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우리 KBS는 앞으로도 방송작가를 정규직 직군으로 새로 만들어 채용할 생각이 없다”
전주KBS에서 해고된 방송작가 A 씨의 대리인을 맡은 김유경 노동법률사무소 ‘돌꽃’ 노무사가 전북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 심문 회의 당시 KBS 측으로부터 들었다는 답변이다. 김 노무사는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법원의 판결과 노동위의 판정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KBS는 ‘그동안의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말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7년간 KBS 전주총국에서 방송작가로 일한 A 씨는 지난해 6월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지방노동위원회는 A 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지난해 12월 인용했다. KBS는 이에 불복하고 재심을 신청했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도 지난달 지노위와 동일한 원직 복직과 임금 지급을 KBS에 명령했다. 해당 작가는 현재 KBS와 복직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미디어친구들’은 22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전주KBS 방송작가 해고’ 사례를 중심으로 방송작가의 노동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토크 콘서트 <미디어노동환경 제대로를 위한 ‘미니토크 온 더 블럭’>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 이채은 전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사회를 맡았으며 김유경 노무사와 문종찬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소장이 참석했다.
이날 김유경 노무사는 ‘전주KBS 부당해고 작가’에 대한 중노위의 판단은 ‘방송작가는 노동자’라는 판정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판정문에 해당 작가가 ‘부하 직원처럼 취급당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며 “종속성을 인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구”라고 말했다.
또 김 노무사는 중노위가 해당 작가가 쓴 계약서가 형식에 불과하다는 법리적 판단을 내린 것은 이 같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는 다른 방송국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이 인정된 사례가 제도적인 후속 조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김 노무사 “지난해 말 지상파 3사 근로감독 결과 이후 어떠한 후속 조치도 없었다. 언제까지 개별적 법률 투쟁을 힘들게 해서 하나하나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회사로 돌아가야 하냐”며 “이런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사례가 100건이 돼도 끝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노무사는 “사용자인 KBS가 지금부터라도 협의체 구성 등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개별적인 법률 대응으로 막는 것은 정말 공영방송이 할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문종찬 소장은 “전주KBS에서 일어난 부당해고 사태에 대한 얘기를 KBS 본사 앞에서 하는 이유는 전주를 포함한 KBS 지역총국은 KBS 법인 아래에 있고, 또 김의철 사장이 이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대책을 세우겠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30일 김의철 KBS 사장은 이사회에서 “비정규직 방송작가와 관련해 솔직히 여러 가지 고민이 참 많다”며 “전주 같은 경우 지노위에서 저희들(KBS)이 졌고, 중노위에 간 상태”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사실 예산이 수반되는 이슈인데, 작년 예산에 덜 반영된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KBS 전체적으로 실태 같은 것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올해 초부터 조직을 만들어 종합적으로 잘 파악해서 처우 부분을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김 사장의 발언에 대해 문 소장은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을 할 예산이 없다고 얘기한 것은 결국 돈을 줄이기 위해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막 써먹어 왔던 것을 실토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문 소장은 “KBS는 시민들의 수신료를 중노위 법률 대리인과 행정소송 준비 비용에 썼던 것”이라며 “이런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따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소장은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고 18개의 지역 총국이 있는 단일회사 KBS는 이제 노동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분에 대해 확실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작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해결방안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문 소장은 “정책당국의 역할, 사용자의 역할, 시민들의 역할이 다르다”며 “전 세계에서 해고가 가장 자유롭다고 하는 미국만 해도 근로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려면 회사가 입증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근로소득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노동자이고, 정책당국은 이에 상응하는 노동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는 제도를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소장은 “지금 당장 방송사 비정규직 협의체와 같은 기구를 구성해서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출범한 ‘미디어친구들’은 기존의 ‘방송작가친구들’을 확대 개편한 연대체로 방송 미디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를 지원하고 있다. 해당 단체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방송스태프지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이 참여하고 있다. ‘미디어친구들’은 매주 수요일 미디어 사업장이 모여있는 상암동과 여의도 일대에서 <미디어노동, 제대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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