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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 ‘응답의 책임’ 물으니 답하라[전규찬 칼럼]
전규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7.11.01 09:07

지난 27일 열린 법제사법위 대검찰청 국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소위 ‘논두렁 시계’ 사건이 집중 조명될 거라는 전망기사들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었다. ‘논두렁 시계’ 사건. 모두가 생생히 기억하는 사건이다. 2009년 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대검 중수부의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보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정확히는 5월 13일, SBS 8시 뉴스에 ‘권양숙 여사, “1억 원 명품시계 논두렁에 버렸다”’는 보도가 나온다.

‘논두렁 시계’ 사건이 전파를 타는 순간이다. 특종이다. 말 그대로, 역사에 남을 뉴스가 SBS 8 뉴스를 통해 최초로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명품시계를 받았는데, 이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되자 그는 아내 권양숙 여사가 집 근처 논두렁에 버렸다고 시인한다. 이를 확인하려 검찰이 곧 권 여사를 불러 조사할 거라는 내용의 기사다. 출처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는데, 해당 기자는 검찰 내부 취재 과정에서 얻은 거라 항변했다는 기억이 난다.

2009년 5월 13일 SBS 8시뉴스 '시계, 논두렁에 버렸다' 보도 화면 캡처

그런데 지난 23일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재미난 사실을 폭로한다. 2009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수사가 한참 진행될 무렵, 국정원 관계자가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고받은 대화내용. “고가시계 수수 사건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므로 언론에 흘려 적당히 망신 주는 선에서 활용하라.” 의견, 지시 사항이 전달된다. 실제로, 그 다음 날 KBS에 노 전 대통령 ‘명품시계 수수’ 보도가 나간다. KBS뉴스가 검찰 여론제조의 부수적 도구, 국정원-검찰 언론조작시스템의 기능적 장식이 되는 순간이다.

대단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예외적 음모도 아니다. KBS와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주류상업매체 모두가 기댄 뉴스제작의 관행적 메커니즘이 언제든지 그런 일을 빚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5월 13일자 SBS ‘논두렁시계’ 보도는 어떨까? 진짜로 국가권력의 여론조작 의지와는 무관한 일일까? 텍스트를 실증적으로 분석해 본다. 스튜어트 홀(S. Hall)의 분석틀을 채용해서다. 누가 뉴스의 실질적 화자인가? 홀은 대다수 주류 뉴스의 ‘일차적 규정자(Primary Definer)’가 검찰, 경찰 등 국가권력기관임을 일찌감치 밝혀낸 바 있다.  

저 SBS 기사에서 누가 실체적으로 말하고 있는지는 주어를 세어보면 금방 확인된다. 앵커의 말까지 포함하면, ‘검찰’이라는 주어가 짧은 꼭지 안에 무려 여덟 번이나 반복된다. 검찰이 밝히고, 검찰이 전하며, 검찰이 말한다. 검찰이 확인하고 또 검찰이 계획한다. 한 마디로, 검찰이 주체다. 이 모 “기자의 보도”라 시작되는 이 뉴스는 검찰이라는 유력 정보원에 의해 사실상 발화되고 있다. 기사를 읽는 기자, 소개하는 앵커, 전하는 SBS의 역할은 그럼 뭔가? 홀은 간단히 부수적, ‘이차적 규정자(Secondary Definer)’라 규정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네이버 뉴스를 검색해 보시길. 글쓴이는 이 두 보도를 미디어문화연구 교재의 비판적 뉴스분석 사례로 꼭 쓸 테다. 눈으로 검증된, 국가권력에 의한. 보도기관을 통한, 뉴스생산 시스템의 한국적 공식 같기 때문이다. 중요한 실례다. 이런 이유로 글쓴이는 검찰청장 국감질의를 예의주시했다. 과연 국정원-검찰 언론플레이의 구체적, 추가적 내용이 밝혀질까? 어떻게 ‘논두렁시계’ 뉴스는 만들어졌나? 법사위 야당의원이 흥미를 부추겼다. “당시 수사주체가 대검 중수부였으니 대검찰청 국감에서 언급하는 게 맞다.”

여당 법사위원도 “수사진행 중인 사건이라 대검이 자료제공은 안 하겠지만 중수부가 관여됐으니 물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감 직전에는 관련 기사가 꽤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27일 법사위 대검찰청 국감 이후 막상 쏟아져 나온 관련 기사에서 해당 내용을 다룬 걸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무슨 일인가? 국감에서 아무도 묻지 않은 것인가? 왜? 이 전 중수부장이 국정원 적폐청산TF 조사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지금 밝히면 다칠 사람이 많다”며 구체적 진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무슨 의민지 궁금하지만, 그걸로 납득되지는 않는다.

국회의원들을 물고 늘어질 순 없다. 왜 안 물어? 검찰, 국정원, 국정원 개혁위에 가 따져 알아낼 수도 없는 일. 갑갑한 노릇이다. 결국 여기서 멈춰야 하나? 아님, 앵커에게, 기사 쓴 기자에게 쫓아가 물어 봐? 어떻게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한다. 먼저, KBS의 경우, 당장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이다. 고대영 사장의 국정원 금품수수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공교롭게도 그가 2009년 당시 바로 KBS 보도국장을 맡고 있었다. 누가 왜 어떤 과정을 통해 국정원-검찰의 모의에 끼게 되었는가?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한다.

KBS 뉴스를 통한 선전공작 가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 폐망한 공영방송, 복구할 공영방송의 문제다. 때문에, 글쓴이는 이에 대한 KBS 이사회와 방송통신위원회의 특별한 책임을 묻는다. 공영방송이 검찰에 부역하고 KBS뉴스가 국정원 복무수단으로 전락한 문제에 대해 책임지고 당장 진상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국정원이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니 지켜볼 일이 결코 아니다. 검찰이 연관된 일이기도 하기에, 오히려 진상을 따지고 ‘책임을 묻는 책임’을 이사회와 방통위도 함께 맡아야 한다. KBS는 어떻게 국정원 뉴스공작 채널이 되었는가?

상업방송 SBS는 어찌 할 건가? 먼저, 속단은 금물. 해당 기자의 상식과 양심을 믿고 싶다. KBS 보도와 다른 정황이 분명 있다. 그러나 진정한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제대로 된 저널리즘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지난 경험을 진지하게 돌아볼 걸 부탁한다. SBS 혹은 공영방송의 모든 기자들도 귀담아 들어주면 좋겠다. 제발, 권력의 입만 쳐다보며 그대로 받아 적지 마라. 저들의 말을 옮기기 급급한 리포터, 기레기가 되지 마시라. 촛불혁명이 끝장낸 구태. 변화의 책임을 짊어져라. 그러기 위해서도 차갑게 복기해 보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러면서, SBS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요구한다. '응답의 책임(Responsibility to Respond)'. 그때 어떠한 일이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었던가? 철저히 자체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경위를 조사해 보고하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불거진 의혹과 논란을 쉽게 피해갈 수 없는 SBS다. 고대영 사장이 국정원 직원들과 접촉하던 바로 그 시기, 당시 하금열 사장 또한 국정원 직원들과 만나고 있었다는 폭로가 이미 나온 상태다. 안팎의 조응이 묘하게 일치한다. 이 반복되는 패턴을 어느 생각 있는 시청자가 모른 척 넘어가 주겠는가?

국정원이 사장에게 ‘적극 보도’를 요청한다. 그런 수상쩍은 정황에서 5월 13일 문제의 뉴스가 나간다. 단순한 우연? 이를 기자와 데스크의 결정사항으로, 오비이락의 오해로만 해명하면 논란은 쉬 잠재워질 텐가? 절대로 그러하지 않을 일. 의혹은 깊어만 진다. 하금열 사장은 이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영전했다. 고대영이 한참 뒤 사장으로 영전한 것과 똑같다. 두 사람은 입을 맞춘 듯 모든 걸 부정한다. 검찰에서 모든 게 다 밝혀질 것인가? 방통위가 나설 수도 없고, SBS 논란은 하는 수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인가?

그러면 안 된다. SBS는 더욱 추락한다. 그걸 누가 원한다는 말인가? 스스로 나서는 게 정답. 진상조사특위를 SBS는 당장 구성해야 한다. 사측과 노조가, 기자협회가, 그리고 외부의 신뢰 가는 학계와 시민단체가 합세해 ‘응답의 책임’을 수행할 단단한 단위를 당장 꾸려야 한다. 그래서 소상히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그것만이 SBS가 사회에 책임지는 언론매체로 다시 태어나는 길. 신뢰를 잃어버린 저널리즘을 복구하고 공공적 민영방송의 초심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다.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운명, 역사의 명령을 따르는 게 순리다. 그럴 것인가?

전규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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