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나토 사무총장 등과 통화를 하면서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실제 전선 투입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라고 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28일 밝힌 내용이다. 이후 나토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비슷한 맥락의 사실 관계를 연이어 확인했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하는 현지 분위기는 상당히 급박하게 느껴진다.

한국 정부는 살상무기 지원과 참관단 파견 등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나토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나토에 파견된 우리 정부 대표단이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해 전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할 거라고 했다. 분쟁에 대한 개입의 심도가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으로 읽힌다.

연합뉴스TV 방송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TV 방송 화면 갈무리

한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싸움에 끼어들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북한이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핵 미사일 기술 등을 이전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 거래는 파병을 한 시점에서 이미 성립이 되는 거다. 기술 이전이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처럼 되는 게 아닌 이상, 한국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서 북한과 러시아 간 거래 조건이 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차라리 이 대목은 대러외교 실패 등의 연장선에서 평가할 문제다.

지금 시점에선 가치외교나 한미동맹의 차원에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할 문제다. 미국은 대선을 며칠 남겨 놓지 않은 상태다.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선 중동 문제로 그렇잖아도 골치가 아픈 상황에 전선이 넓어지는 것은 달갑지 않다. 상대 당 후보인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에 끝내지 못한 바이든 행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젤렌스키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움직임은 빌미를 주는 효과를 가져온다.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을 결정한 시점에서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와 해리스 후보로서는 꽤 곤혹스러운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최소한 앞서 나가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미 대선이라는 빈틈을 노려 우크라이나와 한국 정부가 제각기 나름의 자기 구상을 실현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올 법한 상황이다. 최근 보도를 보면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파견을 검토하는 참관단에는 대북심리전문가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북한군 포로를 직접 심문하고 탈북 지원까지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28일 기사에서 이러한 정부의 구상에 대해 “파병을 공식 인정하지 않는 북한 당국을 압박하는 한편, 북한 병력의 탈북을 유도해 한국으로 송환하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어느 경우든 김정은 정권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썼다.

언론에 인용되는 전문가들은 북한 병사들이 최전선에 투입될 경우 지리한 고지전 국면에서 사실상 ‘총알받이’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포로로 잡힌 북한군 병사들이 대거 국내로 송환되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이는 최근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대립 구도 때문에 사분오열 된 보수층이 뭉치는 계기가 되리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게다가 앞서 언론의 분석처럼 이런 상황이 북한 김정은 정권에 ‘치명타’가 된다면 추가적인 도발이나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외부의 적이 상정될 경우 아무래도 내부에는 구심력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연합뉴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연합뉴스)

설마 거기까지 생각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최근 국회에서 우연히 찍힌 사진 한 장이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이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면 우크라이나군이 북한군에 미사일 공격을 하도록 한 후 이 영상을 심리전 용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담겨 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나’ 싶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 한기호 의원의 이런 접근은 러시아-우크라이나전 등에서 관측되는 전쟁의 최신 트렌드(?)이기도 하다. 한기호 의원은 연락관을 파견하자는 제안도 하는데, 우크라이나군과 정보 및 작전 상황과 관련해 더 면밀하게 소통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일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좀 더 노골적인 남북 간 대리전을 통해 무언가를 관철하고 싶은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인데, 그게 무엇이겠는가?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윤석열 정권은 위기다. 대통령 본인이 자초한, 정권 내부로부터 불거진 위기다. 특히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온갖 의혹은 매일같이 새로운 뉴스가 갱신되는 상황이다. 야당은 탄핵-장외투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특검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후 “수사는 특검에 맡기자”고 하면서 민생 이슈로 쟁점을 옮기는 게 정공법이다. 그걸 하지 않으려다 보니 우크라이나까지 논쟁의 전장이 확장되는 것 아니겠나.

이런 지적을 하면 대통령실은 “북한의 파병부터 비판하라”고 하는데, 논리의 ABC도 갖추지 못한 대응이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규탄하는 것과 우리 정부 대응의 적절성을 따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후자를 논하는데 전자를 들이미는 걸 일반적으로는 ‘논점이탈’이라고 한다. 이런 정신이 없는 참모부터 교체하고 머나먼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국내 정치에 있어서의 정공법으로 문제 해결의 단초를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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