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허찬행 칼럼]

“개소리꾼은...거짓말쟁이와 달리 진실의 권위를 거부하지도, 이에 맞서지도 않는다. 전혀 신경쓰지 않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진실의 더 큰 적은 거짓말보다 개소리(bullshit)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원제 How Bullshit Conquered the World)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나와는 정반대의 의견, 아무리 듣기 싫고, 동의하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관점과 의견을 인정하는 것이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다. 하지만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의 유리창을 깨부수며 진입하고, 선관위를 점거한 12월 3일 밤이 시민들에게 아직도 생생한데 대통령이란 자의 입에서 나온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란이냐’, ‘경고성 계엄이다’를 비롯한 수많은 ‘궤변’이나 ‘헛소리’마저 서로 다른 의견으로 인정할 수 없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표지 이미지/ 다산초당(다산북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표지 이미지/ 다산초당(다산북스)

자명하게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이 있다. 바로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이며, 반사회적인 표현들이다. 탄핵 심판을 진행하는 헌법 재판정에서조차도 시종일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대통령을 시민들은 똑똑히 보고 기억한다. 그를 추종하는 집단들이 집회 현장에서 내뱉는 입에 담기 어려운 재판관들에 대한 욕설과 혐오를 비롯한 협박성 발언, 헌법기관이나 사법기관을 ‘쳐부순다’라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폭력적인 언어들, 법원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키는 상황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 일부 법조인, 법조인 출신 정치인,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수사기관의 수사를 비롯해 법원의 판단까지도 ‘불법’이라며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의 언어는 ‘다름’의 차원인 의견이나 관점의 차이가 아닌, 맹목적 혐오와 폭력적인 광기 어린 발언들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객관주의, 대립되는 사안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다룬다는 공정성과 같은 저널리즘의 원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극렬한 선동의 폭력적 말들을 주장하는 정치인과 탄핵 반대 지지자들의 발언마저도 그들이 그렇게 발언 내지는 주장했다는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이 반복적으로 언론보도에 상당한 비중을 내주고 있다. ‘기계적인 균형’이라는 오랜 관행에서 반민주적이고 반사회적인 발언들을 마치 사회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다른 관점’이나 ‘다른 의견’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언론이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언론 규범이나 기존 관행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폭력을 선동하는 극렬한 이들의 발언대로 전락하고 있다. 다시 해당 책의 한 구절을 더 인용하자면

개소리꾼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유리한 발언을 할 뿐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개의치 않는다…언론매체는 그들의 문화적 규범 때문에, 특히 정치적 논쟁이 벌어질 경우 양쪽 모두에게 똑같이 귀 기울이려는 뿌리 깊은 관행 때문에 개소리의 맹습에 맥을 못 춘다. 개소리꾼을 상대하는 주류 미디어는 칼을 들고 총에 맞서는 격일지도 모른다.

언론은 논리나 근거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정치적이든 돈벌이든 무언가 자신들이 좇는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극렬한 발언들을 쏟아내는 자들의 발언대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사상 초유의 ‘불법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의 혼돈 속에서 언론 스스로의 규범들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우리 언론사는 보도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주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겠다’와 같은 규범적 선언이 필요하지 않을까.

♣ 허찬행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 제 1050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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