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노하연 기자] 12·3 내란 이후 비상계엄 옹호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를 다루면서 양측 주장을 병렬 보도하는 것은 언론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고치자는 논의가 부족한 상황이다.
12일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민언련 특별칼럼에서 ‘속기’ 저널리즘을 넘어서기 위한 세 가지 실천방안을 제안했다. 박 회장은 “따옴표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에서 이따금 공허함을 느낀다. 문제의식은 타당하지만, 같은 지적을 되풀이할 뿐 실천적 제안은 드물다”며 ‘어떻게’ 고치자는 논의가 구체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옴표 저널리즘’이란 특정 인물의 발언을 큰 따옴표 안에 넣어 그대로 전달하는 보도 관행을 말한다. 이는 객관성을 이유로 저널리즘의 책무를 방기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박 회장은 “현재의 뉴스 생산 관행에 젖어 있는 기자들이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논의가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뉴스에서 당장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회장은 내란사태 이후 뉴스가 따옴표 저널리즘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용문을 줄일 것 ▲문제적 발언을 한 당사자에게 더 따져 물을 것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표식을 남기고 일방적 메시지는 주석을 달 것을 제안했다.
박 회장은 인용문을 줄이면 더욱 비판적인 보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사례로 미국 공영방송 PBS <뉴스아워>(NewsHour) 보도와 윤석열 대통령의 최후변론을 다룬 MBC <뉴스데스크> 보도를 거론했다.
지난달 26일 <뉴스아워> ‘트럼프와 머스크, 첫 내각 회의에서 연방 공무원 감축 계획 예고’ 보도는 리포트를 구성하는 21개의 문장 중 ‘누가 ~라고 말했다’는 인용을 3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리포트에서 직접 인용을 줄이자 기자는 회의장에서 드러난 일론 머스크의 위상을 관찰했고, 공무원 해고 계획의 상황을 짚었으며, 트럼프의 새로운 이민 비자 프로그램과 그의 과거 입장까지 제시해 설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뉴스데스크> ‘윤 대통령, 68분 최후진술‥사과도, 승복 약속도 없었다’ 리포트는 인용문을 한 차례도 쓰지 않았다. 박 회장은 “윤석열이 법정에 늦게 나와 국회 측 대리인단 변론을 청취하지 않은 점부터 짚었고, 그가 말하지 않은 계엄으로 초래된 환율 급등과 투자심리 위축을 지적했으며 사실상 ‘착한 계엄론’으로 그가 국민에게 2차 가해를 했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따옴표 사용을 줄이면 취재원은 프레임과 의제를 주도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워지고, 기자는 사안의 의미와 맥락을 드러내기 쉬워진다”며 “발언자의 말을 그대로 중계하지 않고 근거를 의심하고 모순을 지적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박 회장은 반대로 취재원의 말을 실어나르는 관행을 고수한다면 “사안을 정의하는 언론의 권력을 취재원에게 내어주고, 기자는 비판적 감시자가 아니라 관찰자의 입장에 머물게 된다”고 덧붙였다. 인용을 줄일수록 깊이있고 비판적인 보도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박 회장은 문제적 발언에 대해 더 따져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5년 영국 총선 당시 BBC는 극우 정당인 영국독립당(UKIP) 나이젤 패라지 대표에게 집요하게 질문했다. 선거기간 당시 BBC기자들은 패라지 대표에게 “지난번 공약도 지키지 않았는데, 이번 공약 발표를 왜 믿어야 하나”고 물었고, 선거가 끝난 후에도 “정말로 사임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휴식 후 복귀할 계획인가”라고 질문했다.
박 회장은 “극단적 목소리라고 배격하지 않되 그들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도전함으로써 정당의 의제를 수동적으로 매개하지 않았다”며 “비판적 질문을 계속 던지며 그들의 선거 메시지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27일 민주언론시민연합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공동 주최한 <내란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회복과 보도준칙 마련> 세미나에서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김재영 한국PD연합회장은 “문제적 주장이라고 공론장에서 배제하면 그만인가”라며 “이들의 주장을 다루되 (언론은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국민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탐사보도와 토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표식을 남기고, 일방적 메시지에는 주석을 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발언의 신빙성이 의심스러운데 시간 제약상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검증되지 않은 주장’(unsubstantiated claim)이라는 표현으로 시청자들이 진실로 믿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발언 자체가 허위는 아니지만, 그 말만 전했다가는 사안의 본질을 흐릴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또 “방송뉴스는 매체 특성상 사운드바이트(육성 녹취)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적절한 맥락 설명과 추가 분석을 통해 뉴스메이커들의 일방적 메시지만 전달되는 것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발언은 시시각각 쏟아지고 뉴스는 곧 내보내야 하는데, 모든 발언의 진위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서도 “그렇다고 지금의 관행에 머물 것인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손을 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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