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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해야 할 ‘우리’ 언론학자들[전규찬 칼럼]
전규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7.09.12 07:49

선생님 안녕하시죠? 그동안 많은 일들이 급박히 진행 중이라, 별고 없으셨는지 여쭙기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밀려있던 온갖 방송적폐청산, 서둘러 이뤄야내야 할 공영방송개혁을 위해 매일 바쁘시리라 생각됩니다. 모두가 이렇게 한창 바쁠 때, 할 일은 더욱 많아졌는데, 혼자 슬쩍 빠져나와 여유자적하고 있으니, 선생님은 물론이고 현실변화를 위해 적극 움직이는 동료 연구자들에게도 여간 송구스럽지 않습니다. 멀리서 성원하고 멀리서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걸로 어찌 충분하겠습니까. 생각과 행동 사이, 날카로운 비판의 언어와 진지한 성찰의 글로라도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참여토록 하겠습니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맡던 유의선 교수가 마침내 사표 낸 소식 들었습니다. 박근혜 정권 내내 구설에 오른 선배언론학자십니다. MBC 보도 별 문제없다고 해 최승호 피디와 한판 붙었던 분이죠. 자신은 학생교육을 맡은 학교선생이라는 점을 사퇴의 이유로 꼽더군요. 당황스럽습니다. 불만스럽습니다. 최피디가 “이대 학생들 가르치는 사람”이 이러면 안 된다 떠드니, 최근엔 파업하는 '이대출신 MBC 언론인'들마저 직접 나서 물러나라 비난하니, ‘이대교수’로서 부담스러워 학교명예를 생각해 처신했다는 건가요? 덧붙인 ‘관리감독기관 이사로서의 책임’이라는 말에서 일말의 회한을 찾아야 하는 건가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본인이 가담한 MBC사태에 대한 학자로서의 책임감, 본인이 초래한 공영방송 붕괴상황에 대한 연구자로서의 책임의식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유교수는 학생교육 맡은 이대선생 자격으로 방문진 이사가 된 게 결코 아닙니다. 언론학계를 대표하는 언론학자로서, 방송학 전문식견을 앞세워 이사가 된 겁니다. 그렇다면 MBC는 물론이고, 공영방송 나아가 민주주의의 파괴에 일조한 책임에 대해 언론학자로서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현장 언론인들에게, 일반 시청자·시민들에게, 그리고 언론학을 함께한 동료학자들에게 부끄럽다, 책임이 크다는 말을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아, 저조차 이렇게 부끄러운데요. 큰 책임감을 느끼는데요.

선생님, 저는 유의선 교수의 씁쓸한 퇴진을 지켜보면서 박근혜 정권 내내 문화예술위원회 의원장을 맡았던 박명진 교수의 참혹한 말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문화연구 제 1세대였던 노교수가 블랙리스트사건이라는 엄청난 국가검열비리의 한복판에 서있었죠. 끝까지 자리를 버티다 정권이 바뀌고 겨우 그걸 내놓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노욕이라 욕했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최악에 이르러 억지로 물러날 때, 그분 입에서는 과연 어떤 변명의 소리가 나왔던가요? 언론학자로서 잘못되었다, 문화연구자로서 잘못했다, 지식인으로서 옳지 않은 행동을 해 부끄럽게 물러난다는 반성을 결코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부끄러운 건 저였습니다. 

▲언론학자들과 언론시민단체는 5일 낮 12시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방송 독립 투쟁을 지지하는 언론학자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이날 125명의 언론학자들이 이름을 올린 성명서를 발표했다.

책임질 것도, 명색이 언론학을 한다는 우리입니다. 지난 언론정보학회 정기학술대회 기억나시죠? 선생님은 어느덧 학교를 은퇴한 채 학계의 재생산을 고민하는 선배교수로 와 계셨습니다. 선생님 책으로 비판언론학 공부하기 시작한, 선생님 연구발표를 통해 한국 언론현실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다듬기 시작한 후배로서 감회가 참 컸습니다. 벌써 삼십년 시간이 흘렀군요. 과연 그동안 우리는 한국사회 온갖 모순에 직면해 치열하게 실천하고 열심히 공부해 왔던가? 자유언론, 언론민주가 가능토록 양심으로 현장을 지키면서 책임 있게 언론학계를 키워 왔나? 그러하지 못해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만 맴돌았습니다.

그날 학회에 최승호 피디가 참석해 자신이 만들던 <공범자들> 몇 장면 잠깐 보여주었죠? 우리 보라 일부러 그런 것만 골랐는지, MBC 정권 당시 방문진과 KBS 이사장을 맡았던 김우룡 교수, 유재천 교수를 간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같이 보던 동료들도 참담하긴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수치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언제 무슨 짓을 했는지, 그 과거의 행적은 결코 망실되거나 망각되는 법 없이 하나하나 영화의 역사 속에 소환되고 있었습니다. 정권부역의 역사다큐멘터리에 적나라하게 기록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추악한 꼬락서니입니다. 아, 너무나 부끄러운 저입니다. 환멸스러운 우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날 총회자리에서 저는 유의선·박명진뿐만 아닌 저의 책임을 폭로하고 당신들의 반성을 요구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과를 물었습니다. 오랜 시간, 언론자유를 지키기는커녕 자유언론을 탄압하는 언어와 이념, 제도를 고안하기에 바쁜 저였습니다, 공영방송을 발전시키는 운동에 적극 결합하기는커녕, 그것을 진압하고 멸망케 하려는 정부정책에 자문하려는 당신들이었습니다. 종편 등 매체자본의 연구를 프로젝트 수주 받으려 얼마나 혈안들이었습니까? 학회의 세미나는, 심포지엄은 또 얼마나 그들의 돈으로 번지르르해져 갔습니까?

우리의 언론학은 권력에 순종적으로 기생해갔고, 우리 언론학자들은 자본에 순순히 타락해갔습니다. 무력과 무능, 무관심이 판을 칩니다. 민주주의를 원하고 공화국의 복구를 갈망하는 시민·시청자의 요구에 반해, 우리는 침묵과 방기로서 사실상 언론주권을 압살하는 국가권력에 가담하고 동조해 왔습니다. 역사의 배반자, 민의의 배신자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정확히 우리의 오랜 몰골이었습니다. 촛불이 불타오르기 전, 우리는 바로 이런 꼴인 게 맞습니다. 그런 지경에서 박명진과 유의선, 유재천, 김우룡 교수가 진출하는 겁니다. 그들은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어쩜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길 원했거나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반성하지 않지만, 우리라도 용서를 구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환멸의 과거사에 대해 언론학자 125명이, 최근에는 언론학회와 방송학회, 언론정보학회의 회원 467명이 성명을 냈습니다. “우리는 학문적 자유와 양심을 걸고 지배구조와 인사권을 매개로 공영방송을 정권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공영방송이 불공정하고 정권 친위적인 태도를 보였다”면서, “공영방송의 핵심 가치인 독립성과 공정성, 그리고 언론자유를 훼손해온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장 등은 즉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전에 통렬한 반성문을 끝도 없이 써야할 우리입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되었습니다. 유의선, 박명진, 유재천, 김우룡 교수가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함께 한 일들을 우리가 결코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우리는 함께 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승호 피디의 타이틀이 정확히 맞습니다. 우리 모두는 공범자들입니다. 한 통속이었습니다. 그러하니 우리는 우리 언론학자들이 한 짓에 관해 정확히 고백하고 기록에 남겨 역사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하지 않으면 이 추태는, 저 구태는 또 반드시 반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런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막는 일, 그게 지금 우리가 지금 할 최소한의 도리이지 않겠습니까? 용서를 구하면서 말이죠. 

선생님,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불철주야 방송개혁에 바쁘실 텐데, 어찌 이 글 읽을 여유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떠나오기 전 잠깐 뵀을 때 주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결코 정권 눈치를 보지 않겠다, 정권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 정권 코드에 맞추지 않겠다. 공영방송을 복구하는 데, 방송독립을 이루는 데, 언론 재민주화를 이뤄내는 전념하겠다. 그 초심, 진심 끝까지 잃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비판언론학자가 여전히 역사진보에 할 일이 있음을 증명하면 좋겠습니다. 언론학이 자본국가의 권력에 반해 민주주의에 기여할 길이 있음을 입증해주십시오. 모두의 희망대로 꼿꼿이 가서, 실천적 언론학의 희망을 다시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전규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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