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강의 기고 칼럼을 꼼꼼히 읽는다. 누가 읽어도 뜻이 금방 전달되도록 쉽게, 수사 없이 쓴 글이다. 상황이 그렇게 비상하기 때문일 게다. 전쟁하려는 국가 내부의 유력 비판매체를 통한 전쟁반대 메시지의 다급한 전달시도다. 그렇다. 젊은 소설가의 글은 미래를 갈구하는 생명체의 명확한 반전구호다.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다수의 상식 즉 공통감각을 체제 내부로부터 짧게 서둘러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은 무겁고 우울하다. 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 정확하게 번역하면, ‘미국이 전쟁을 떠들 때, 남한은 몸서리쳐 진다’ 쯤이 되겠다. 누가 뽑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제목이다. 좀 더 정밀해질 필요가 있다. 미국이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위기의 극우 트럼프 정권, 트럼프 배후의 위험한 군부·군산복합체·극우 자본국가 세력이 전쟁을 떠드는 주체다.

호전의 수사학에서는 트럼프에 한 치 밀리지 않는 청년 김정은과 그 배후의 노회한 실전의 군사들을 빼놓는다면, 실감나는 전쟁위협에 몸서리쳐 할 것은 비단 대한민국이나 남한의 ‘국민’들만이 아닐 것이다. 똑같이 전쟁을 치른, 수많은 생명이 산산 조각난 한국전쟁을 생생하게 기억할, 이북 인민들을 빠트릴 수 없다. 그들도 지금의 난무하는 전쟁언어들을 몸서리쳐 하면서 지켜보고 있을 게 틀림없다. 설혹 하는 수없이 호전의 구호를 외치고 있더라도.

'화염과 분노' 발언 후 설전으로 더 격화한 한반도 긴장(PG) Ⓒ연합뉴스

‘승리로 끝나는 전쟁 시나리오와 같은 것은 없다(There is no war scenario that ends in victory)’는 부제가 붙었다. 유감스럽게도, 틀렸다. 전쟁하면 ‘우리’가 승리한다는 광기의 시나리오를 믿는 세력이 엄연히 백악관 안팎에 존재한다. 위기에 처한 트럼프 정권이다. 미국 주류여론이 그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런 상태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은 위기에 빠진 그들을 구해줄, 국면전환의 승리로 끝날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그런 실리적 계산술이 달린 ‘대북 군사 옵션’의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를 주창하는 트럼프 일당의 전쟁정치 탓에 몸서리쳐 지는 한반도 위험현실 속의 우리인 셈이다. 전쟁나면 죽게 될 약한 생명체 우리에게 그들의 시나리오는 절대 엄포가 아니다. 전쟁광의 수사는 그 자체가 전쟁선포, 교전개시다. 말장난이 몸싸움으로 비화하기 십상인 잠재적 전쟁상태. 그 속의 우리는 과거 실제적 전쟁 상황을 상기하면 당장 몸서리쳐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강이 맞다. 예민한 작가의 과민반응이 결코 아니다. 물리적 전쟁과 수사적 정치의 아슬아슬한 경계. 그게 현 한반도 위험현실의 핵심이며, 그 당사자 중 한 명이 바로 트럼프라는 점에서 그녀가 직접 나서 경종 울릴 정도로 현 상황은 비상하다. 승리를 내세운 당신들의 정신 나간 전쟁 시나리오는 한반도 남북 우리 모두의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기에, 정신 있는 우리는 당신들의 위험한 전쟁 놀음에 단호히 반대한다. 한반도로의 진군을 당장 멈추라.

한강은 자기책임을 성실히 수행했다. 이제는 우리 몫이다. 냉철한 반전의 텍스트들을 유명 소설가는 물론이고 무명 시인, 아마추어 저널리스트 등 모두 글쟁이가 되어 써야 한다. 뉴욕타임스와 같은 해외 매체에 게재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국내외 여러 채널을 통해 같은 메시지를 회자시켜야 한다. 한반도를 옥죄는 불한당들의 무력시위, 호전광들의 실전배치를 뚫고 반전평화의 구호를 집단으로 생산·창작해 내는 반전의 글쓰기 책무.

과장된 호들갑인가? 트럼프의 언술은 무기를 팔아먹기 위한 상술일 뿐인가? 차분해야 한다. 냉정해야 한다. 그러나 안위의 냉소는 금물. 도둑처럼 우리 턱밑에 다가와 있는 전쟁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정확히 눈 돌리려 비장의 언어로 막지 않으면 안 되는 “태풍 전 고요”, 전쟁직전상황인 게 맞다. 미 핵 추진 항모전단이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진격 중. 영국이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비해 F-35B 탑재 항공모함의 조기투입을 고민 중.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하면 일본인 직접 대피시킬 것”이라는 아베의 말은 근거 없는 망언에 불과한가?

소설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찍은 미국사회조차 그의 끝없는 전쟁위협에 심각한 환멸, 심대한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다시 나서 제2의 한국전쟁 발발을 막기 위한 방북을 추진 중이라 한다. 트럼프의 무모하고 위험한 언사가 미국을 제3차 세계대전의 위험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의 경고는 또 어떠한가? 뉴욕타임스와 같은 매체의 반대 목소리도 이런 문맥에서 읽어내야 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만 맡길 일인가?

한국 정부, 제도정치권은 현 비상사태 해결을 주도하기에 역부족이다. 무력하기 짝이 없다.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나선 안 돼”가 고작. 마치 남의 일을 말하는 듯하다. 무기력한 언사. 한 마디로 힘이 없음을 반증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방문해 ‘한반도 전쟁 절대 안 된다’ 말할 거라는 여당 대표는 어떠한가? ‘한반도 전쟁 절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미 측에 전달했다며 성과를 자랑하는 야당 유력 국회의원의 보도자료에서 위안을 얻을 것인가?

가당치 않은 일. 상황은 그들의 허무한 정치력, 저들의 허술한 외교술로서는 감당이 되지 않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무기력한 국가대의정치에 계속해 우리의 생명을, 미래를 위임할 텐가? 가만히 있을 건가? 재난상황이다. 움직일 때다. 다시 또 직접행동이 필요하다. 글과 말로 무장해, 언어라는 무기를 날카롭게 벼려, 반전의 싸움과 평화의 쟁투에 실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한강은 그런 선동의 글을 세계에 써냈다.

사회보호, 생명보존, 평화복구의 글쓰기 운동으로 반전의 한강을 잇자. 그녀가 촛불혁명을 언급했다. 평화를 위한 우리의 소중한 집단체험으로 소개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촛불혁명을 지피지 않으면 안 된다. 광장을 수놓는 희망의 시와 생명의 그림들로써, 평화의 연극과 반전의 노래들로써, 어둠의 전쟁광과 호전의 불한당들에게 우리가 직접 뜨겁게 맞서야 이긴다. 그게 우리의 승리, 미래의 희망으로 끝나는 평화적 해결의 유일한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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