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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곡 찌르는 박진수 다시 또 보여주오[전규찬 칼럼]
전규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7.11.09 08:31

이 편지 오직 당신에게만 배달됩니다. 이치를 정확히 헤아리고, 주변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며, 무엇이 옳은 방법이자 수단인지 선택해, 적당한 순서와 절차에 따라 용감히 일 처리할 줄 아는, 한 마디로 문제의 정곡을 찌를 줄 아는 당신에게 쓰는 겁니다. 사태파악, 수단강구, 행동돌입, 문제해결의 능력. 정곡. 과녁의 한가운데 점, 핵심. 그걸 맞추는 건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달려들어 될 게 결코 아닙니다. 촉과 감으로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갈고 닦은 실력의 발휘입니다. 잘못 시위 떠난 화살, 정곡은커녕 과녁을 한참 빗나가 버리기 십상입니다. 엉뚱한 사고를 일으킬 수 있죠. 그렇다고 쩔쩔대며 머뭇거리면 더 큰 일입니다. 충분한 훈련, 신중한 계획, 다각적 탐색, 차분한 호흡 그리고 순간적 결단, 이 많은 것들이 짧은 시간 안에 동시에 요구됩니다. 긴장된 시간 속 최대한 안정을 유지하며 순간적 행동에 돌입해 목표에 도달해 내는 테크닉, 정곡 찌르기. 그 기술 다시 보여주라 당신에게 편지로 요청하는 겁니다. 

박진수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위원장

탁월한 기량, 당신이 당장 보여줘야 합니다. 너무 갑작스럽나요? 많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시죠? 이해됩니다. 당연합니다. 이 편지를 받아 보기 전 당신은 주변정황이 너무나 황당하게 돌아가 이미 정신이 없을 겁니다. 분개해 터뜨린 말과 글 봤습니다. 상당히 화나 있더군요. 압니다. 압니다.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말도 안 되잖아요, 벌어지는 꼴이. 누구보다 당신이 화나고 슬프고 기막힐 게 틀림없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그런데 이리 되어 갑니다. 저런 꼴이 되어가네요. 그러니 누군들 화 안 나겠습니까? 어찌 해야 할까요? 답을 어데서 찾아야 할까요? 누가 사태해결의 답을 찾죠? 미안하지만 당신이 또 책임지고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신의 진수, 다시 또 보여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당신과 당신들의 회사, 우리 모두 이 어려운 상황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게 이 글, 어쩜 하나마나한 이야기라 망설인 편지의 요지입니다.

사실, 내가 당신의 진수를 목격한 건, 지난 촛불 때였습니다. 그 전에도 물론 얼굴이야 자주 봤지만, 솔직히 이름도 잘 기억 못 했었습니다. 그냥 ‘얼굴 동글동글하게 생긴 사내가 위원장이랍시고 왔다 갔다 하는구나’ 정도 생각했죠. 그 이상 별 신경 쓸 것도, 정 줄 것도 없습니다. 소원한 관계였죠, 뭐. 사실, 요즘 운동장의 개털인 나한테 제대로 친근하게 다가와 말 걸고 인사하는 위원장들이 드뭅니다. 어휴, 제 한계죠. 오해 마세요. 절대로 당신께 섭섭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경 쓰지도 마세요. 그냥 옛날과 사정이 참 많이 달라졌다는 운동장 선배로서의 괜한 상념이자 푸념일 따름. 북적북적, 신문이건 방송이건, 지역과 서울을 가리지 않고 지본부장들과 가깝게 어울려 술 마시며 ‘우리가 남이가’ 할 때가 있었거든요. 그 지난 시절 잊지 못한 채 요즘도 이리 투덜대니, 허허 저도 이젠 구닥다리 꼰대가 다 되었습니다. 

젠장,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새니 글발도 참 맛이 간 게 틀림없습니다. 이놈 말 머리 다시 당신의 진수를 본 때로 돌려보죠.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 못합니다. 그때 우리 어디선가 시작해 어디론가 꺾어 시가행진하고 있었죠. 주변 사람들이 하도 많아 정신이 하나 없었습니다. 앞선 선도차량에 올라탄 지도부가 연신 구호를 외치며 음악도 틉니다. 플래카드 든 우리가 뒤를 바짝 따르면, 그 뒤편에 쭉 대오가 또 쫓는 그런 모양입니다. 어휴, 주변에 사람들이 정말 얼마나 많은지. 저 조직이, 이 단체가 마구 뒤섞입니다. 한 무리는 이쪽에서, 저 무리는 저쪽에서 우와 난리가 아닙니다. 남녀노소, 별별 사람들이 뛰쳐나와 지켜보고 박수칩니다. 함께 걸으며 목소리 높여 외칩니다. 여럿이 차량에 올라 발언 합니다. 저도 혹 불릴까 조마조마하며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본 게 바로 당신의 진수였습니다. 사태처리의 진수. 상황주도의 진수. 몸에 착 달라붙은 수사의 진수. 운동의 진수.   

당신은 진짜 엄청난 선동가였습니다. 놀라운 행위예술가였습니다. 방송기자라는 직책이 믿겨지지 않았죠. 다른 위원장들의 엄숙하고 진지하며 장엄한 언설과 아주 대비됩니다. 폼 나는 단어들, 멋진 개념들이 다 쏙 빠져있습니다. 속 되게 표현하면, 당신의 발언은 저질 그 자체입니다. 가볍기 짝이 없습니다. 고급하거나 품위 있는 것과는 거리 먼, 거리의 언어. 내용이나 체계, 표현방식 모두가 그래서 살아 있습니다. 툭툭 입 밖으로 주절대듯 뱉어내는 말들. 설설 풀어 나가는 이야기 요령. 마치 래퍼가 라이브로 읊조리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반복이 심하죠. 알아듣기 쉽게 정곡을 콕콕 찔러댑니다.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쿡쿡 와 닿습니다. 따라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킬킬 대며, 깔깔거리며, 선도차량 위 마이크 앞 당신의 수사를 길바닥 뒤따르는 우리는 물론이고 인도에서 응원하던 자들까지 그대로 따라합니다. 그 무서운 기세가, 그 임기응변의 아이디어가 촛불의 진수를 그대로 빼다 박은 당신의 진수였습니다. 그건 단순히 말재주의 요령을 훨씬 뛰어 넘는, 정국을 찌르는 능력이었습니다. 

그 뒤 나는 당신의 팬이 됩니다. 당신은 내가 닮고 싶은 후배, 배우고 싶은 동지 중 한 명이 되죠. 그래서일까요? 희한하죠. 그 후 나는 당신회사 일로 몇 번이나 당신과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술도 좀 마셨죠. 공덕의 폭탄주, 아 참 맛 좋았습니다. 당신과 가까워지고 싶다보니, 당신 회사 사장 뽑는 중요하고 심각한 일로 만났는데도, 나는 자꾸 술잔만 기울이기 바빴습니다. 이야기가 얼마나 횡설수설 따른 데로 흘러갔을지. 웃긴 대표라, ‘대표가 뭐 이래’ 생각 들지 않았던가요? 옆 회사 일로 상암 갔을 때조차 지나치지 못하고 당신 불러내 술 얻어먹었습니다. 참, 주책입니다. 팬 심, 그렇게 무섭더군요. 하하, 상황이 어떤지,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걸 잘 알 당신께 나는 술 취해 ‘이래라 저러자’ 되도 않은 말 많이 늘여놨을 겁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와중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름만 진수인 게 아니었습니다. 촛불에서 반짝 빛나고 꺼진 한 방의 말꾼 진수도 아닌, 진지하고 우직하며 차분하고 또 생각 많은 오래갈 진수였습니다. 

당신의 그 진수 보고 싶다는 말입니다. 술 먹고 하는 소리가 절대 아닙니다. 맨정신으로, 냉정하게 말하는 겁니다. 진수를 보여주시오. 당신 회사 일 참 갑갑하게 흘러갑니다. 어찌 풀어내야 할지, 많은 게 꼬였습니다. 무슨 답이 쉬 나오겠습니까? ‘파업’ 하지만, ‘파업’이라 외치고 그러다 진짜 파업하다 보면, 그러면 문제가 다 잘 해결될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나요? 뭐가 문제인진 누구나 다 알 수 있지만, 뭐가 답인지는 아무도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많은 고민, 여러 부담이 따릅니다. 몇 안 되는 수만 남았습니다. 허나 어쩝니까?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누가 대신할 수도 없는 노릇. 오직, 당신들이 선택하고 오직 당신이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곡을 찌르기. 쫓기지 말고, 쫓지도 말고, 다시 또 자신 있게 나서세요. 어느 길이 되건, 그게 뭐가 되건, 자신 있게 앞서면 됩니다. 모두가 믿고 따를 겁니다. 그 어둠 빛나던 촛불의 무리를 주도하던 멋진 당신이 아닌가요. 수고하세요. 그래서 일 다 잘 풀리고, 내가 돌아가면, 그때 술 한 잔 이 선배가 사죠. 그리해 봅시다. 진수 씨, 화이팅입니다!      

전규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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