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정국이 꽉 막혔는데 대통령은 여름 휴가를 간다. 답답하다. 보수언론은 국회 다수인 야당 탓을 한다.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논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연히 야당에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윤석열 정권이다. 정권을 잡았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남탓만 한다. 황당하다.
가령 방통위를 둘러싼 논란을 보자. 윤석열 정권과 보수언론은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에 대해 MBC 등이 야당에 유리한 언론 환경을 만들고 있으므로 야당이 이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탄핵소추와 관련해서만 보면 그런 측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널리즘 환경 전체로 보면 어떤가? 보수언론은 종편을 운영하는 이해당사자이다. 좀 더 중립적인 시각의 신문 논조를 참고해보자.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 위원장과 대화하며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408/309559_214318_5419.jpg)
한국일보는 5일 사설에 이렇게 썼다.
“대통령실 행보를 보면 이사진 교체를 통한 공영방송 장악 외에 방통위 본연의 역할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 위원장이 ‘거대 야당의 탄핵소추라는 횡포에 당당히 맞서고자 한다’며 버티기에 들어간 건 취임 당일 전광석화처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KBS 이사진 교체라는 ‘임무’를 완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일보는 야당도 비판했지만, 정부의 책임을 분명하게 부각했다. “구글·애플의 인앱결제 강제 과징금 처분, 데이터 주권 보호책 마련,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 망사용료 문제 등”의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수개월간 ‘식물 방통위’로 방치하는 건 대통령실도 정치권도 무책임의 극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실은 앞서 야당 추천 위원 임명을 거부해 화를 초래한 것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정치권은 국회 몫 3명을 조속히 추천하고 대통령은 즉각 임명하기 바란다”는 거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야당은 국정에 대해 절반 이하의 책임만 진다. 결국 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은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책임이다. 야당 탓만 하는 건 시효가 지났다. 야당 탓하기 싫었으면 지난 총선을 이겼어야 했다. 그런 중요한 승부처에서 ‘역대급 패배’를 한 게 윤석열 정권과 지금의 여당이다. 총선에 졌으면 태도를 바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합의가 가능한 틀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런 모습은 전혀 없었다. 한국일보 역시 다른 사설에서 이 점을 지적한다. “거대야당의 완력 탓만 하는 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무책임하다. 끝없는 정쟁의 고리를 끊는 것 역시 대통령의 중요 책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휴가 기간 동안에 “야당과의 대치, 대결 정국을 어떻게 완화하고, 타개해 나갈지에 대한 정치 구상”을 마련해야 하고,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여야 당대표와의 회동 등 정치 교착 해소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세간의 분류법대로 하면 이른바 ‘진보언론’이 아니다. 아무리 편가르기에 능한 집권 세력이라도 이런 조언은 깊이 새겨야 한다. 대통령의 태도가 바뀔까? 휴가 가기 전에 일어난 일을 보면 그러리라 보기 어렵다. 이미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게 문제다.
대통령이 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인물은 김문수 경사노위원장이다. 김문수 후보자는 경기도지사 역임 이후 대권 도전 등에 실패하면서 상당 기간 ‘극우 유튜버’에 준하는 삶을 살아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김일성주의자’라는 등의 발언을 하거나 야당 의원을 혀향해 ‘종북’이라고 한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례다. 김문수 후보자는 보수 진영에서도 부담스러워 할 인물이다. 탄핵에 찬성하고 바른정당에 갔다가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한 김무성 의원 등이 2019년 보수통합 토론회를 열어 김문수 후보자를 연사로 초청했는데, 그 자리에서 김문수 후보자는 김무성 의원을 향해 “당신은 앞으로 천년 이상 박근혜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김무성 의원은 멋적은 얼굴로 “오늘 연사를 잘못 선택한 것 같다”고 했는데, 이런 인물이 윤석열 정권에서는 노동 전문가로 대접 받으며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자리에 앉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임명된 김낙년 동국대 명예교수는 ‘반일종족주의’의 공저자다. 사실 김낙년 교수는 소득불평등과 관련한 나름의 연구 업적이 있다. 그런데 이 주장을 식민지근대화론의 연장선에서 전개한다. 만일 이 정부가 김낙년 교수의 소득격차에 관한 연구 업적을 중시하였다면 관련 부처 혹은 기구의 책임자로 임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역사 및 문화와 관련한 기구다. 김낙년 교수가 ‘반일종족주의’의 공저자가 아니었어도 이 자리에 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남기는 인사를 굳이 한 것이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공영방송 이사로 임명한 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마찬가지의 황당한 기분이 든다. 이사회에 출석하는 게 아니라 태극기 집회 연단에 올라야 할 인물이 다수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와 시청자미디어재단에 친윤 인사들을 꽂아 넣은 것도 황당하다. 방송 관련 기구의 인사는 오히려 ‘장악’ 논란을 의식해 신중하게 진행해야 할텐데, 오히려 최전선에서 깃발 휘두르던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특히 신임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은 KBS PD출신으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관계된 검사 사칭 사건의 당사자이다. 그는 대선 때 이 사안과 관련해 이재명 전 대표가 핵심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는데, 다수 언론이 이를 보도하였다. 최근 수사 상황을 보면 윤석열 정권에서는 대선 후보 검증 보도가 곧 ‘명예훼손’이다. 그렇다면 이 기자회견은 이재명 당시 후보의 명예를 훼손한 사건일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대선 때 공을 세운 이 인물은 KBS 사장 선출에 도전하기도 하고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란 조직의 대표를 맡다가 선거방송심의위원으로 갔다. 선방위는 공언련이 제기한 편파적 민원을 거의 전부 이유가 있는 것으로 처리해 방송사를 징계하였는데, 그 결과는 최근 법원에서 방송사가 낸 가처분이 줄줄이 인용되는 걸로 귀결되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까지 쳤지만 ‘예술점수’는 높게 받지 못한 모양새인데, 이런 공으로 주요 직책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말이 나왔으니 이 얘기도 하자.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 관련 검찰은 언론인과 야권 정치인들의 통신자료를 대거 확인한 후 7개월이 지나 당사자들에게 통보하고 통상적 수사 절차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자신과 국민의힘 소속 의원 89명의 통신자료를 공수처가 조회한 걸 ‘불법 민간인 사찰’로 규정하며 “저와 제 처, 제 처의 친구들, 심지어 제 누이동생까지 통신 사찰을 했다”, “미친 사람들 아니냐”고 했었다. 그때도 수사기관 출신 인사가 내용을 다 뻔히 알면서 일부러 과잉반응 한다는 평이 많았다. 이제 뭐라고 할 건가?
대통령은 야당이 단독 처리한 혹은 단독 처리할 예정인 법안에 대해서도 모조리 거부권을 행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당선을 막으려 한 한동훈 대표 선출로 여당조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명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와중에, 최근 정점식 정책위의장 임명 논란으로 보듯 여당에 대한 ‘그립’도 여전히 놓지 않으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이런 일방통행으로 정권이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그건 기적이다. 기적은 올림픽에서나 일어나는 것이다. 나라를 올림픽 경기장에서 다스리는 것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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