 과제 도출을 위한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KBS·MBC·SBS 보도·시사 분야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방송작가 363명 중 152명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KBS는 70명, MBC는 33명, SBS는 49명이다. KBS는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자인 방송작가 70명 중 9명(12.8%)을 행정직으로 전환했다. KBS는 ‘방송지원직’을 신설하고 이들에게 새 취업규칙을 적용했다. 계약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방송작가는 26명이다. MBC는 노동자성이 인정된 33명 가운데 3명(9%)과 무기계약직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이들을 ‘방송지원직’에 배치했다.

강 변호사는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정이 많아지는 것은 정말 긍정적”이라면서 “그런데 이 같은 판정이 방송 산업에서 ‘근로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고, 방송사들은 근무형태를 바꾸며 노동자성을 은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변호사는 “노동자성 인정 판정이 직군 전체에 해당되지 않아, 계속해서 개별 대응을 이어가야 한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 대응을 강조했다. 

현재 YTN과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프리랜서 PD A 씨는 전국언론노동조합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B 씨는 “회사에서 호봉직과 연봉직 간의 소송이 생긴 적이 있다”며 “그 소송으로 프리랜서들이 가장 피해를 보았다. 소송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업무 스케줄을 바꾸거나, 자리를 따로 배분하는 등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이익을 받았다”고 했다. 

A 씨는 “그래서 노조에 정규직 전환을 호소했다”면서 “그런데 ‘프리랜서들이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보호해 줄 수 없다’, ‘회사 측이 프리랜서를 노동자로 인정하면, 소송 리스크가 될 수 있어 보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고 좌절에 빠졌다”고 말했다. A 씨는 “현재는 소송을 통해 근로자 지위를 획득했지만 회사 측에서 기존의 근무 이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세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방송미디어 노동현장의 노동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연대체 '미디어친구들'이 지난 6월 15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 광장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사진=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방송미디어 노동현장의 노동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연대체 '미디어친구들'이 지난 6월 15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 광장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사진=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안명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직 지원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활동가는 “당사자들은 열심히 싸우고 있고 노조는 분명 함께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당사자들의 싸움을 현장에까지 미치게 하는 것은 노조의 역할이다. 노조가 소송을 도와주는 것 이상의 설계와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 활동가는 “방송작가의 경우, 협의체 테이블을 만들었으나 진전이 없는 상태”라며 “교섭을 통해 집단적 투쟁 방식을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 활동가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에게 교섭은 곧 투쟁을 의미한다”며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교섭 과정은 집단 조직과 투쟁의 경험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MBC <뉴스투데이> 방송작가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윤지영 공감 변호사는 “소송 이후 오히려 문제가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MBC가 ‘1심 판결이 날 때까지 교섭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저희가 소송에서 이기고 나자 MBC는 방송작가지부를 빼고 단일노조인 언론노조와 교섭에 응하겠다고 말을 바꿨다"고 밝혔다. <뉴스투데이> 방송작가는 행정소송 끝에 지난 7월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다.

윤 변호사는 "그런데 너무 암담한 건 사실상 MBC에서 실제로 방송작가들의 사용자 역할을 한 사람들은 PD들인데, 이들 모두 언론노조 소속"이라며 "MBC가 언론노조와 교섭하겠다고 했을 때 진짜 단체교섭이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방송작가 B 씨는 “방송작가의 경우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취업이고, 끝나면 퇴사인 경우가 많다”면서 “부당함을 느끼는 방송작가들은 문제제기를 하기보다 다른 일을 찾는다. 같이 모여 구조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B 씨는 “많은 분들이 도와줘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